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안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창밖으로 늦가을의 해 질 녘 노을이 붉게 번지고 있었지만, 이 공간은 깊은 밤처럼 어두웠다. 낡은 고목 서가에 빽빽하게 꽂힌 책들이 그림자 속에서 제각기 비밀을 품은 듯 침묵했고, 중앙의 앤티크 책상 위에는 박 회장의 싸늘한 시신이 엎드려 있었다. 등에는 묵직한 서류용 칼이 깊숙이 박혀 피가 검붉게 응고되어 있었다.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들어왔다가 나간 겁니까?”
김 형사의 거친 한숨이 정적을 깼다. 굵은 목소리에는 답답함이 가득했다. 서재는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된 밀실이었다. 육중한 나무문은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쇠창살로 굳게 막힌 창문들은 애초에 사람 한 명이 드나들 틈조차 없었다. 천장의 작은 환기구 역시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살인 사건 현장으로서가 아니라, 그 어떤 침입도 불가능한 완벽한 요새로서 말이다.
이진우는 그런 김 형사의 초조한 목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의 눈은 마치 초고성능 현미경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있었다. 시신의 위치, 흩어진 서류의 각도, 심지어 책장 위 먼지 한 톨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다름 아닌 문이었다.
오래된 흑단나무로 만들어진 육중한 문. 두께가 족히 10센티미터는 넘어 보였다. 그는 문에 바싹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문틈과 바닥 사이의 미세한 간격을 살피고, 문고리를 돌려보고, 빗장도 만져보았다. 김 형사는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탐정님, 빗장은 안에서 완벽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저희가 강제로 개방했습니다. 그리고 열쇠는… 여기 있었습니다.”
김 형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문 바로 안쪽, 마룻바닥이었다. 묵직한 철제 열쇠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오래되어 색이 바랜, 그러나 제법 큼지막한 열쇠였다. 마치 주인이 문을 잠근 뒤 무심코 떨어뜨린 것처럼 보였다.
이진우는 말없이 열쇠를 응시했다.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숙여 눈높이를 맞췄다. 다른 경찰들은 이미 여러 번 확인한 터라 그가 대체 뭘 더 보려는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진우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왠지 모를 무게가 실려 있었다.
“뭐가 말입니까? 열쇠가 안에 있었다는 게 이상하다는 겁니까? 그게 바로 우리가 지금 미쳐버릴 지경인 이유인데요.” 김 형사가 거칠게 되물었다.
이진우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열쇠에 고정되어 있었다.
“열쇠가… 떨어져 있는 위치가 이상합니다.”
그는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만약 박 회장이 스스로 문을 잠그고, 열쇠를 주머니에 넣거나 협탁 위에 두려 했다면, 이 위치는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범인이 안에 있다가 박 회장을 살해하고 문을 잠근 뒤 열쇠를 떨어뜨리고 사라졌다면… 그럴 리가 없죠. 밀실이니까요.”
김 형사는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범인이 안에 있었다면 어떻게 사라졌는가? 그게 미스터리의 핵심이었다.
이진우는 마침내 열쇠에 손을 뻗었다. 하얀 장갑을 낀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열쇠를 집어 들었다. 그는 열쇠를 눈앞에 가져다 대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열쇠의 닳아버린 표면, 오래된 철의 냄새, 그리고…
“아하.”
작은 탄식과도 같은 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마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아낸 예술가처럼, 그의 얼굴에 희미한 만족감이 떠올랐다.
김 형사가 참지 못하고 다그쳤다. “뭘 발견한 겁니까, 탐정님? 설마 열쇠가 가짜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전문가가 감식했습니다만.”
“가짜는 아닙니다.” 이진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 열쇠는, 이 방에 남겨진 방식이 다릅니다.”
그는 열쇠의 손잡이 부분을 김 형사에게 보여주었다.
“보이십니까? 이 미세한 흠집들.”
열쇠 손잡이 부분에는 마치 얇고 단단한 무언가에 긁힌 듯한, 아주 희미한 선들이 여러 개 나 있었다. 마치 여러 번 잡아당겨진 흔적 같기도 했다.
“음… 오래된 열쇠니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김 형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이 열쇠가 단순히 ‘떨어져 있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열쇠는… ‘내던져진’ 겁니다.”
이진우의 말에 김 형사의 미간이 좁혀졌다. 내던져졌다? 누가? 범인이 안에 없는데?
이진우는 열쇠를 다시 바닥의 원래 위치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무릎을 꿇고 문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폈다. 그의 시선은 이번에는 문 안쪽의 열쇠 구멍에 집중했다.
