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의 밤은 언제나 피로에 절어 있었다. 수백 미터 상공을 가르는 공중 택시의 엔진음과 저층 슬럼가에서 피어오르는 싸구려 합성 연초 냄새가 뒤섞여 희미한 회색 안개를 만들어냈다. 이강찬은 그 안개를 뚫고 582번 고속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귀에 이식된 뉴럴 인터페이스는 방금 도착한 현장 브리핑 데이터를 깔끔하게 정리해 뇌리에 직접 전송했다.
“네오텍 본사, 70층. 한지훈 사장, 사망. 사인 미상. 밀실 살인.”
강찬의 입술이 비틀렸다. ‘미상’이라는 단어는 항상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이 도시에서 ‘미상’이란, 그저 평범한 탐정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통칭하는 완곡어법에 불과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차가운 병원 소독약 냄새와 금속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70층 전체는 네오텍의 최고 보안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고, 지금은 경찰 통제 하에 있었다. 홀 중앙에는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이 떠 있었는데, 한지훈 사장의 역동적인 생전 모습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 아래, 수십 명의 형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형사는 강찬을 보자마자 굳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밤샘 수색으로 짙어진 피로와 짜증으로 얼룩져 있었다.
“강찬 씨, 드디어 오셨군요. 예상보다 늦으셨습니다.”
오형사는 비록 짜증을 내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미묘한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지난 수년간 강찬은 수도 없이 ‘불가능한’ 사건들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니까.
강찬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교통체증은 언제나 예측불가죠. 게다가 이번 사건은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닐 테고.” 그의 시선은 홀로그램을 스쳐 지나, 희미한 윤곽만을 남긴 채 비상구를 향했다. “피해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쪽입니다.” 오형사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홀의 가장 안쪽, 최고 보안을 자랑하는 사장실이었다. “문제는… 사장실이 완벽한 밀실이라는 겁니다.”
강찬은 대답 없이 오형사를 따라 걸었다. 사장실 앞에는 삼중 보안 도어가 굳게 닫혀 있었다. 고성능 생체 인식 스캐너가 양옆을 지키고 있었고, 틈새 하나 보이지 않는 강화 합금 문은 그 어떤 물리적 침입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았다.
“현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희는 어떤 침입 흔적도 찾지 못했습니다. 문은 내부에서 잠겨 있었고, 외부에서 강제 개방된 흔적도 없습니다. 모든 보안 시스템 로그는 정상 작동을 알리고 있고요. 심지어 사장실 내부 공조 시스템 필터에서 외부 입자 유입도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오형사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브리핑했다. “완벽한 밀실입니다.”
강찬은 그의 말을 자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들어가보죠.”
오형사는 보안 패드를 내밀었고, 강찬은 자신의 개인 아이디를 입력했다. ‘인증되었습니다.’라는 기계음과 함께 묵직한 문이 서서히 안으로 열렸다.
사장실 내부는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최첨단 디자인과 고가의 인테리어가 어우러진 공간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중앙의 거대한 투명 데스크 옆, 사장 한지훈은 엎드려 있었다. 등에는 손바닥 크기만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고, 그 주변 살점은 마치 고온의 레이저에 지져진 듯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출혈은 엄청났고, 푸른빛을 띠는 혈액이 바닥의 패턴 무늬 카페트에 스며들어 있었다.
“사장님은 등 뒤에서 공격당했습니다. 사망 시각은 어젯밤 11시 32분경으로 추정됩니다. 부검팀의 초기 소견은… 고에너지 입자 무기에 의한 즉사입니다. 그런데, 실내에서 그런 무기가 사용되었다면 흔적이 남아야 하는데, 사장님 몸 외에는 어떤 탄흔이나 발사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감식반 팀장이 마이크로 스캐너로 주변을 살피며 설명했다.
강찬은 사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뉴럴 인터페이스가 주변의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흡수했다. 공기 중의 미세 입자, 온도, 습도, 벽면의 진동수, 데스크에 남아있는 전자기 잔류파… 모든 것이 그의 뇌에서 정밀하게 분석되었다.
