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제1장: 묵시의 전장**

그날은, 해가 뜨지 않았다.

어둠이 천지를 뒤덮은 지 어언 칠 년. 칠 년 전, 하늘이 찢어지고 이계의 그림자가 강호에 드리운 이래, 강산은 핏빛으로 물들고 생명의 기운은 시들었다. 사람들은 암흑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직감했다. 무림의 고수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방식으로 맞섰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림자는 끝없이 밀려왔고, 인간의 세상은 마치 거대한 손아귀에 갇힌 먹잇감처럼 서서히 조여들고 있었다. 절망의 끝에서, 마지막 희망의 빛줄기처럼 ‘천하무림대회’가 열렸다. 그러나 그것은 승패를 가리는 잔치가 아니었다. 살아남은 모든 무림의 정예들이 모여, 오직 하나의 목적 아래 기량을 겨루는 피의 제전. 대회에서 우승한 자는, 찢어진 하늘을 봉인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 ‘천인(天印)’의 주인이 될 자격을 얻는다. 그리고 그 천인을 들고 그림자의 심장부로 들어가야만 했다. 돌아오지 못할 길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비연은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한 걸음씩 밟고 올라섰다. 낡고 해진 도포 자락이 차가운 바람에 휘날렸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희망보다는 깊은 절망이 가득한 거대한 원형 경기장이었다. ‘천룡원(天龍院)’이라 불리던, 한때는 무림의 성지였으나 지금은 황량한 폐허가 된 이곳. 흙먼지 섞인 차가운 공기 속에서 수많은 시선들이 번뜩였다. 저마다 전설이라 불리던 강호의 영웅들, 혹은 그림자에 가족을 잃고 복수만을 좇는 광인들. 그들 모두의 얼굴에는 비장함과 피로가 섞여 있었다.

저 멀리, 핏빛 비단 도포를 걸친 ‘혈마교(血魔敎)’의 교주가 보였다. 그의 눈빛은 맹수처럼 번득였고, 그 주변에는 섬뜩한 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독문무공으로 악명 높은 ‘독문파(毒門派)’의 장로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흐린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그의 얼굴은 반쯤 독에 절은 듯 푸르스름했고, 입가에는 기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고고한 자태로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이제는 명맥만 겨우 잇는 ‘청명검문(淸明劍門)’의 마지막 계승자. 백옥 같은 피부와 서늘한 기운을 가진 그 여인은, 마치 얼어붙은 호수 같았다. 비연은 그들의 면면을 훑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 또한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단지, 이 지독한 재앙 속에서 살아남아 여기까지 오게 된 한낱 떠돌이 무인일 뿐.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징소리는 없었다. 오직, 천룡원 중앙에 세워진 거대한 비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암흑의 기운만이 이곳에 모인 이들을 압도할 뿐이었다. 그 비석은, 이계의 문이 열린 순간 함께 나타났다고 전해지는 ‘어둠의 심장’이었다. 이곳에 모인 고수들은 그 기운을 감지하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침묵은 곧 거대한 압력이 되어 공간을 짓눌렀다.

정적을 깬 것은, 천룡원 최고령의 원로이자 이번 대회의 주관자인 ‘고영대사(枯影大師)’였다. 그의 목소리는 늙고 쉬었지만, 뼈에 사무치는 힘이 있었다.
“천하의 모든 무인들이여.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를 잊지 마라. 영광을 위함도, 명예를 위함도 아니다. 오직, 멸망을 막기 위함이다.”
그의 시선이 비연이 서 있는 가장 높은 단상 쪽을 훑었다. “이제,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된다. 첫 번째 시련은… 저 비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의 기운을 버텨내는 자들만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약한 자는 버텨내지 못할 것이며, 육신이 강하다 해도 정신이 꺾이면 무너질 것이다.”

고영대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비석에서 뿜어져 나오던 암흑의 기운이 폭풍처럼 경기장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를 짓누르는 압력이 아니었다.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두려움, 절망, 후회, 그리고 어둠의 유혹을 송곳처럼 파고드는 무형의 힘이었다.
“크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일부 무인들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고통에 몸부림쳤고, 어떤 이는 눈을 뒤집으며 광기에 휩싸이는 듯했다. 비연 또한 온몸의 기혈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과 함께, 잊고 싶었던 과거의 그림자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린 시절, 정체 모를 괴수에게 스승을 잃었던 그날의 참혹한 기억. 피 냄새, 절규, 그리고 무력했던 자신의 모습.

‘버텨야 한다.’

비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이 대회를 통해, 스승의 복수를 하고 이 세상을 지켜야 한다는 막연한 사명감만이 그를 지탱하고 있었다. 눈앞이 흐려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내공을 끌어올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정신을 집중했다. 어둠의 기운이 뼈 속까지 파고드는 듯했지만, 그는 그것을 마치 굳건한 바위처럼 받아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주변의 비명소리가 잦아들었다. 눈을 떴을 때,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수많은 이들이 쓰러져 있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절반이 넘는 무인들이 이미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탈락한 것이다.

비연은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웠다. 그의 시선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둠의 기운 속에서도 꼿꼿이 서 있는 몇몇 강자들에게로 향했다. 그중 한 명, 핏빛 비단 도포를 걸친 혈마교 교주의 섬뜩한 미소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 미소는, 비연의 뇌리에서 스승을 잃던 그날의 괴수의 웃음과 겹쳐지는 듯했다.

‘겨우 시작일 뿐.’

비연은 피 냄새 짙은 전장을 응시하며, 다음 시련을 기다렸다. 천하의 운명을 건 싸움은, 이제 막 그 서막을 올린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