로맨틱 코미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12화: 금지된 속삭임, 닫힌 문 너머**

“흐읍, 흐읍… 미친 거 아니야? 이게 무슨 재료 목록이야?”

유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낡은 양피지 종이를 흔들었다. 손에 든 양피지는 왠지 모르게 꿉꿉한 냄새가 났다. ‘야수 눈물 결정체, 밤의 장미 이슬, 그리고… 망각의 뿌리?’ 이 빌어먹을 학원에서 망각의 뿌리 같은 게 어디 있어? 그것도 보충수업용 최하급 회복 포션 재료로? 누가 봐도 그녀를 괴롭히려는 빅터 교수님의 음모가 분명했다.

아르카디아 마법 학원.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최고의 마법 명문이었지만, 실상은 그녀에게 시련의 연속이었다.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그녀는 그놈의 ‘선천적 마나 부족’ 때문에 매 학기 보충수업을 전전하는 신세였다. 이번엔 기어이 희귀 재료 채집이라는 명목으로, 아무도 가지 않는 학원 뒤편의 낡은 보관소까지 보내질 줄이야.

“어이, 거기 찌그러진 호박.”

뒤통수에 차가운 목소리가 비수처럼 박혔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 학원에서 감히 그녀에게 그런 무례한 호칭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내가 호박이면, 너는 잘 익은 무말랭이냐, 카인?”

유나는 고개를 홱 돌리며 쏘아붙였다. 푸른색 제복이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한 카인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메랄드빛 눈동자에는 언제나처럼 조롱이 가득했다. 그의 등 뒤로 휘날리는 망토자락마저 짜증 나게 완벽해 보였다.

“최하급 포션 재료를 구하겠다고 온 곳이 고작 여기냐? 너의 실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처참하군, 유나.”

카인은 콧웃음을 치며 그녀의 손에 들린 양피지를 턱짓했다. 그는 천부적인 마나량과 재능으로 학원 입학과 동시에 ‘기적의 마법사’라는 별명을 얻은 수재 중의 수재였다. 언제나 만년 꼴찌인 유나와 비교되는 존재였고, 그래서 더 미웠다.

“너 같은 천재는 평생 모를 거야, 잡초 같은 인생이 얼마나 치열한지. 비켜, 방해돼.”

“잡초는 뽑혀야 제맛이지.”

그가 팔을 뻗어 유나의 길을 막았다. 순간 그의 손이 그녀의 팔에 스쳤고, 싸늘한 감촉에 유나는 움찔했다.

“…또 쓸데없는 데 가지 말고, 네 주제에 맞는 곳으로 가라고.”

그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이상했다. 평소의 조롱 섞인 비웃음과는 어딘가 달랐다. 순간적으로 낯선 감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유나는 애써 무시했다.

“내 주제는 내가 알아서 해! 너나 잘해, 재수 없는 완벽주의자!”

유나는 그의 팔을 쳐내고 낡은 보관소 문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삐걱이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래된 나무와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켜켜이 쌓인 먼지가 희미한 창문 빛에 춤을 추고 있었다. 곳곳에 거미줄이 드리워져 마치 폐가 같았다.

“젠장, 망각의 뿌리가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잖아!”

책장을 뒤지던 유나는 결국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어두컴컴한 보관소는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이런 곳에 홀로 있자니 괜히 오싹해졌다. 그때였다.

*쿵… 쿵…*

아주 희미하게, 바닥 아래에서 들려오는 듯한 진동이 발끝으로 전해졌다. 심장이 발밑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유나는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쉬이이익… 촤아아아…*

마치 무언가 흐느적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물이 흐르는 소리 같기도 한 기묘한 소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유나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이곳은 단순한 보관소가 아니었다. 지하로 연결된 통로라도 있는 건가?

호기심과 공포가 뒤섞여 그녀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낡은 책장들을 지나 보관소의 가장 안쪽 구석에 다다르자, 어둠 속에 가려진 작은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벽과 거의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어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었다.

문 위에는 희미하게 먼지가 쌓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여기, 이 문은… 열지 마시오.」

오래되어 지워진 흔적 사이로 겨우 읽어낼 수 있는 경고문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열지 마시오’라는 문구는 언제나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유나는 손을 뻗어 문손잡이를 잡았다. 차갑고 녹슨 쇠붙이의 감촉이 소름 끼쳤다.