그는 천천히 방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밀폐된 공간. 통유리창은 특수 강화 합금으로 만들어져 외부 충격에 완전히 방어적이었다. 환기구는 지름 10센티미터 남짓으로, 사람이나 대형 드론이 통과할 수 없는 구조였다. 사장실 내부에 설치된 두 대의 감시 카메라는 해킹당한 흔적 없이 정상적으로 녹화 중이었다. 녹화된 영상에는 한지훈 사장이 혼자 업무를 보는 모습만 담겨 있었다. 사망 순간은 카메라의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듯, 정확히 찍히지 않았다.
“사각지대라고 하셨죠?” 강찬이 허리를 굽혀 데스크 밑을 들여다봤다. “정말 ‘우연히’ 사각지대였을까요?”
감식반 팀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도 그 점이 의심스러웠습니다만, 카메라 각도는 한지훈 사장이 직접 설정한 것이고, 과거에도 변동된 적이 없습니다. 사장님은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강찬은 데스크 옆의 거대한 공기 정화 시스템을 훑어보았다. 방 안의 공기는 완벽하게 정화되어 있었고, 외부 물질 유입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꼼꼼하게 벽면의 이음새와 천장의 환기구를 살폈다. 그의 눈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미세한 흔적까지 놓치지 않았다.
“여기, 이 벽면…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강찬이 손가락으로 데스크와 가까운 벽면을 가리켰다.
오형사와 감식반 팀장이 강찬이 가리킨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일반적인 강화 폴리머 벽면이었고, 아무런 특이점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강찬 씨, 별다른 건 안 보이는데요.” 오형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강찬은 자신의 손가락을 벽에 댔다. 뉴럴 인터페이스를 통해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고, 벽면 내부의 구조 데이터를 요청했다. “이 벽면의 소재, 일반적인 폴리머 강화판은 맞습니다. 하지만, 보세요. 이 미세한 이음새. 다른 벽면의 이음새와 비교했을 때, 육안으로는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강찬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의 뇌 속에서 수많은 데이터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있었다.
“사건 현장에 도착한 첫 보고서에는 분명히 모든 보안 시스템이 정상 작동했다고 명시되어 있었죠.” 강찬이 눈을 뜨며 물었다.
오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모든 로그 기록이 완벽합니다. 침입 시도, 시스템 오류, 어떤 것도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강찬은 조용히 말했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비정상적이죠.”
그는 다시 한지훈 사장의 시신을 향했다. 등의 치명적인 구멍. 고에너지 입자 무기. 흔적 없는 공격.
“사각지대, 완벽한 밀실, 그리고 흔적 없는 고에너지 무기.” 강찬은 읊조렸다. “이 세 가지가 합쳐지면 하나의 가능성이 도출됩니다.”
그는 천천히 방의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범인은 이 방 안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들어온 흔적은 없죠.” 강찬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물리적’ 존재가 아니었거나, 아니면 이 방이 일시적으로 ‘밀실이 아니게’ 되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오형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니… 드론? 아니면…”
강찬이 고개를 저었다. “드론이었다면 고에너지 무기의 잔여물이 남았을 겁니다. 미세한 발열 흔적, 공기 중 입자 변화 등.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벽을 다시 한번 손으로 짚었다. “답은 이 벽에 있습니다. 아니, 이 벽 안에 있습니다.”
그의 시선이 날카롭게 벽을 꿰뚫는 듯했다. “이 벽면, 정확히는 이 벽에 내장된… ‘투과형 물질 전송 시스템’입니다.”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투과형 물질 전송 시스템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한다고 알려진, 특정 주파수를 통해 미세 물질을 벽이나 유리 같은 고체 물질을 통과시켜 전송하는 기술이었다. 극비 군사 기술로 개발 중이라는 소문만 무성했을 뿐, 실제 상용화된 적은 없었다.
“말도 안 됩니다. 그건 아직 개발 중인 기술… 아니, 이 방에 그런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을 리가!” 오형사가 반박했다.
“물론, 일반적인 물질 전송 시스템은 아닙니다.” 강찬이 오형사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건 ‘미완성’된 시스템입니다. 특정 주파수와 에너지 출력을 사용하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리고 아주 미세한 물질만을 한정적으로 벽을 투과시킬 수 있도록 설계된 거죠. 한지훈 사장 정도의 거물이라면, 이런 극비 기술의 프로토타입을 자신의 최측근 보호 장치로 활용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강찬은 벽면의 미세한 이음새를 다시 가리켰다. “이 이음새는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이 시스템의 ‘발동 지점’을 숨기기 위한 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장실 안에는 시스템을 가동시키는 단말기가 숨겨져 있었을 겁니다. 아주 작은, 사장님만이 아는.”
