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1. 그림자의 잔해, 그 속에서 피어나는 증오
차가운 새벽 공기가 허름한 옥탑방 창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희미한 달빛조차 닿지 않는 방 한구석, 강지혁은 낡은 탁자에 놓인 검은 수정구를 응시하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서 돋아난 그림자 실타래가 수정구를 휘감았다 풀리기를 반복했다. 미약한 마력이었다. 한때는 도시 전체를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타올랐던 그의 그림자 마력은, 이제 이 비루한 공간을 겨우 감싸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아….”
핏기 없는 입술 사이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텅 빈 배가 쓰리지만, 그보다 더한 고통은 심장에 칼날처럼 박혀 있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깊이를 알 수 없는 상실감과 증오로 일그러져 있었다.
세 달 전.
도시의 수호자라 불리던 ‘새벽의 파수꾼’ 길드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아니, 무너뜨려졌다. 믿었던 친구의 손에 의해.
이서준. 찬란한 빛의 마법사이자, 지혁의 가장 오랜 벗. 언제나 지혁의 그림자를 격려하고 지혁의 어둠을 이해해주던 유일한 존재.
그는 지혁의 핵심 그림자 마력을 집어삼키고, 그 힘을 자신의 빛의 힘과 융합시켜 도시의 새로운 절대자로 군림했다. 지혁은 처참하게 짓밟히고, 모든 것을 잃은 채 폐허 속에 버려졌다.
*젠장, 이서준.*
지혁의 눈동자가 수정구에 비친 자신의 모습처럼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주먹을 쥐자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통증은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감각이었다.
“아직… 멀었나.”
그림자 실타래가 수정구에 닿았다. *쉬이익.* 수정구 표면에 가느다란 금이 갔다. 미세한 균열이었다. 하지만 지혁은 알았다. 그의 힘이 아주 조금씩, 죽지 않고 다시 움트고 있다는 것을. 지혁의 그림자는 어둠 속에서 가장 강한 법이니까. 고통과 절망이 그에게 더 큰 힘을 가져다주었다.
그때, 낡은 휴대폰이 진동했다. 액정에는 익숙한 암호화된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상 위치 포착. 흑암가 7구역, 폐쇄된 제련소 인근.』
발신자는 ‘까마귀’. 지혁이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구축한 정보망의 첫 번째 조각이었다.
지혁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타겟은 서준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자였다. ‘새벽의 파수꾼’ 시절에는 서준과 지혁의 연락책을 담당했고, 그 배신에 직접 가담한 인물 중 하나였다.
“그래, 시작해볼까.”
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드티를 눌러쓰고 닳아빠진 운동화를 신었다. 이제 그는 과거의 ‘강지혁’이 아니었다. 그림자 속에서 태어난 복수의 화신이었다.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고, 이서준을 끌어내리기 위한.
—
밤의 장막이 깊어진 흑암가 7구역은 인적 드문 공장지대였다. 낡은 철골 구조물들이 앙상하게 솟아 있었고, 부식된 철근 냄새와 빗물 썩는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지혁은 폐쇄된 제련소 건물 뒤편의 어두운 골목에 몸을 숨겼다. 그의 그림자는 주변의 어둠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그가 서 있는지조차 알아채기 어려웠다.
*쿵, 쿵, 쿵.*
심장이 고동쳤다. 미약하게나마 마력이 손끝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지혁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는 더 이상 과거처럼 화려한 기술을 구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림자 속에 숨는 것은 여전히 그의 본능이자 특기였다.
어둠 속에서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건물의 정문에서 육중한 철문이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열리고, 세 명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중 한 명은 어깨에 큼직한 상자를 들고 있었고, 다른 두 명은 주위를 경계하며 그를 호위하고 있었다. 상자를 든 남자, 그의 이름은 박기준이었다. 서준의 충실한 개.
“야, 서둘러. 이 밤에 이딴 쓰레기 같은 동네에 처박혀 있는 것도 역겨워 죽겠으니까.” 박기준이 투덜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경박했고, 주위를 둘러보는 눈빛에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지혁의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 저 오만함은 서준에게서 비롯된 것이겠지. 과거의 영광을 훔치고 타인의 절망 위에서 피어난 오만함.
그림자가 지혁을 따라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박기준 일행은 건물 외곽을 따라 난 좁은 통로로 들어섰다. 통로 끝에는 어두운 색깔의 밴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상자를 밴에 싣고 서둘러 떠날 생각인 듯했다.
*지금이다.*
지혁은 그림자를 타고 순식간에 박기준의 등 뒤로 파고들었다. 그는 기척조차 내지 않았다.
