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창밖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아니, 잠겨 있다기보다는 거대한 죽음의 장막이 드리워진 듯했다. 도시 전체를 집어삼킨 정전은 벌써 닷새째. 간간이 멀리서 들려오는 섬뜩한 비명과, 그 비명을 지운 으르렁거리는 소리만이 바깥 세상이 여전히 지옥임을 웅변하고 있었다.

지훈은 낡은 스마트폰의 희미한 액정 불빛에 의지해 라면 봉지를 뜯었다. 끓일 물도 없고, 불도 없으니 그냥 부숴서 먹는 수밖에. 부스러기를 입에 털어 넣으며 텁텁한 목을 축일 물을 찾았다. 플라스틱 물병이 텅 빈 소리를 냈다. 마지막 남은 생수 한 모금까지 어제 동났다.

“젠장.”

입술을 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란다 창문을 두꺼운 담요로 가려두지 않았다면, 어둠 속에서도 덩그렇게 서 있는 아파트 외벽이 보였을 것이다. 불 켜진 창문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모든 것이 죽어 있었다.

지훈은 캔버스 가방을 뒤적여 라이터를 찾아냈다. 작은 불꽃이 일렁이며 순간적으로 주변을 밝혔다. 방구석에 쌓아둔 생존 물품들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라면 봉지들, 통조림, 오래된 건전지들. 그리고… 녹슨 칼.

툭.

갑자기 옆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따라간 곳에는 굴러다니던 캔이 있었다. 방금 전까지 분명 벽에 기대어 있던 것인데, 바닥 중앙으로 스르륵 밀려나와 있었다.

“뭐지?”

지훈은 숨을 멈췄다. 혹시 쥐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쥐가 통조림 캔을 그렇게 미끄러뜨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 아파트는 쥐가 보일 만큼 낡은 건물도 아니었다. 그리고… 소리가 너무나… 부드러웠다. 마치 누군가 발로 툭 차서 밀어낸 것처럼.

라이터 불꽃이 작게 흔들렸다. 지훈은 조심스럽게 캔에 다가갔다. 발로 툭 건드리자 캔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대로 있었다. 착각인가? 너무 오래 혼자 있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탓일까.

피곤한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다시 자리에 앉아 부숴진 라면 부스러기를 우적우적 씹었다. 짠맛이 혀를 마비시키는 듯했다.

끼이익…

이번에는 주방에서 소리가 났다. 지훈은 씹던 라면을 멈췄다. 방금 전 캔 소리는 착각이라 치더라도, 이 소리는 명백했다. 낡은 찬장 문이 스르륵 열리는 소리.

지훈은 라이터를 다시 켰다. 흔들리는 불빛이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주방 쪽으로 향하는 짧은 복도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공포가 목구멍을 조여 왔다. 밖에는 괴물들이 득실거리고, 안에는… 대체 뭐가 있는 거지?

“누구… 있어?”

목소리가 떨렸다.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아무도 있을 리 없었다. 아파트 문은 굳게 걸어 잠겨 있었고, 창문은 모든 틈새가 막혀 있었다. 게다가 이 층에는 지훈 말고는 다른 세입자도 없었다. 이웃들은 이미 첫날 도망치거나… 다른 신세가 되었을 터였다.

끼이이이익… 쾅!

찬장 문이 활짝 열리는가 싶더니, 이내 거친 바람에 닫히는 것처럼 굉음을 내며 닫혔다. 벽이 울렸다. 지훈은 들고 있던 라이터를 떨어뜨렸다. 어둠이 다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젠장… 젠장!”

손을 더듬어 라이터를 찾아 다시 켰다. 불꽃은 아까보다 더 세게 떨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환영인가? 아니, 소리는 너무나 명확했다. 쾅, 하는 소리는 귀청을 때렸다.

주방으로 조심스럽게 향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복도 끝, 주방 입구에서 라이터 불빛을 비췄다. 찬장 문은 아까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씨발…”

지훈은 중얼거렸다. 정신 나갈 것 같았다. 공포와 분노가 뒤섞였다. 밖의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미칠 것 같은데, 이제는 집 안까지 이러는가.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안에 남아있는 것은 물기 없는 상추 몇 조각과 빈 케첩 통뿐. 먹을 것도 없었다. 그런데 문을 닫으려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냉장고 선반에 놓여있던 캔맥주가… 없었다.

지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히 어제까지도 선반 구석에 한 캔 남아있던 것을 기억했다. 혹시 자신이 마셨던가? 아니다.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데, 남아있는 캔맥주를 놓칠 리가 없었다.

“어디 갔지?”

그때였다. 찌릿, 하는 정전기가 느껴지면서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등 뒤에서 싸늘한 한기가 스며들었다. 마치 얼음장 같은 손이 목덜미를 스쳐 지나간 것 같은 기분.

지훈은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라이터 불빛이 희미하게 흔들릴 뿐.

그리고 그때,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은색 캔. 찌그러진 채로 뒹굴고 있는 캔맥주였다.

차가웠다. 손으로 집어 들자 차가운 온기가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마치 방금 냉장고에서 꺼낸 것처럼.

“누구야… 씨발, 누구냐고!”

지훈은 소리쳤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주변을 미친 듯이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벽, 가구, 천장, 바닥.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분명히 이 공간을 함께하고 있었다.

갑자기 거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지훈은 캔맥주를 내팽개치고 거실로 달려갔다. 라이터 불빛이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그는 경악했다.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작은 유리컵들이 모두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깨진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반짝였다. 그리고 그중 한 컵의 파편 위로, 작은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흙먼지가 묻은, 아주 작은 발자국.

“이건… 말이 안 돼…”

지훈은 주저앉았다. 바닥에 흩어진 파편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발자국은 너무나 선명했다. 마치 누군가 유리컵을 발로 짓밟고 지나간 것처럼. 그러나 그 발자국은 이내 공중으로 사라진 듯,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그의 발목을 뭔가 차갑고 축축한 것이 감쌌다. 섬뜩한 한기와 함께, 마치 차가운 손가락들이 발목을 스윽 쓸어 올리는 듯한 기분.

“아아아악!”

지훈은 비명을 지르며 발을 뒤로 뺐다. 바닥에 구른 캔맥주 찌꺼기가 그의 발에 닿았다. 차가운 액체가 발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발자국, 유리컵, 그리고 이 차가운 접촉. 이건 분명한… 존재였다. 보이지 않지만, 만질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존재.

그때였다. 거실 창문을 가려두었던 두꺼운 담요가 스르륵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휘이잉-

유리창 밖의 어둠이 그대로 거실로 밀려들어 왔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그는 보았다. 유리창에 선명하게 찍힌… 손바닥 자국. 축축하고 어두운, 하지만 너무나도 분명한 손바닥 자국. 마치 누군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썼던 것처럼.

지훈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닿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손바닥 자국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위로 움직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유리창을 기어오르는 것처럼.

그의 시선이 손바닥 자국을 따라 천천히 위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시선이 닿은 곳에는…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창문 상단, 그가 미처 담요로 가리지 못했던 아주 작은 틈새 너머로, 핏빛 같은 두 개의 섬광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붉게 타오르는 두 개의 눈동자처럼.

그것은 바깥 세상의 지옥에서 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