그는 데스크 아래, 사각지대에 가려진 아주 작은 패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감식반 팀장이 다가가 패널을 열자, 그 안에서 복잡한 회로와 함께 초소형 송수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송수신기를 통해 외부에서 특정 주파수를 발생시켰을 겁니다. 그리고 그 주파수가 벽면의 시스템을 활성화시킨 거죠.” 강찬은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벽은 더 이상 고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치명적인 고에너지 입자 무기의 핵심 부품이 투입된 겁니다.”
오형사가 숨을 들이켰다. “핵심 부품? 설마… 무기 자체를 투입한 게 아니라, 무기의 ‘탄두’만을 투입했다는 말입니까?”
“정확합니다.” 강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벽을 통해 투과된 것은 무기 전체가 아니라, 작은 형태의 고에너지 압축 탄두였을 겁니다. 이 탄두는 사장실 내부에 미리 설치된, 또는 외부에서 조종되는 아주 작은 발사 장치에 결합되어 발사되었겠죠. 혹은, 더 간단하게, 자체적인 추진력을 가진 소형 탄두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다시 한지훈 사장의 등을 보았다. “등에 뚫린 구멍이 너무나도 깔끔했던 이유. 발사체 자체는 아주 작았을 겁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미완성이었기에, 다시 원상복구되는 데 아주 미세한 시간차가 있었겠죠.”
강찬은 바닥을 가리켰다. 한지훈 사장의 피가 묻은 카페트 옆, 아주 미세한, 거의 보이지 않는 잿빛 가루가 흩뿌려져 있었다. 다른 감식반 요원들은 그것을 ‘오염’으로 치부했으나, 강찬은 달랐다.
“이 잿빛 가루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미완성된 투과 시스템이 물질을 전송할 때 발생하는 미세한 부산물이죠. 벽을 통과하며 마찰로 인해 생긴 탄두의 일부, 또는 시스템 자체의 미세한 분해 물질입니다. 너무나 미세해서 일반적인 스캐너로는 다른 오염 물질과 구별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오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다면… 범인은 이 기술을 아는 내부자거나, 아니면 엄청난 해킹 능력을 가진 외부자라는 말이군요!”
“이 시스템을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고 활용하려면, 내부 협력자가 필요합니다. 혹은 시스템의 설계도를 빼돌릴 만큼 강력한 정보력이 있어야겠죠.” 강찬은 한지훈 사장의 데스크 아래 패널을 닫으며 말했다. “사각지대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 시스템이 설치된 지점과 발동 장치, 그리고 발사 장치가 모두 그 사각지대에 완벽하게 숨겨져 있었던 겁니다. 한지훈 사장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장치가, 역으로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셈이군요.”
그는 마지막으로 사장실의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피 냄새와 금속 비린내 속에서, 아주 희미한, 먼지 타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고에너지 무기가 발사될 때 발생하는 특유의 냄새였다. 강찬만이 감지할 수 있는.
“이제 밀실은 깨졌습니다. 다음은 범인을 찾아낼 차례죠.” 강찬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사망 직전 한지훈 사장과 접촉했던 인물들의 통신 기록과 네오텍 내부의 고위층 자산 변동 내역, 그리고 이 투과형 물질 전송 시스템의 개발팀 명단을 조사하십시오. 그 안에 범인이 있을 겁니다.”
오형사는 강찬의 지시에 따라 즉시 무전기를 들고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실타래가 강찬의 손길 한 번에 풀려나가는 것을 보며, 오형사는 다시 한번 그 ‘천재’라는 별명이 얼마나 정확한지 실감했다.
네오서울의 밤은 여전히 피로에 절어 있었지만, 이제 그 안개 속에서 한 줄기 진실의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강찬은 다음 사건을 향해, 차가운 눈빛으로 문밖을 나섰다. 그의 뉴럴 인터페이스는 이미 다음 퍼즐 조각을 찾기 위한 분석을 시작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