“뭐… 뭐지?”
경계하던 호위병 중 한 명이 뒤늦게 뭔가 이상함을 느꼈을 때, 이미 늦었다.
지혁의 손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 촉수가 호위병의 목을 칭칭 감았다. *컥!* 호위병은 짧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축 늘어졌다.
“야! 너 거기 서!”
다른 호위병이 소리치며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지혁은 그가 단검을 완전히 뽑기도 전에,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와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호위병은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박기준은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얼어붙은 채 상자를 든 손을 덜덜 떨었다.
“너… 너는… 강… 강지혁?!”
그의 얼굴은 공포로 질려 있었다. 폐허 속에서 죽은 줄 알았던 자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혁은 차가운 시선으로 박기준을 내려다봤다. 그림자가 그의 몸을 감싸 안아, 그의 실루엣을 더욱 거대하고 위협적으로 만들었다.
“박기준. 오랜만이군.”
지혁의 목소리는 지하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듯 낮고 음산했다.
“살아있을 리가… 서준 님이… 너를…!”
박기준이 뒷걸음질 쳤다. 그가 들고 있던 상자가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네놈은 그자의 개였지. 그래서 알고 있을 거다.”
지혁은 한 발짝 다가섰다. 그림자가 그의 발밑에서 뱀처럼 기어 올랐다.
“무엇을… 무엇을 말하는 거야…!”
박기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속에 감춰진 공포가 지혁에게 희미한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네놈은 서준이 그날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지금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알고 있다.”
지혁의 손에서 그림자 촉수가 뻗어 나와 박기준의 턱을 움켜쥐었다. 차가운 그림자 기운이 박기준의 피부를 꿰뚫고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박기준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콜록… 콜록…! 아무것도… 몰라…!”
박기준이 거짓말을 했다. 지혁은 그의 눈을 통해 진실을 읽어낼 수 있었다. 공포에 휩싸인 동물의 눈빛.
“거짓말 마라. 그날, 서준이 내 힘을 탐하고 나의 길드를 파괴할 때… 네놈도 그 자리에 있었다.”
지혁의 눈빛이 살기로 번뜩였다. 그 순간, 박기준은 자신의 목숨이 강지혁의 손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제발… 살려줘… 서준 님은… 서준 님은 지금… 새로운 힘을…!”
박기준이 겨우 말을 잇자, 지혁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새로운 힘? 그자가 나의 것을 훔쳐서 얻은 힘 말고, 또 다른 것이 있다는 말이냐?”
지혁은 냉정하게 물었다. 서준이 자신의 그림자 마력을 집어삼킨 후, 그 힘을 자신의 ‘빛의 힘’과 섞어 기괴한 능력을 얻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인가.
“그는… 그는 ‘경계의 문’을 찾고 있어! 고대 유물…! 그걸 열면… 도시 전체가…!”
박기준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쏟아내고 있었다.
경계의 문. 고대 유물.
그 단어들이 지혁의 뇌리를 강타했다. 그건 단순한 전설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고대 마법사들의 기록에 언급된, 차원과 차원을 잇는 금단의 문. 그것이 열리면, 세상은 혼돈에 휩싸일 터였다.
서준이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거지? 그자는 도시를 지킨다고 떠들던 위선자였다. 그런데 이제는 도시를 통째로 뒤흔들려는 건가?
지혁은 더 이상 박기준에게 질문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미 충분한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복수의 대상은 더욱 명확해졌다. 이서준은 단순히 지혁의 힘을 훔친 것을 넘어, 더 거대한 파멸을 꾸미고 있었다.
“정보는 고맙다. 쓰레기 같은 개놈아.”
지혁의 그림자 촉수가 박기준의 목을 부러뜨렸다. *뚝.* 짧고 섬뜩한 소리와 함께 박기준의 몸은 힘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림자가 호위병들의 시체까지 집어삼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했다. 마치 그들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혁은 폐쇄된 제련소를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경계의 문.*
서준은 지혁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지만, 지혁은 아직 모든 것을 잃지 않았다. 그에게는 복수심이 있었고, 그림자가 있었으며, 이제는 목표가 더욱 선명해졌다.
밤의 장막 아래, 그림자 속에서 피어난 복수심은 차갑고 잔혹한 칼날이 되어, 이서준의 심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빛의 절대자라 자처하는 그자의 찬란한 가면을 벗겨내고, 그 아래 숨겨진 추악한 진실을 만천하에 드러낼 때까지, 강지혁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지혁의 눈동자는 여전히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이서준, 이제부터 진짜 사냥이 시작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