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지호는 손목에 감긴 시계를 힐끗 보았다. 새벽 1시 17분. 널브러진 서류 더미 사이에서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운 그는 뻐근한 목을 쓸어 올렸다. 낡은 원룸 오피스텔은 언제나처럼 차가운 공기를 머금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마치 거대한 생명체처럼 꿈틀거렸지만, 14층에 사는 그의 방 안은 침묵과 고립감으로 가득했다. 퇴근 후 겨우 저녁을 때우고 노트북 앞에 앉은 지 이미 다섯 시간이 훌쩍 넘었다. 내일 아침까지 제출해야 할 기획안은 여전히 미완성이었고, 그의 머릿속은 온통 흐릿한 숫자와 단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아…”

피곤한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을 때였다.

*슥.*

아주 작고 미세한 소리. 마치 닳아빠진 나무 바닥 위로 무언가가 끌리는 듯한 소리였다. 지호는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

‘피곤해서 헛것이 들리나.’

그는 애써 무시하고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커피라도 한 잔 더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주방으로 향하는 짧은 복도 끝, 현관문이 닫힌 채 덩그러니 서 있었다. 문득, 그곳에서 차가운 기운이 스며 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생수를 꺼내고 커피포트에 물을 따랐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웅-‘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끓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탁!*

씽크대 위에 놓여 있던 컵 하나가 갑자기 털썩 쓰러졌다. 마치 누가 건드린 것처럼, 아니, 정확히는 뒤에서 누가 밀친 것처럼. 컵은 씽크대 바닥에 부딪히며 불안하게 한 바퀴 굴러, 깨지지는 않았지만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지호는 깜짝 놀라 움찔했다. 심장이 순식간에 두근거렸다.

“뭐야?”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혼자 사는 이 좁은 방에 다른 사람은 있을 리 없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바람이 불어올 틈도 없었다. 그는 컵을 다시 세우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설마, 지진?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는 애써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피로가 극에 달하면 환각이나 환청을 겪을 수도 있다고 했다. 어쩌면 그저 오래된 건물의 진동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지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컵이 쓰러지던 그 순간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등골이 서늘했다.

*스르륵… 삐걱.*

이번에는 옷장 문이 아주 미세하게 열리는 소리였다. 지호는 고개를 돌렸다. 닫혀 있던 옷장 문이 채 1센티미터도 되지 않게 벌어져 있었다. 그는 아까부터 닫혀 있었던 것을 분명히 기억했다. 옷장 안은 어둠뿐이었다.

지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향했다. 손을 뻗어 문을 닫으려는데, 문득 옷장 안에서 퀴퀴하고 시큼한 냄새가 확 풍겨 나왔다. 곰팡이 냄새 같기도 하고, 어딘가 축축한 흙냄새 같기도 했다.

“씨발…”

욕설이 절로 나왔다. 그의 심장은 마치 경주마처럼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그는 황급히 옷장 문을 닫고, 뒤로 물러섰다. 이제 더 이상 피곤함이나 진동 탓으로 돌릴 수 없었다. 분명 뭔가 이상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다 멈췄다.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내 방 컵이 저절로 쓰러지고 옷장 문이 열렸어.’ 미친 소리로 들릴 것이 뻔했다.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였다.

*쿵!*

둔탁한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지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벽에 걸려 있던 액자였다. 가족사진이 담긴, 평소에는 움직일 리 없는 그 액자가 대각선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못에서 완전히 빠진 것은 아니었지만, 한쪽이 툭 떨어져 마치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듯 삐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액자의 유리 너머로, 희미하게 빛나는 두 개의 점.

붉고 탁한, 마치 핏빛 같은 점 두 개가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지호는 숨을 들이켰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그는 눈을 비볐다. 다시 액자를 보았다. 이젠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기울어진 액자만이 덩그러니 걸려 있을 뿐이었다.

‘착각이야. 피곤해서 생긴 환영이라고.’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설득했다. 하지만 떨리는 손은 멈출 줄 몰랐고, 식은땀이 그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차가운 손가락이 피부를 스치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 느껴졌다. 너무나도 생생하고 선명한, 차가운 감촉. 마치 얼음 조각이 그의 척추를 타고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가는 듯했다.

지호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몸이 굳어버렸다. 그는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온몸이 얼어붙은 듯 뻣뻣해졌다. 어둠 속에 홀로 버려진 듯한 극도의 공포가 그를 덮쳐왔다.

그리고 귓가에, 아주 가깝고 낮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가지 마…”

아주 작고 찢어지는 듯한,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 차갑고 메마른 바람 소리 같기도, 오래된 뼛조각이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했다.

지호는 결국 주저앉았다. 바닥에 놓여 있던 서류들이 그의 시야를 흐렸다. 그는 온몸을 덜덜 떨며 숨을 헐떡였다. 방 안의 공기가 마치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그의 등 뒤에는, 분명히, 무언가 있었다.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차갑고 끈적이는 어둠 같은 존재.

그는 필사적으로 시선을 들어 방 안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왜곡되어 보였다. 책장의 책들은 그림자 속에서 섬뜩하게 흔들리는 듯했고, 닫힌 옷장 문은 금방이라도 활짝 열릴 듯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지호는 더 이상 이 방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자신을 원하고 있었다.

“젠장…”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떨리는 신음과 다름없었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시선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분명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