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새벽별 거점의 밤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길고 깊었다. 강철과 콘크리트로 대충 얼기설기 덧대어진 벽 너머에서는 굶주린 그림자들이 끝없이 으르렁거렸다. 인간의 피와 살에 미쳐버린 망자들의 합창은 비록 둔탁한 소음으로 걸러졌지만, 그 존재감만으로도 생존자들의 신경을 갉아먹는 칼날과 같았다. 하지만 오늘 밤, 그 망자들의 울음소리보다 더 차갑고 날카로운 비명이 거점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지랄이야!”

김준호 거점장의 격앙된 목소리가 새벽별 중앙 통로를 찢어발겼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단단하고 흔들림이 없었지만, 지금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만큼 그가 마주한 상황이 상식을 벗어난 것이라는 방증이었다.

강태민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 올리며 하품을 삼켰다.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간신히 발걸음을 옮겼다. 불평 한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의 지루함을 덜어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식의 ‘지랄 같은 일’뿐이었으니까.

“무슨 일입니까, 거점장님. 누가 시체라도 됐나 보네요.” 강태민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김준호는 그를 돌아보며 눈을 부라렸다. “시체? 시체 정도가 아니야, 태민아. 이서준이 죽었어. 그것도… 저 방에서.”

그가 가리킨 곳은 거점 내에서도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보급 창고 안쪽의 작은 사무실이었다. 두꺼운 강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 주변으로는 이미 몇몇 생존자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서성이고 있었다. 이서준은 거점의 보급을 책임지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인데, 그 ‘방’이라는 말에 강태민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저 방이 왜요?”

“방이… 안에서 잠겨 있었어. 내가 직접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고!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는데… 이서준 혼자였다고. 대체 누가 죽이고 나간 거지?” 김준호는 답답한 듯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의 옆에는 거점의 의료 담당인 박선영이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죽었을 때부터 이미 방이 잠겨 있었나요?” 강태민이 물었다.

박선영이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어젯밤에 마지막으로 서준 씨를 봤을 때, 혼자서 방으로 들어가셨어요. 밤새도록 인기척이 없었고… 아침에 보급품 확인하러 갔더니, 문이 잠겨 있는 거예요. 계속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준호 씨가 문을 부수고 들어갔는데…” 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강태민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문 앞으로 다가섰다. 육중한 강철 문은 김준호의 무지막지한 힘에도 불구하고 비틀린 흔적만 남긴 채 간신히 열려 있었다. 안쪽의 굵은 강철 빗장은 완전히 부서져 너덜거렸다. 그 틈으로 보이는 방 내부는 어둡고 좁았다.

“잠시 비켜주세요.” 강태민은 어깨 너머로 말하며 안으로 발을 들였다.

방은 보급품 목록이 빼곡히 적힌 문서들과 펜, 그리고 빈 커피잔 하나가 놓인 책상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책상에 이서준이 축 늘어져 있었다. 하얀 셔츠는 가슴 부위에 검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날카로운 흉기에 찔린 듯한 흔적. 하지만 주변 어디에도 흉기는 보이지 않았다.

강태민은 피 묻은 시신을 힐끗 보고는 무심한 듯 방 안을 훑었다.
창문은 있었다. 하지만 손바닥만 한 크기에 굵은 쇠창살이 박혀 있었고, 안쪽에서는 두꺼운 철판으로 이중 잠금 되어 있었다. 성인 남자가 드나드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환기 외에는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할 용도였다.

그는 무릎을 굽혀 바닥을 살폈다. 희미한 흙먼지와 함께 신발 자국 몇 개가 선명했다. 모두 김준호와 박선영의 것이었다. 범인의 발자국은 없었다. 강태민은 시신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눈을 감고 편안한 듯 보이는 이서준의 얼굴. 고통스러워한 흔적은 없었다. 마치 급작스럽게, 저항할 틈도 없이 당한 것 같았다.

