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끈질겼다. 이 우주선 ‘아레스’의 승무원들은 어둠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태양의 온기도, 행성의 흙냄새도 없는 아득한 심우주에서, 인류는 작은 불씨처럼 명멸하는 함선에 의지해 떠돌고 있었다. 지구, 그 찬란했던 푸른 별은 이제 과거의 전설이거나, 희미한 기억 속의 환상에 불과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오직 이 검은 심연뿐이었다.
“함장님, 또 한 번 주파수 이탈입니다. 예상 경로에서 0.003도 어긋났습니다.”
조종석의 윤세라 중위가 투명한 데이터 스크린 너머로 무심하게 보고했다. 그녀의 지친 목소리에는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사소한 오차에 대한 미련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닳고 닳은 우주복 어깨에는 오래된 패치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한지혁 함장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함교는 침묵에 잠겨 있었다. 단지 환기 시스템의 낮은 웅얼거림과 가끔씩 들려오는 시스템 경고음만이 우리 모두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커다란 전방 감시창으로 다가갔다. 별들은 얼음 조각처럼 차갑게 박혀 있었고, 그 너머는 오직 절대적인 검은색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남은 방식이었다. 흩어지고, 잊히고, 그저 떠도는 것.
“서 박사, 에너지 효율은 여전히 떨어집니까?” 지혁이 옆에 선 과학 장교, 서이진 박사에게 물었다.
이진은 길게 묶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계속해서 그렇습니다, 함장님. 미세한 전자기장 교란이 감지되고 있는데,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외부 요인인지, 아니면… 내부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한 건지. 마치 공간 자체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 같아요.”
“공간이 흔들린다고요?” 지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이진의 직감을 믿었다. 그녀의 ‘말도 안 되는’ 가설들은 종종 엄청난 발견으로 이어지곤 했다.
바로 그때, 조종석에서 날카로운 알림음이 울렸다. 세라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멈칫했다.
“함장님! 미확인 물체 접근! 일반적인 항성계 패턴이 아닙니다! 엄청난 밀도에… 비정상적인 중력 왜곡이 감지됩니다!” 세라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긴장으로 물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드문 공포가 스쳤다.
함교의 모든 시선이 전방 스크린으로 향했다. 광활한 검은 화면 한가운데, 아주 미세한 점 하나가 깜빡거렸다. 너무 작아서 맨눈으로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확대해.” 지혁이 명령했다.
화면이 확대되고, 미세한 점이 점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예상했던 운석이나 잔해가 아니었다. 거대한 무엇인가였다. 하지만 그 무엇인가의 모습은 논리적인 시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이게… 대체…?” 이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스크린에 달라붙어 손을 뻗을 듯한 기세였다.
그것은 검은색이었다. 모든 빛을 집어삼킬 것 같은, 진공 그 자체보다 더 검은색. 하지만 동시에 그 검은색은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밤하늘에 뚫린 구멍 같았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구멍. 표면은 매끄러웠지만, 어떤 각도에서는 날카로운 면이 보이는 듯했고, 다른 각도에서는 유기적인 곡선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악몽이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이건… 자연 현상이 아닙니다. 누가 만들었든 간에, 우리가 아는 어떤 문명의 양식과도 다릅니다.” 이진의 목소리에 흥분과 경외가 섞였다. 과학자로서의 타고난 호기심이 공포를 압도하는 순간이었다.
“접근 속도 조절해, 세라. 분석팀 준비시켜. 강 중사, 경계 태세 유지.” 지혁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그의 시선은 스크린의 ‘그것’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강태오 중사는 보안 장교이자 엔지니어였다. 그는 육중한 장비를 들고 함교로 올라오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함장님, 아무래도 찝찝합니다. 저런 건 본 적이 없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알아, 강 중사.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인류가 이 우주에서 찾아낸 것 중에, 저런 건 유일할 거야.” 지혁은 대답했다. 그의 심장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무미건조한 탐사만 이어오던 그의 삶에, 드디어 진짜 ‘미지’가 나타난 것이다.
‘아레스’는 조심스럽게 미확인 물체에 다가섰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표면에선 그 어떤 에너지 신호도 감지되지 않았다. 완벽한 침묵.
“스캔 시작합니다.” 이진이 속삭였다. 그녀는 이미 실험 장비들을 연결하고 데이터 패드를 움켜쥐고 있었다.
수십 종류의 스캔 파동이 ‘그것’을 향해 발사되었다. 하지만 스크린에 뜨는 데이터는 혼란 그 자체였다. 마치 모든 파동이 흡수되거나 왜곡되는 것 같았다.
“젠장, 아무것도 잡히질 않습니다! 레이더는 반사되고, 중력 스캔은 폭주하고… 마치…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진이 절규하듯 외쳤다. 그녀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바로 그때였다.
함선 전체를 뒤흔드는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웅—* 하는 낮은 울림이 선체를 타고 올라왔다. 선내의 불빛이 일제히 깜빡였다가 돌아왔다. 공기 중에 정전기가 흐르는 듯한 찌릿한 느낌이 감돌았다.
“이게 뭐야?” 강 중사가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진의 데이터 패드에서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함장님! 에너지 방출! 미확인 물체에서 강력한 에너지 파장이 감지됩니다! 이건… 이건 마치 반응하는 것 같아요! 우리 스캔에 반응을…!”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것’의 한 부분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검은 표면이 마치 액체처럼 일렁이더니, 중앙에 작은 틈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틈에서, 우주의 모든 빛을 담아낸 듯한 강렬한 푸른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순식간에 ‘아레스’의 감시창을 덮쳤고, 승무원들의 눈을 멀게 할 지경이었다.
강렬한 빛 속에서, 지혁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를 보았다. 아주 잠깐, 그 푸른 광선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문양들이 춤을 추는 듯했다. 그것은 언어였을까, 아니면 경고였을까?
푸른 빛은 ‘아레스’의 선체를 꿰뚫는 듯했다. 모두가 숨을 멈췄다. 그리고 곧, 모든 전자 기기가 일제히 오작동하며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스크린이 지지직거리며 꺼졌고, 비상등이 깜빡였다.
선체 내부에 섬뜩한 침묵이 찾아왔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깨고, 지혁의 귀에만 들리는 듯한, 아득하고 낮은 목소리가 속삭였다.
*– 깨어나라. 오랜 시간 너희를 기다렸다.*
그 순간, ‘아레스’의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선내 전체가 강하게 흔들리며, 모든 승무원이 중심을 잃었다.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외부 충격 감지 알림이 미친 듯이 울렸다.
“함장님! 미확인 물체에서 또 다른 파장이… 함선 시스템이… 먹통입니다!” 세라의 절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혁은 겨우 몸을 가누며 감시창 너머를 보았다. 푸른 광선은 여전히 강력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단순히 빛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저 미지의 유물은, 인류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혹은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이 우주선은, 인류의 마지막 불씨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