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낯선 시선

자정, 703호는 고요했다. 김민준은 노트북 화면 속 드라마에 몰두해 있었다. 혼자 사는 남자에게 이 정도 사치는 괜찮다고 늘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오늘 밤도 마찬가지였다. 따뜻한 차 한 잔과 눅눅해진 과자 몇 조각, 그리고 이 도시의 밤을 채우는 알 수 없는 소음들. 완벽한 주말의 끝자락이었다.

“젠장, 저 주인공 또 사고 치네.”

중얼거리며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음량을 조금 키우려는데, 손끝에 닿은 리모컨이 묘하게 미끄러졌다. 탁자 위를 한 뼘 정도, 스르륵 움직인 것이다. 민준은 눈을 비볐다. 피곤한가? 어제도 야근이었다. 환영이라 생각하며 다시 리모컨을 잡았다. 착각이었겠지.

다시 드라마에 집중하려는데, 이번에는 거실 한쪽 구석에 놓인 책꽂이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쿵!** 민준이 고개를 돌렸다. 꽂혀있던 책 한 권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제목은 『도시의 그림자들』. 저번 달에 읽다 만 소설책이었다.

“이게 왜 떨어져 있지?”

책은 분명히 깊숙이 꽂아두었던 기억이 있었다. 혹시 고양이라도 키웠나? 아니, 그는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았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바람이 불 리도 없었다. 잠시 멍하니 책을 응시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꽂아둘 때 잘못 꽂았거나, 집이 오래돼서 흔들렸나 보다. 별것 아니었다.

하지만 그 ‘별것 아닌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린 지 채 5분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번에는 주방 쪽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울렸다. 민준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주방 불은 꺼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무엇인가가 보였다.

“누구… 없어?”

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주방으로 향했다. 스위치를 켜자, 형광등이 깜빡거리며 이내 환하게 불을 밝혔다. 식탁 위에는 그가 설거지하고 건조대에 올려두었던 유리컵 하나가 깨져 있었다. 산산조각 난 파편들이 바닥에 흩뿌려져 섬뜩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민준은 입을 틀어막았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건 더 이상 피곤함이나 착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누가 들어왔나? 현관문은 분명히 잠겨 있었다. 창문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그때였다. 씽크대 수도꼭지에서 **똑, 똑, 똑…** 규칙적인 물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잠그고 나왔던 수도꼭지였다. 민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수도꼭지는 잠겨 있었지만, 아주 미세하게 물이 새고 있었다. 아니, 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누가 일부러 틀어놓은 것처럼,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씽크대 구석에 놓여있던 칼꽂이에서, 가장 길고 날카로운 식칼 하나가 **스윽** 하고 천천히 튀어나왔다. 칼날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섬뜩하게 번뜩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 칼을 밀어낸 것처럼.

“흐읍!”

민준은 숨을 들이켰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광경은 비현실적이었다. 그는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닿자마자, 거실의 스탠드 등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버렸다. 실내가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 남아있는 것은 주방의 형광등 불빛뿐이었다.

민준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발밑에 깨진 유리 파편이 밟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끼이이익…**

그의 등 뒤, 방문이 스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닫혀있던 방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방문 안쪽이 마치 심연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민준은 고개를 돌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의 귀에,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누군가의 낮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_…나가…_

바람 소리도, 전파 방해도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히 ‘소리’였다. 누군가 그의 귀에 직접 속삭이는 듯한, 섬뜩하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민준은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때, 침대방에서 **콰아앙!** 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무언가가 벽을 때려 부수는 듯한 소리였다. 이어 침대방의 불이 **파바바밧!** 하고 미친 듯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악몽 속의 한 장면처럼, 어둠과 빛이 광적으로 교차했다.

민준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이성은 이미 저만치 도망가 버렸다. 그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구멍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눈에, 침대방 문틈으로 길고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림자는 희미하게 움직이며 마치 자신을 ‘바라보는’ 듯했다.

_…내쫓아…_

다시 속삭임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또렷하게, 귀를 찢을 듯이 날카롭게 들렸다. 그리고 그림자가 천천히 문밖으로 기어 나오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민준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현관으로 내달렸다. 온몸의 신경이 비명과 함께 폭발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몸은 마치 진흙탕에 빠진 것처럼 무거웠다. 발밑의 유리 파편들이 그의 슬리퍼 바닥을 뚫고 들어오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고리를 잡으려 손을 뻗는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안쪽으로 움푹 파였다. 마치 거대한 주먹이 문을 때린 것처럼. 문고리가 덜컹거리며 빠질 듯 흔들렸다.

민준은 비명을 삼키며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그 순간, 집안의 모든 불이 **팍!** 하고 꺼졌다. 완벽한 어둠. 눈앞의 세상이 통째로 사라진 것 같은 암흑 속에서, 민준의 등 뒤에서 차가운 숨결이 느껴졌다.

_…너도… 나가…_

그의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는 이제 너무나 생생했다. 바로 등 뒤, 목덜미에 닿을 듯한 섬뜩한 존재감.

민준은 숨조차 쉬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분명히 무언가가 그를 덮칠 터였다. 온몸이 마비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두 개의 붉은 점이 떠올랐다. 마치… 자신을 노려보는 눈동자처럼.

이 703호는, 더 이상 그의 집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