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 엉망진창 강하리와 미스터리한 구원자

“젠장, 젠장, 젠장!”

강하리는 침대 위 이불을 걷어차며 격렬하게 저주를 퍼부었다. 시계는 이미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9시까지 미팅 장소에 도착해야 하는데, 머리는 폭탄 맞은 것 같고 눈은 제대로 떠지지도 않았다. 어제 밤새 작업했던 일러스트의 마무리 작업에 정신이 팔려 알람을 끄고 도로 잠들었나 보다.

*‘그래, 이럴 줄 알았지. 인생이 늘 이따위지. 잘 풀리나 싶으면 꼭 한 방씩 먹이지.’*

그녀는 겨우 몸을 일으켜 비몽사몽간에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한마디로 처참했다. 헝클어진 머리, 퉁퉁 부은 눈, 그리고 다크서클. 누가 봐도 마감에 찌든 프리랜서의 표본이었다.

“어휴, 강하리. 오늘 미팅 망하면 네 밥줄도 망하는 거야.”

찬물로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대충 질끈 묶은 머리와 스웨트셔츠 차림으로는 도저히 나갈 수 없었다. 옷장 문을 열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미팅에 어울리는 ‘멀끔한’ 옷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구석에 처박혀 있던 베이지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슬랙스를 꺼내 입었다. 그마저도 세탁한 지 오래되어 약간 구김이 가 있었다.

“몰라, 일단 가자!”

고작 10분 만에 씻고 옷을 갈아입는 기염을 토하며 현관문을 박차고 나섰다. 손에는 태블릿과 포트폴리오, 그리고 미처 다 마시지 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 아침밥은 당연히 건너뛰었다.

“지각하면 진짜 죽는다, 강하리!”

엘리베이터 버튼을 미친 듯이 눌렀지만, 숫자는 느릿느릿 올라갈 뿐이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계단으로 내달렸다. 낡은 원룸 건물의 계단을 두 칸씩 건너뛰며 내려가던 하리는 발을 헛디뎠다.

“으악!”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이어서 태블릿과 포트폴리오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것이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안 돼! 내 밥줄!’*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끝이었다. 커피는 포트폴리오를 적시고, 태블릿 액정은 산산조각 날 터였다. 이미지를 그리다 날아간 몇 달 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상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충격은 오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몸이 누군가의 단단한 팔에 의해 부드럽게 지탱되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흩어지던 물건들도 제자리를 찾은 듯,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서 멈칫하는 것 같았다.

하리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짙은 회색의 잘 다려진 수트였다. 그리고 위로 시선을 옮기자,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정돈된 머리칼과 날카롭지만 어딘가 모르게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

그는 한 손으로는 하리의 허리를 부드럽게 잡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허공에 뻗어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과 태블릿, 그리고 포트폴리오가 마치 투명한 손에 들려 있는 것처럼 공중에 떠 있었다. 커피잔에서는 방금 전 쏟아졌던 갈색 액체가 마치 역재생되듯 다시 잔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하리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봤다. 그는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리 쉽게 넘어지시면 곤란합니다, 아가씨.”

나지막하지만 단단한 목소리였다.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낯선 감각이 스쳤다.

“저, 저기…!”

하리가 말을 더듬었다. 남자는 공중에 떠 있던 물건들을 가볍게 휘저어 그녀의 품에 안전하게 돌려놓았다. 커피잔은 완벽하게 밀봉되어 있었고, 태블릿은 아무런 흠집 없이 그녀의 손에 안착했다. 포트폴리오 역시 깨끗했다. 방금 전의 소동은 마치 꿈이라도 꾼 듯이 사라진 것이다.

“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주 같기도 했고, 장난기 넘치는 어린아이의 그것 같기도 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아우라에 하리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별말씀을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는 잡고 있던 하리의 허리에서 손을 뗐다. 그러자 하리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옅게 웃었다.

“저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급한 일이 있으신 것 같더군요.”

“네? 아, 네! 그런데 잠시만요, 성함이라도…!”

하리는 황급히 외쳤지만, 그는 이미 몸을 돌려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가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빨랐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를 보며 하리는 멍하니 서 있었다.

*‘방금… 대체 무슨 일이었지?’*

꿈인가? 아침부터 너무 급하게 움직인 탓에 환상을 본 것일까? 하지만 손에 들린 멀쩡한 태블릿과 닫혀 있는 커피잔은 모든 것이 현실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길이 닿았던 허리춤이 아직도 뜨거웠다.

*‘말도 안 돼. 내가 도깨비를 만났나?’*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른 비현실적인 생각에 하리는 고개를 격렬하게 흔들었다. 미쳤지, 강하리. 잠이 덜 깼나 보다.

“강하리, 정신 차려! 미팅!”

그녀는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하지만 방금 전의 남자의 모습은 잔상처럼 눈앞에 아른거렸다. 완벽하게 재건된 커피잔처럼, 그의 존재는 그녀의 평범한 일상에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 이질적인 조각이었다.

그 시각, 원룸 건물 계단을 벗어난 김도현은 길모퉁이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토록 활기 넘치는 기운이라니. 참으로 신선하군.’*

오랜만에 느껴보는 강렬한 기운이었다. 온몸으로 삶을 끌어안고,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환희에 차는 저 ‘인간’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그의 흥미를 자극했다. 특히 방금 전의 아가씨는 더욱 그랬다.

“하마터면 깨질 뻔했지. 저토록 중요한 물건을.”

그의 시선은 건물 옥상 너머의 하늘을 향했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미세한 균열이 하늘 한구석에 금이 가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 너머에서 아주 희미하게, 자신에게 내려진 ‘금기’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인간계에서 너무 오랫동안 머물렀다. 인간들과 깊이 얽히는 것은 언제나 금지되어 왔다. 특히 저런 ‘희귀한’ 기운을 가진 인간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이 장난기 어린 빛을 띠었다.

*‘꽤나 재미있을 것 같은데. 다음엔 또 어떤 상황으로 날 끌어들일까, 강하리 아가씨.’*

그는 하늘의 균열을 잠시 응시하다가, 이내 뒤돌아 번잡한 도시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발자국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걸어갔다. 그의 심장 깊은 곳에서, 금지된 호기심이 아주 작은 불씨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