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무원 돔 경기장의 거대한 문이 열리자, 수만 명의 환호성이 강철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모래먼지 섞인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원형 경기장의 중앙, 두 거대한 강철무인이 침묵 속에 마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선대의 무인들이 피와 땀으로 일궈낸 무술의 정수를 담고, 첨단 기술로 빚어낸 거대한 육체. 조종사의 혼이 깃들어 움직이는,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천하의 운명이 결정될 터였다.
돔 천장의 거대한 홀로그램 전광판에 양측 기체의 정보가 빛을 내며 떠올랐다.
**[청풍류 계승자: 류진 (파일럿) / 비뢰 (기체)]**
**[흑철문 계승자: 권태산 (파일럿) / 염마 (기체)]**
류진은 비뢰의 조종석 안에서 심호흡을 했다. ‘비뢰(飛雷)’. 그의 강철무인은 이름처럼 날렵하고 유려한 은회색 외장을 자랑했다. 청풍류의 부드러움과 번개 같은 속도를 구현하기 위해 최적화된 기체였다. 오른팔에는 고주파 진동검이, 왼팔에는 작은 방패 겸 보호 장갑이 장착되어 있었다.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상대는 ‘흑철문’의 권태산. 그리고 그의 강철무인, ‘염마(閻魔)’. 묵직하고 검붉은 강철 덩어리였다. 그저 서 있기만 해도 땅이 울리는 듯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거대한 강철 주먹과 둔중한 방패가, 그 육중한 힘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군, 권사님.” 류진은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결연했다. “오직 승리만이… 이 난세를 끝낼 수 있다.”
천하는 수십 년간 무림 문파들이 조종하는 강철무인들 간의 크고 작은 분쟁에 시달려 왔다. 그리고 이 ‘철혈무혼제’는 그 모든 다툼의 종지부를 찍고, 승리한 문파가 새로운 천하의 질서를 세우는 것을 약속한, 마지막 전쟁이었다.
염마의 조종석에서도 낮은 으르렁거림이 들려오는 듯했다. 권태산의 목소리가 통신으로 흘러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강철을 긁는 듯 거칠었다.
“어린 놈, 네놈의 가벼운 칼춤으로는 내 강철을 뚫을 수 없다. 흑철문 염마의 파괴력을 아직도 모르는가?”
류진은 피식 웃었다.
“무거움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주지. 권사님. 비뢰의 속도 앞에 염마의 강철은 한낱 돌덩이에 불과할 뿐.”
심판장의 거대한 목소리가 돔 전체에 울려 퍼졌다.
“자, 이제 최종 결승전, 철혈무혼제의 대단원을 알린다! 천하의 운명은 누가 거머쥘 것인가!”
시작을 알리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앙!
염마가 거대한 몸을 이끌고 류진에게 돌진했다. 콰앙! 육중한 강철 발이 지면을 부수며 박차고 나가는 소리. 마치 거대한 바위가 굴러오는 듯한 박력이었다. 류진은 비뢰의 기동계를 풀 가동시켰다. 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비뢰가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염마의 육중한 강철 주먹이 으르렁거리며 류진이 서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굉음과 함께 모래먼지가 폭발했지만, 비뢰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흥, 그저 피하기만 할 셈이냐!” 권태산이 비웃었다.
류진은 염마의 후방으로 파고들며 청풍류의 ‘나선회검(螺旋廻劍)’을 발동시켰다. 비뢰의 오른팔에 장착된 고주파 진동검이 굉음을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잉! 칼날이 빛의 고리처럼 돌며 염마의 척추 부분을 노렸다. 일반적인 강철무인의 장갑이라면 그대로 두 동강 났을 공격.
그러나 권태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염마는 예상치 못한 속도로 몸을 비틀며 왼쪽 팔의 강철 방패를 들어 올렸다. 쨍그랑! 날카로운 금속음이 귀청을 때렸다. 비뢰의 검이 방패에 부딪혀 불꽃을 튀겼다. 고주파 진동이 염마의 방패에 전달되었지만, 육중한 방패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건방진!”