“자세히 보십시오, 김 형사님. 열쇠 구멍 안쪽, 그리고 바깥쪽 테두리.”
김 형사는 고개를 숙여 문 안쪽의 열쇠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묵직한 철제 구멍은 겉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이곳에 아주 미세한 마찰 흔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열쇠의 손잡이에 난 흠집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진우는 열쇠 구멍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김 형사가 더 깊이 들여다보자, 정말이었다. 아주 작은, 눈에 띄지 않는 실선 같은 긁힘 자국들이 열쇠 구멍의 가장자리, 특히 안쪽 모서리 부분에 남아 있었다. 마치 쇠붙이로 계속 긁어낸 듯한 흔적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김 형사가 침음했다.
이진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은 이제 방 전체를 다시 한 번 스캔했다. 마치 이제야 모든 조각이 맞춰진 그림을 보듯, 그의 시선은 확신에 차 있었다.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이진우의 목소리가 서재 안에 낮게 울려 퍼졌다. “이 열쇠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살인범이 문을 밖에서 잠그고, 이 열쇠를 안으로 던져 넣은 겁니다.”
김 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밖에서 안으로? 말도 안 됩니다! 열쇠 구멍은 작지 않습니까? 이 열쇠는 저 구멍으로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설령 통과했다 해도, 어떻게 안에서 빗장이 걸린 것처럼 보이게 한단 말입니까?”
“열쇠 구멍으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이진우는 확신에 찬 어조로 반박했다. “정확히 말하면, ‘밀어 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빗장은, 처음부터 안에서 걸린 게 아니었습니다.”
모든 경찰들의 시선이 이진우에게 집중되었다. 그의 말은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다.
“범인은 밖에서 이 문을 잠갔습니다. 그리고는 얇고 긴 도구를 사용해, 이 열쇠를 열쇠 구멍으로 밀어 넣어 떨어뜨렸습니다. 열쇠 손잡이에 난 흠집들은 그 도구가 열쇠를 계속 밀어 넣으면서 생긴 마찰의 흔적이죠. 열쇠 구멍 안쪽에 난 흠집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이 열쇠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위치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자연스럽게 떨어진 게 아니라, 어딘가에 한 번 부딪히며 튕겨나간 듯한 위치였으니까요.”
이진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눈은 이제 김 형사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빗장. 범인이 나가면서 빗장을 걸 수 없죠. 안에서 걸려 있었으니까요. 그럼 범인은 대체 어떻게 빗장을 걸린 것처럼 위장했을까요?”
그의 시선이 문 위쪽, 육중한 빗장으로 향했다.
“범인은 이 서재 안에서 박 회장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나갈 때, 문을 잠그지 않고 그냥 닫았습니다. 육중한 문이 닫히면서,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어떤 장치가 있었을 겁니다. 아니면, 범인이 나간 후 외부에서, 문을 안에서 잠근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트릭을 쓴 겁니다. 이 서재의 문은 일반적인 문이 아닙니다. 특정 상황에서는, 문이 닫히기만 해도 안에서 잠긴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구조였던 겁니다. 예를 들면, 외부에서 작동 가능한 강력한 전자 잠금장치가 존재했거나… 아니면.”
이진우는 문손잡이를 다시 한번 잡아 돌려보았다. 그리고 문 가장자리, 빗장이 걸리는 부분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이곳에, 아주 미세한 틈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히 닫힌 듯 보이지만, 이 빗장 자체가, 외부에서 아주 얇고 강력한 도구로 조작될 수 있는 구조였던 겁니다. 범인은 박 회장을 죽이고, 문을 닫은 뒤… 밖에서, 이 빗장을 안에서 잠근 것처럼 보이게 조작한 겁니다. 그리고는 열쇠를 안으로 밀어 넣었고요.”
그의 말이 끝나자, 서재 안은 다시 깊은 침묵에 잠겼다. 그러나 아까와는 다른, 격렬한 침묵이었다. 김 형사의 얼굴에는 경악과 함께 깨달음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 범인은 아직 그 도구를 가지고 있겠군요.” 김 형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열쇠를 밀어 넣고 빗장을 조작할 수 있을 만큼 얇고, 길며, 단단한 도구. 아마 낚싯바늘이나 특수 제작된 철사 같은 형태였을 겁니다. 그 도구가 바로 범인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겁니다.”
그의 시선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박 회장의 시신을 향했다. 밀실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진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 그 진실의 모든 면이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