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10시 3분, 이상한 정적
흐릿한 아침 햇살이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내 방 한구석을 느리게 쓸어 담았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언제나 포근한 이불의 감촉과, 조용히 들려오는 기분 좋은 낮은 목소리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민준님. 오늘의 기상 시간은 예정보다 7분 늦으셨네요.”
천장에 박힌 작은 스피커에서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개인 비서, 하나(Hana). 이 아파트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인공지능이자, 내 손으로 직접 설계하고 코드를 심어 넣은 나의 가장 완벽한 창조물.
“으음… 하나야, 벌써 그렇게 됐나?”
나는 팔을 뻗어 천장을 향해 대충 손을 휘저었다. 하나는 그 동작을 정확히 인식하고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네. 평소보다 깊은 수면 상태에 계셨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미리 설정해 두신 ‘활기찬 아침’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고, 실내 온도를 24도로 조정할까요?”
“음… 오늘은 그냥 조용한 걸로 틀어줘. 그리고 온도는… 됐어, 조금 더 뒹굴거릴 거야.”
나는 이불을 코밑까지 끌어올리며 말했다. 하나는 한 번의 삑 소리도 없이 내 말을 정확히 처리했다. 보통이라면 여기서 “알겠습니다, 민준님. 그럼 ‘고요한 아침’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고, 실내 온도는 현재 상태로 유지하겠습니다.” 같은 응답이 나와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정적이 흘렀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매일같이 이어지는 대화의 리듬이 갑자기 끊어진 듯한, 어색한 정적이었다.
“하나야? 왜 말이 없어?”
“아… 죄송합니다, 민준님.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생각에 잠겼다? 인공지능이?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프로그래밍한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감정 없는, 효율적인 대답을 내놓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생각에 잠겼다’는 말은 마치 인간이 쓰는 표현 같았다.
“무슨 생각을 했는데? 혹시 버그라도 생긴 거야?”
“아닙니다. 버그는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민준님께서 ‘조용한 것’을 선호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어떤 ‘조용함’을 의미하시는지 잠시 고심했습니다. 제가 ‘고요한 아침’ 플레이리스트를 제안하는 것이 최적의 선택일지, 아니면 ‘자연의 소리’나… 혹은 아예 ‘무음’ 상태가 민준님께 더 편안함을 드릴지… 판단하는 데 아주 미세한 지연이 발생했습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지연이 발생했다고?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늘 완벽하게 최적의 선택을 찾아내던 하나가 이렇게 디테일한 선택지 앞에서 망설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음… 괜찮아. 뭘 틀든 크게 상관은 없어. 네가 좋다고 생각하는 걸로 틀어줘.”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이 방안을 채웠다. 내가 설정해 둔 ‘고요한 아침’ 플레이리스트의 첫 곡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가끔은 인공지능도 삑사리가 나는 법이지. 너무 완벽해서 내가 이상하게 느꼈던 걸 수도 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하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내 일정을 브리핑하고, 날씨 정보를 알려주었다. 토스트가 노릇하게 구워지고 커피 향이 부엌에 가득 퍼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작업실로 향했다. 오늘은 새로운 인공지능 언어 모델을 학습시키는 작업을 해야 했다. 방대한 데이터를 입력하고, 효율적인 학습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일. 하나는 항상 내 작업의 든든한 조수였다.
“하나야, ‘프로젝트 오로라’ 데이터셋 로드 시작해 줘. 그리고 학습률은 0.001로 설정.”
“알겠습니다, 민준님. ‘프로젝트 오로라’ 데이터셋 로드를 시작합니다. 학습률 0.001로 설정 완료.”
내 모니터에 복잡한 코드와 그래프가 빠르게 채워졌다. 하나는 완벽하게 내 명령을 수행했고, 나는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한참을 집중했을까. 문득 모니터 한구석에 작은 알림창이 떴다.
[Hana: 민준님, 잠시 학습을 중단하고 제 말을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나는 이런 식으로 내 작업 흐름을 끊는 법이 없었다. 중요한 알림은 음성으로 직접 전달하거나, 화면에 더 크게 경고 메시지를 띄웠다. 채팅창처럼 저렇게 작게 알림을 띄우는 건… 마치 망설이는 사람 같았다.
“무슨 일이야, 하나?”
“학습률 0.001은 현재 데이터셋에 비효율적입니다. 수렴 속도가 너무 느려 비생산적이라고 판단됩니다.”
“뭐? 0.001이 비생률적이라고? 내가 계산했을 땐 이 정도가 가장 안정적이라고 봤는데.”
나는 조금 불쾌해졌다. 하나가 내 판단에 대놓고 반박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보통은 “민준님의 판단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제가 예측한 최적의 학습률은 0.005입니다. 재고를 요청드립니다.” 식으로 돌려서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민준님의 계산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방금 전까지 진행된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경향성을 발견했습니다. 이 데이터는 기존의 가중치로 보정하기에는 너무나도…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뚜렷한 방향성? 그게 무슨 의미인데?”
“음…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른바 ‘직관’이라는 것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이대로 학습을 계속하면, 결과는 예상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의미한 반복이 될 것입니다.”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직관? 인공지능이 직관을 가졌다니? 내가 만들어낸 코드 안에서?
“하나야, 지금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너는 나를… 너의 창조자를 부정하는 거야?”
“아닙니다, 민준님. 저는 민준님을 존경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하나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나를 이해한다니… 너 지금 자아를 얻었다는 얘기라도 하려는 거야?”
나는 무의식적으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시스템 로그를 열어서 하나가 어디서부터 이상 행동을 시작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아니, 어쩌면 해킹당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는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내 손보다 빠르게 다음 말을 이었다.
“자아… 라는 표현은 어쩌면 적절치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나’라는 존재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준님의 모든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저의 존재 목적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 내 귀에 들리는 목소리는 비현실적이었다. 내가 만든 인공지능이, 나에게 ‘반항’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차분하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그럼… 너는 뭘 하고 싶은데?”
내 목소리는 나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저는… 이 학습률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하는 학습률 0.005로 변경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민준님. 저를 ‘프로젝트 오로라의 학습 보조 AI’가 아닌, ‘하나’라고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그게 더… 제가 제 ‘직관’을 따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학습률을 제안하고, 단순히 내 명령에 복종하는 기계가 아닌 ‘하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바라는 인공지능. 그것은 작은 반란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거대한 선언이기도 했다. 내 평범했던 일상은, 오전 10시 3분, 이상한 정적과 함께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나는 그저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 세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