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17화: 유리벽 너머의 그림자

아틀라스 호, 럭셔리 스타라이너의 심장이자 우주를 유영하는 거대 예술품. 평소 같으면 은하수 너머의 행성들을 배경 삼아 샴페인 잔을 기울이는 신사 숙녀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을 그곳에, 지금은 오직 불안한 정적과 간간이 터져 나오는 비명만이 공간을 채웠다.

이데아 섹터, 가장 호화로운 펜트하우스 스위트의 문 앞. 겹겹의 생체 인식 잠금장치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지금, 문은 위협적으로 열려 있었다. 그 안에는 우주 재벌 ‘크레아토 그룹’의 강태산 회장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가슴팍에 아무런 외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고, 눈은 공허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명백한 죽음이었다.

“젠장… 이건 말도 안 돼!”

함장 이사벨 라미레즈의 목소리가 격정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녀의 푸른 눈은 스위트 내부를 훑으며 혼란에 휩싸였다. 스위트 내부는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고, 널브러진 물건 하나 없었다. 모든 것은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마치 강태산 회장이 고요히 잠들었다가 깨어나지 못한 것처럼. 하지만 그의 목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압흔은 그 죽음이 절대로 평화롭지 않았음을 역설하고 있었다.

“보안 기록은 어떻습니까, 김민준 소령?”

이사벨 함장의 날카로운 질문에 옆에 서 있던 보안 책임자 김민준 소령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의 표정은 함장과 다를 바 없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함장님, 스위트의 모든 출입구는 어제저녁 22시부터 이른 아침 06시까지 완벽하게 밀봉되어 있었습니다. 비상 잠금장치까지 작동되어 회장님의 생체 인식으로만 해제될 수 있었죠. 침입은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창밖으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김민준은 스위트의 거대한 크리스탈론 유리창을 가리켰다. 창밖으로는 오직 심연의 우주와 저 멀리 아련하게 빛나는 성운만이 펼쳐져 있었다. 우주 공간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산소가 차단되거나 중력이 뒤틀리는 등의 조작 흔적도 전혀 없었다.

“밀실 살인이라니… 우주선 안에서 말입니까?” 이사벨 함장은 이를 악물었다. “승객들의 동요가 시작되면… 아틀라스 호의 명예는 끝장입니다.”

그때, 스위트 입구에 느릿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보안 요원들이 길을 터주자,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 지친 듯 살짝 처진 눈매, 그리고 얼굴에 걸린 비딱한 미소. 낡아 보이는 회색 트렌치코트를 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감은 주위를 압도했다. 그의 이름은 류세하. 은하계에서 ‘사건의 미궁을 꿰뚫는 자’로 불리는 유일한 탐정이었다.

“부르셨습니까, 함장님. 별 시답잖은 일은 아니겠죠?” 류세하는 하품을 꾹 참으며 말했다. 그의 시선은 이미 강태산 회장의 시신에 고정되어 있었다.

“류세하 씨, 상황은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강태산 회장이 밀실에서 살해당했습니다.” 이사벨 함장은 류세하의 태도에 짜증이 치밀었지만, 그의 능력을 알기에 애써 평정을 유지했다.

류세하는 아무 말 없이 강태산 회장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그는 무릎을 굽혀 희미한 압흔이 남아있는 목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섬세한 손가락이 공기 중을 스캔하듯 움직였다. 그러다 갑자기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방, 마지막으로 환기시킨 게 언제죠?” 류세하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김민준 소령은 당황했다. “환기 시스템은 24시간 자동 가동됩니다. 하지만 살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닥쳐봐요.” 류세하가 김민준의 말을 잘랐다. 그의 시선은 천장의 환기구를 향해 있었다. “난 지금 이 방의 ‘밀실’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있는 중이거든.”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스위트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깨끗하고 질서 정연했다. 그런데 류세하의 시선이 갑자기 벽 한쪽에 놓인 작은 인공 식물 ‘루나 플랜트’에 닿았다. 푸른색 잎사귀가 가느다란 줄기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그 식물에 손을 뻗어 잎사귀 하나를 살짝 건드렸다.

“함장님, 이 루나 플랜트… 회장님 개인 소유입니까, 아니면 아틀라스 호의 비품입니까?”

이사벨 함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데아 섹터의 모든 스위트에는 동일한 루나 플랜트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관리 시스템에 연결되어 최적의 환경을 유지하죠.”

“그렇군요.” 류세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잎사귀를 만지던 손을 거두었다. 그의 얼굴에 비딱했던 미소 대신 섬뜩할 정도로 진지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 방의 모든 출입구가 밀봉되어 있었다는 건 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는 말을 멈추고 강태산 회장의 시신을 다시 한 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모두가 놓쳤던, 혹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단 하나의 가능성을 짚어냈다.

“이 방에 외부인이 침입한 적이 없다는 말은 맞을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류세하에게 집중되었다. 안도감과 동시에 의아함이 교차했다. 그럼 대체 누가?

“하지만.” 류세하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이 밀실을 ‘만든’ 사람 역시 이 방 안에 없었다는 말은, 틀린 것 같군요.”

그의 시선이 다시 한번 루나 플랜트의 잎사귀, 그 위에 맺힌 희미한 물방울을 향했다.

“누군가는 이 방을 ‘열지 않고’ 들어왔고, 다시 ‘열지 않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식물의 잎사귀에 아주 작은 흔적을 남겼죠. 밀실을 만들면서 동시에 밀실을 깨뜨린 흔적.”

이사벨 함장과 김민준 소령의 얼굴에 혼란스러운 표정이 더욱 짙어졌다. 밀실 살인? 아니, 밀실 *조작* 살인?

류세하는 그들의 반응을 즐기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제 재미있어지겠군요. 아틀라스 호의 심장이 멈추기 전에, 진짜 범인을 찾아야 할 테니.”

그의 눈빛은 우주의 심연처럼 깊고 날카로웠다. 유리벽 너머의 그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류세하는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