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균열: 일상 속의 틈

자정의 침묵은 언제나 익숙했다. 창밖으로는 서울의 불빛이 아득하게 빛나고, 방 안은 오래된 책들과 낡은 탁상시계의 규칙적인 태엽 소리만이 공기를 채웠다. 지훈은 늘 그랬듯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그는 더 이상 잠 못 이루는 밤에 익숙했다. 몇 년 전, 그 기이한 세계에서 돌아온 이후로 그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평범한 일상이란 단어는 이제 그림책 속의 환상 같았다.

오늘 밤도 여전했다. 그러나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
고요함 속에 아주 작고, 희미한 소리가 섞여들었다. ‘드르륵.’ 아주 미세한 마찰음이었다.
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시계 소리도 아니었고, 바깥의 소음도 아니었다. 마치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돌멩이가 바닥에 끌리는 듯한 소리.

“젠장, 쥐라도 들어왔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좁은 원룸은 쥐가 드나들 만한 곳이 아니었다. 환기구까지 꼼꼼히 막아두었다. 게다가 이 소리는 벽 속에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바로 옆, 협탁 위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협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열쇠였다. 아파트 현관문 열쇠, 그리고 낡은 은색 열쇠고리.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가만히 놓여있던 그것이, 아주 천천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투명한 실로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열쇠는 탁자 위를 미끄러졌다. ‘드르륵.’ 소리는 거기서 나는 것이 맞았다.

지훈은 숨을 멈췄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손은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피가 차갑게 식는 듯한 감각. 그의 머릿속은 복잡한 질문들로 가득 찼다.
이건 환각인가? 피곤해서 착각한 건가?
하지만 그의 눈은 분명히 보았다. 열쇠는 명백히 움직였다. 1cm, 아니 2cm 정도 움직인 후, 멈췄다.

쿵.
심장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는 다시 침대에 앉아 열쇠를 노려봤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열쇠는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농담하지 마.”

그는 낮게 읊조렸다. 손을 뻗어 열쇠를 집어 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열쇠를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아마도 피로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지난 며칠 밤낮으로 의뢰받은 그림을 그리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래, 단순히 피로 때문이야.

그는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잠은 달아난 지 오래였다.
눈을 감았지만, 어둠 속에서도 열쇠가 미끄러지던 그 광경이 생생하게 재현됐다.

새벽 두 시.
정적이 다시 방을 지배했다. 지훈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애써 잠을 청했다.
그때, 냉장고에서 ‘띠링’ 하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지훈은 번쩍 눈을 떴다.
그는 잠결에 착각했을 리 없었다. 냉장고는 분명히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물을 마셨을 때도 닫혀 있었다.
삐걱이는 소리가 들렸다. 냉장고 문이 천천히 열리는 소리.

차가운 공기가 방안으로 스며들었다.
지훈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맨발로 차가운 바닥을 디뎠다.
주방으로 향하는 짧은 복도 끝, 냉장고 문은 쩍하니 열려 있었다. 안의 내용물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였다.
그는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불이 번쩍 켜졌다.
형광등의 차가운 빛이 주방을 환히 비췄다.
텅 빈 주방. 열려 있는 냉장고 문. 그리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실내.

“이게 대체… 무슨.”

그는 냉장고 문을 닫았다. 묵직한 플라스틱 문이 ‘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뛰었다.
이건 더 이상 착각이 아니었다. 누군가 장난을 치는 것이라면 설명이 가능할까?
하지만 이 아파트에는 그 혼자 살고 있었다. 침입자의 흔적도 없었다.
지훈의 뇌리에는 아득한 옛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 이세계에서 처음 겪었던 기이한 현상들.
물건이 저절로 움직이고, 기척 없는 소리가 들리고, 그림자가 춤을 추던 밤들.
그것은 언제나, 언제나 거대한 재앙의 전조였다.
설마, 그곳의 것이 여기까지 따라온 것인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등골이 서늘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낯익은 그의 집이었다. 서울 시내의 평범한 아파트.
하지만 방금 전의 경험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훈은 주방에 서서 숨을 몰아쉬었다.
머릿속은 경고음으로 가득 찼다.

그때였다.
거실에서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의 시선이 거실 쪽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거실 한가운데, 그의 오래된 LP 플레이어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 낡은 턴테이블이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젠장…!”

그는 거의 비명처럼 소리치며 거실로 달려갔다.
바늘이 LP판 위로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지지직.’ 하는 노이즈와 함께, 낡은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가 좋아했던, 아주 오래전 절판된 앨범.
그런데 그는 분명 LP 플레이어의 전원을 꺼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었던 곡도 이 곡이 아니었다.

지훈은 턴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음악은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을 뻗어 플레이어의 전원 스위치를 확인했다.
스위치는 꺼져 있었다.
하지만 음악은 계속 흘러나왔다.
마치 전기에 연결되지 않은 유령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듯, 플레이어는 어둠 속에서 음악을 토해내고 있었다.

“거기 누구야!”

그는 소리쳤다. 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었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오직 음악만이 공간을 채울 뿐이었다.
지훈은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의 이세계에서의 경험이 그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이런 현상은 결코 선의로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등 뒤에서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거실 한가운데, 음악이 흐르는 LP 플레이어를 등지고 선 그의 그림자.
그리고 그 그림자 너머로, 희미하게 빛나는 벽에 비친 또 다른 그림자가 보였다.
너무나 길고, 너무나 얇고, 너무나 비현실적인 그림자.
마치 거미의 다리처럼 길쭉하게 늘어난 형태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경고했다.
이것은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이었다.
이곳, 그의 평범한 서울 아파트가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되는, 균열의 시작.

갑자기, LP 플레이어의 음악이 급격하게 왜곡되기 시작했다.
아름답던 재즈 선율이 기괴한 잡음으로 변했다.
마치 음반이 찢어지는 듯한, 금속성의 긁히는 소리가 그의 귀를 찢었다.
그리고 동시에, 거실의 모든 전등이 미친 듯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번쩍, 번쩍, 번쩍.
빛과 어둠이 섬광처럼 번갈아 나타났다.
그 섬광 속에서, 지훈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어둠이 드리워지는 순간마다, 벽에 드리운 그림자들이 형체를 바꾸었다.
한순간에는 사람의 형상이었다가, 다음 순간에는 기이한 짐승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빛이 일제히 꺼지는 순간,
지훈은 보았다.
아니, 느꼈다.
그의 바로 뒤, 어둠 속에서 차가운 숨결이 그의 목덜미를 스치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귀청을 찢을 듯한 절규가,
LP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을 뚫고 터져 나왔다.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깊은 심연에서부터 끌어올린 듯한,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고,
금속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 같기도 했다.
그것은 이 세계의 소리가 아니었다.

지훈은 온몸의 감각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앞에는 완전한 어둠만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곳은 더 이상 그의 집이 아니었다.

이 끔찍한 동거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
그의 이세계에서의 악몽이, 현실의 문을 열고 기어들어온 것이다.
지훈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더듬었다.
무엇을 잡아야 할지, 무엇을 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손끝에 닿은 것은,
차가운 공기, 그리고 섬뜩하리만치 무거운 침묵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 무언가가 그의 어깨를 잡는 듯한 싸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귓가에, 아주 희미하고 섬뜩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 *돌아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