“방 안에 흉기는 없습니까?” 강태민이 물었다.
“없어. 내가 구석구석 다 뒤져봤어.” 김준호가 굳은 얼굴로 답했다. “자살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하고… 누가 안에서 잠그고 나간 건데, 흔적도 없고. 대체 어떻게 나갔다는 거야?”

강태민은 말없이 방 안의 벽과 천장을 꼼꼼히 살폈다. 모두 단단한 콘크리트와 강판으로 되어 있었다. 비밀 통로 같은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구조였다. 이 방은 완벽하게 밀폐된, 오로지 이 강철 문만을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었다.

완전한 밀실.

강태민은 다시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준호의 힘으로 부서진 빗장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안에서 닫힌 빗장. 외부인의 침입은 불가능했다. 내부에서 살인을 저지른 후 범인이 사라졌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이라도 당기듯 손가락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이 문, 언제부터 여기 있었죠? 그리고 이 빗장은요?” 강태민이 물었다.
“원래는 창고 문이었는데, 보안 강화한다고 우리가 덧댄 거야. 빗장은 내가 직접 달았지. 아주 튼튼해. 겉보기엔 절대 부술 수 없게 생겼잖아.” 김준호가 자부심을 담아 말했다.

“아주 튼튼하죠. 겉보기엔.” 강태민은 김준호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비웃음 섞인 어조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문틀과 문 사이의 틈새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그리고는 문 아래쪽 바닥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폈다. 희미한 흙먼지 속에서 아주 가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실금 같은 자국이 문턱을 가로질러 나 있었다. 단순한 먼지 자국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날카롭고 선형적이었다.

강태민은 고개를 숙여 부서진 빗장 부분에 코를 박듯이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빗장이 문틀의 걸쇠에 물려 있던 흔적을 자세히 살폈다. 빗장과 걸쇠의 마찰로 생긴 긁힘 자국. 그것은 일반적인 빗장의 작동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세하지만 이상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빗장 옆면, 정확히 걸쇠와 맞닿는 부분에 아주 가는 금속이 쓸고 지나간 듯한 섬세한 흠집이 보였다.

“흠… 빗장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범인이 나간 후의 일이죠.” 강태민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김준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범인이 나갔다고? 그럼 누가 안에서 잠갔다는 거야?”

강태민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퍼즐의 조각들이 맞춰지고 있었다.
“범인은 문이 닫히기 전, 아주 얇고 질긴 실 같은 것을 빗장에 연결했습니다. 아마도… 문 아래 아주 작은 틈을 통해 바깥으로 빼냈겠죠. 살인을 저지르고 문을 닫은 뒤, 바깥에서 그 실을 당겨 빗장을 걸쇠에 물린 겁니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실을 끊거나 도로 빼내간 거죠. 빗장과 걸쇠에 남은 이 미세한 마찰 흔적은 그걸 증명합니다. 흉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을 이용해 빗장을 잠근 뒤, 흉기도 역시 문틈을 이용해 바깥으로 빼돌린 겁니다.”

김준호와 박선영은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밀실의 트릭이 허무하게 깨지는 순간이었다. 빗장이 안에서 잠겨 있었기에 아무도 범인이 문밖으로 나갔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하지만… 누가, 그리고 왜 이서준을 죽인 거죠? 대체 왜 이런 복잡한 수법까지 써가면서?” 김준호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강태민은 시신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그리고 책상 위에 흐트러진 보급품 목록들을 천천히 훑었다. 그의 눈은 이미 다음 퍼즐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이제부터 찾아야 할 문제겠죠.” 강태민의 목소리에는 드디어 지루함 대신 미묘한 흥미가 깃들어 있었다. “밀실은 사라졌으니, 이제 범인을 잡을 차례입니다.”

새벽별 거점의 밤은 여전히 그림자처럼 길었지만, 적어도 그 그림자 속에서 벌어진 ‘불가능한 살인’의 수수께끼만큼은 한 줄기 빛을 찾은 듯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빛을 따라 범인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