그때, 뒤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고문을 무시하는 취미라도 있나, 유나.”

유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어느새 카인이 그녀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그의 표정은 경직되어 있었다. 에메랄드빛 눈동자에는 날카로운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너, 너는 언제부터…?”

“네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건 나도 마찬가지다.” 카인은 유나의 말을 자르며 문을 힐끗 보았다. “이곳은 학원 기록에도 없는 곳이야. 금지된 곳이지.”

“금지…?”

“함부로 발을 들이면 안 돼.”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진지하고 단호했다. 평소 같았으면 유나를 놀리며 먼저 뛰어들었을 텐데, 지금은 오히려 그녀를 막으려 하는 눈치였다. 그 태도 변화가 오히려 유나의 의구심을 키웠다.

“왜? 뭐가 있는데?”

유나는 기어이 문손잡이를 돌렸다. 낡은 쇠붙이가 끼이익, 하고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굳게 닫혔던 문이 조금 열렸다.

새까만 어둠. 그리고 훅 끼쳐오는 퀴퀴하고 차가운 공기. 지하에서 올라오는 듯한 습하고 묘한 비린내가 코를 자극했다. 유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쉬이이익… 촤아아아…*

소리가 훨씬 가까워졌다. 물소리, 바람 소리, 혹은… 다른 무엇인가의 소리.

카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유나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돌아가자. 여긴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내가 뭘 못 감당하는데?”

유나는 그의 손길을 뿌리치고 좁게 열린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저 아래,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섬뜩한 감각.

순간, 어둠 속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 순간적으로 마법을 사용한 듯한 빛이었다. 동시에 차가운 금속성 냄새와 함께 섬뜩한 비명 같은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악…!*

인간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찢어지는 듯한 절규.

유나는 너무 놀라 몸이 굳어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는 그녀를 카인이 황급히 붙잡았다. 그의 몸과 그녀의 몸이 완전히 밀착했다. 그의 단단한 가슴이 등 뒤에서 느껴지고, 귓가에는 그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젠장…!” 카인의 낮은 욕설이 그녀의 머리 위에서 울렸다. “들었지? 당장 여길 떠나야 해.”

카인이 문을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철컥!*

열린 문틈으로 무언가 튀어나왔다. 끈적하고 검붉은 액체가 잔뜩 묻은, 마치 동물의 갈고리 같은 것이 번개처럼 빠르게 뻗어 나왔다.

“꺄아악!”

유나는 비명을 지르며 카인의 품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카인은 순간적으로 마법을 외쳐 빛을 만들어내려 했지만, 갈고리 같은 것은 이미 그들 바로 앞의 문 기둥을 강하게 후려쳤다.

*콰아앙!*

나무 문 기둥이 산산조각 났다. 조각난 나무 파편이 그들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카인은 유나를 감싸 안으며 억지로 문을 닫았다. 쾅! 하고 육중한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하지만 문틈 사이로 여전히 무언가가 기어 나오려는 듯, 문이 안에서부터 덜컹거렸다.

“도대체… 저게 뭐야?!”

유나는 두려움에 질려 카인의 제복을 움켜쥐었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눈동자에도 당혹감과 긴장감이 역력했다.

“몰라… 하지만 저건 분명, ‘금기’야.”

그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닫힌 문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덜컹거리던 문이 서서히 잠잠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보관소는 다시 고요한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둘은 알고 있었다. 방금 그들이 본 것은 결코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곳을 찾아낸 건 너 하나가 아닐 거야.”

카인이 섬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닫힌 문 너머,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꿰뚫는 듯했다.

그때, 보관소 밖에서 희미하게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낡은 나무 바닥을 삐걱이며 다가오는 소리였다.

“누, 누구지?”

유나는 화들짝 놀라 카인의 등 뒤로 숨었다. 카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 시선 속에는 공포, 의문,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내 보관소 문 앞에 멈춰 섰다.

*끼이익…*

낡은 보관소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 사이로,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 쌍의 눈동자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알 수 없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들이 이곳에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유나와 카인은 그 눈동자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속삭임이 그들의 귀에 와 박혔다.

「—환영한다… 새로운 손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