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김형사!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창문은 안에서 걸어 잠겼고, 문도 밖에서는 열 수 없게 안에서 잠겨 있었어! 유령이라도 다녀갔다는 거야, 뭐야?”
김형사의 목소리는 초조함과 당혹감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의 넓은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들이 마주한 광경은 베테랑 형사인 그에게도 난생 처음 보는 기묘한 밀실 살인 사건이었으니까.
“진정하십시오, 김형사님.”
차분하면서도 나른한 목소리가 공간을 가로질렀다. 목소리의 주인, 강진우는 흐트러짐 없는 와이셔츠 차림으로 방금 도착한 참이었다. 그의 눈은 푸른빛이 도는 회색으로, 항상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움을 품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퍼즐을 단번에 맞출 준비가 된 사람처럼.
그가 나타나자, 방안에 가득했던 혼란스러운 기류는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수많은 현장 요원들이 웅성거리던 소리도, 증거 사진을 찍던 셔터 소리도 잠시 멎었다. 모두의 시선은 한 사람, 강진우에게로 향했다.
진우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핏자국이 흥건한 마호가니 책상, 그 위로 쓰러진 채 싸늘하게 식어버린 피해자 박 회장. 그의 가슴에는 잘 연마된 은제 나이프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조명 아래 섬뜩하게 빛났다.
“피해자는 박성철 회장입니다. 나이는 68세. 사인은 흉기에 의한 과다 출혈로 추정됩니다.” 김형사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사건 시각은 어젯밤 11시에서 자정 사이로 추정됩니다. 부검 결과가 나와봐야 정확해지겠지만요.”
진우는 대꾸 없이 방을 한 바퀴 돌았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먼지 한 톨, 벽지의 미묘한 주름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듯했다. 그는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은 안쪽에서 걸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밖에서는 도저히 열 수 없는 구조였다.
“창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이 방으로 통하는 문은 유일하게 저 복도 문 하나입니다. 이 문 역시 안쪽에서 이중 잠금장치로 잠겨 있었습니다.” 김형사가 설명을 덧붙였다. “밖에서 침입한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강제 개방의 흔적도 없고요.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자살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회장님의 오른손에는 방어흔이 선명했습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시종일관 무미건조했다. 마치 흥미로운 연극 무대를 관람하는 관객처럼. 그의 눈빛만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정보를 흡수하고 있었다.
“그럼, 범인은 어떻게 나갔을까요?” 진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른했지만, 그 안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탐색이 담겨 있었다.
“그게 문제입니다. 마치 범인이… 이 방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것 같습니다.” 김형사가 한숨을 쉬었다. “설마 유령이라도 있었을까요? 미치겠습니다, 정말.”
진우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왔다. 그의 시선은 피해자의 시신을 지나, 책상 위의 물건들을 훑었다. 잉크병, 만년필, 그리고… 찢어진 종이 한 장.
“이 종이는 뭡니까?” 진우가 물었다.
“아, 그건 회장님이 어제 밤에 작성하려던 계약서 초안인 것 같습니다.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계셨다고 하더군요. 아마 분노에 휩싸여 찢은 게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김형사가 답했다.
진우는 말없이 종이를 집어 들었다. 가장자리가 불규칙하게 찢겨 있었다. 잉크 자국이 조금 번져 있었는데, 마치 급하게 찢어낸 듯한 흔적이었다. 진우는 종이를 잠시 들여다보더니, 이내 다시 내려놓았다. 그의 눈은 이미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책상 아래, 피해자의 발치에 떨어진 작은 유리 조각. 일반적인 파편이라기보다는, 아주 정교하게 가공된 듯한 형태였다. 진우는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만져보니, 날카롭지 않고 매끄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작은 렌즈 조각 같기도 했다.
“이건…” 진우가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에 미미한 흔들림이 포착되었다. 무언가를 발견한 순간의 징조였다.
김형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진우를 바라봤다. “그게 뭡니까, 강 탐정님? 그냥 유리 조각 같은데요. 혹시 회장님 안경 파편일까요? 안경은 저쪽에 온전하게 놓여 있습니다만.”
진우는 대답 대신, 유리 조각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돌려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방 전체를 훑었다. 그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었다. 바로, 천장의 고급스러운 샹들리에. 샹들리에는 수십 개의 크리스탈 장식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그중 하나, 미세하게 이가 빠진 듯한 크리스탈에 멈췄다.
진우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비웃음도, 즐거움도 아닌, 오직 해답을 찾아낸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차갑고도 날카로운 미소였다.
“김형사님.” 진우가 김형사를 불렀다. “문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김형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진우를 바라봤다. “하지만, 현장 보존 때문에… 범인이 이 방에 없다는 것 외에 달리 건드린 흔적은 없었는데요.”
“열어주십시오. 그리고, 저 문 잠금장치를 자세히 관찰해 주시겠습니까?” 진우는 그의 말을 끊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반론도 허용치 않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김형사는 마지못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진우가 지시한 대로 잠금장치를 살폈다. 이중 잠금장치. 안에서 잠글 경우, 밖에서는 열 수 없는 구조. 김형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특별한 점은 없었다.
“범인은 이 문을 통해 나갔습니다.” 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김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하지만,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는데요!”
진우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세상의 모든 어리석음을 비웃는 듯했다.
“밀실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놓치셨습니다, 김형사님. 이 방은 처음부터 완벽한 밀실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범인이 나갈 때는 말이죠.” 진우는 손에 든 유리 조각을 들어 올렸다. “이 조각은 천장의 샹들리에에서 떨어져 나간 크리스탈 파편입니다. 크기는 대략 이 정도죠.”
그는 잠금장치를 가리켰다. “범인은 살인을 저지른 후, 이중 잠금장치의 빗장 틈새에… 이 크리스탈 조각을 아주 정교하게 끼워 넣었습니다. 마치 고정 쐐기처럼요. 그리고는 문을 닫았을 겁니다.” 진우는 문 안쪽으로 한 발짝 더 들어섰다. “이 조각이 일종의 ‘임시 잠금장치’ 역할을 한 겁니다. 밖에서 보았을 때는 안에서 걸어 잠긴 것처럼 보였겠죠. 하지만 사실은 그저 크리스탈 조각 하나로 문이 닫혀 있었을 뿐입니다.”
“그, 그럼 어떻게 범인은 나갔다는 겁니까?” 김형사가 다급하게 물었다.
진우는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이번에는 어딘가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나가고 나서… 복도 끝 저 비상벨 옆에 달려있는 작은 화분을 떨어트려 그 진동으로 크리스탈 조각을 떨어트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문에 아주 가벼운 충격만 줘도 쉽게 떨어져 나갈 만큼만 끼워 넣었을 수도 있겠죠. 이 정도의 치밀함을 가진 범인이라면, 그 정도의 계획은 세웠을 겁니다.”
김형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복도 끝에는 정말 작은 화분이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
“이럴 수가… 그게 전부였다고요? 겨우 유리 조각 하나로… 밀실 살인을 위장했다는 겁니까?”
진우는 대꾸 없이, 다시 바닥에 떨어진 유리 파편들을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이미 사건의 다음 단계, 즉 범인의 심리로 향하고 있었다. 누가, 왜, 이렇게 치밀하고도 잔인한 트릭을 꾸며냈을까. 단순한 살인이 아니었다. 이건… 메시지였다. 범인이 강진우에게 던지는 도전장이자, 피해자에게 전하는 마지막 조롱.
“밀실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진우는 낮게 읊조렸다. “진정한 밀실은… 언제나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죠. 이제는 그 밀실을 열 차례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이 섬뜩하게 공간을 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