염마의 역공이 시작됐다. 거대한 왼팔이 망치처럼 내려찍혔다. 류진은 간발의 차이로 피했지만, 충격파가 비뢰의 자세를 흔들었다. ‘크윽!’ 류진의 조종석에 경고등이 깜빡였다. 염마의 맹공이 이어졌다. 펀치, 발차기, 몸통 박치기. 모든 공격이 파괴적인 힘을 담고 있었다. 류진은 비뢰의 기동력을 이용해 간신히 피했지만, 점점 밀리는 형세였다. 염마의 강철 주먹이 비뢰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콰앙! 충격파가 조종석까지 전해져 류진의 온몸을 뒤흔들었다.
“제길! 너무 단단해!”
류진은 이를 악물었다. 염마는 단순한 파워형 기체가 아니었다. 흑철문의 오랜 연마를 통해, 강철 그 자체가 무술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강철의 무게와 힘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무술.
“이대로는… 안 돼!”
류진은 잠시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비뢰의 은색 외장에는 여기저기 그을음과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 권태산이 비웃듯 통신했다.
“네놈의 가벼운 춤으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고 했을 텐데! 청풍류는 여기까지다!”
류진은 대답 대신 비뢰의 에너지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청풍류의 비기, ‘회오리 검무(廻轉劍舞)’.
비뢰는 마치 거대한 회오리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염마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육안으로 따라가기 힘든 속도. 쉬이이이이잉!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여러 방향에서 들려왔다. 염마는 당황한 듯 사방을 경계하며 팔을 휘둘렀지만, 비뢰는 잡히지 않는 그림자였다. 류진은 정확한 타이밍을 노렸다. 염마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혼란에 빠진 순간, 비뢰가 폭풍처럼 돌진했다. 정면 돌파. 고주파 진동검이 강렬하게 빛났다.
“어디서 감히!”
권태산은 비뢰의 돌진을 감지하고 염마의 모든 에너지를 오른팔 주먹에 집중했다. 흑철문의 모든 힘이 담긴 일격이었다.
“일격필살! 염마쇄성권(閻魔碎星拳)!”
붉은 기운이 염마의 주먹을 감쌌다. 주먹을 쥔 강철 팔의 관절들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를 내며 압력을 견뎠다.
류진은 비뢰의 모든 추진력을 검에 실었다. 조종석의 계기판이 붉은색으로 번쩍였다.
“청풍류! 비뢰일섬(飛雷一閃)!”
은빛 섬광이 번개처럼 뻗어나갔다.
두 거대한 강철무인의 공격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앙!
천무원 돔 전체가 진동하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며 일으킨 충격파는 관중석까지 전해져 사람들을 압도했다. 모래먼지와 섬광이 뒤섞여 시야를 가렸다. 돔 천장의 일부 조명마저 깜빡이며 전장이 암흑 속에 잠시 잠겼다. 수만 명의 관중들은 숨을 죽였다.
잠시 후, 연기가 걷히자 드러난 것은… 두 기체가 그대로 서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염마의 붉은 주먹이 비뢰의 검에 반쯤 꿰뚫린 채 정지해 있었다. 그리고 비뢰의 진동검은 염마의 주먹을 관통한 채, 팔꿈치 부분의 장갑을 찢고 깊숙이 박혀 있었다. 염마의 강철 팔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치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내부 에너지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붉은 빛을 뿜던 염마의 눈이 서서히 꺼져갔다.
염마의 거대한 몸체가 휘청이더니, 이내 굉음과 함께 한쪽 무릎을 꿇었다. 거대한 강철 덩어리가 쓰러지는 듯한 소리가 돔 전체를 울렸다. 패배. 권태산의 통신에서 절망적인 신음이 들렸다.
“크흑… 말도 안 돼… 이 염마가… 내가…!”
그의 목소리에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절규가 담겨 있었다.
비뢰는 검을 회수하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은회색 외장에는 여기저기 그을음과 긁힌 자국이 선명했지만, 기체는 여전히 굳건히 서 있었다. 류진은 조종석 안에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온몸의 힘이 빠지는 듯했다.
“청풍류… 승리.”
그 순간, 천무원 돔 경기장을 가득 메운 수만 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들의 함성은 돔을 넘어 세상 밖으로 울려 퍼지는 듯했다.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승리의 함성이었다. 류진은 그들의 시선 속에서, 천하의 운명이 이제 새로운 바람을 맞이할 것임을 직감했다. 묵직하고 강력했던 옛 시대의 강철은 이제 새로운 유려함과 속도, 그리고 바람의 정신에 자리를 내어줄 터였다. 류진은 비뢰의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그의 심장이 힘차게 뛰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