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사무실 창밖으로 서울의 야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쉴 새 없이 오가는 자동차의 불빛이 거대한 생명체처럼 꿈틀거렸다. 이 거대한 도시의 심장부에서, 나는 내 이름 이진우를 건 빌딩을 올려다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스물여덟. 또래들이 이제 막 사회생활에 발을 들이거나 자리를 잡기 시작할 무렵, 나는 이미 수천억 가치의 기업을 일궈낸 젊은 CEO였다.

이 모든 건 기적 같았다. 아니, 기적이라기보다는 피와 땀,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내 옆을 지켜준 한 사람, 박서준 덕분이었다.

“진우야, 이 시간에 아직 안 갔어?”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자, 서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그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자, 대학 때부터 모든 시련을 함께 넘으며 지금의 ‘이터널 드림즈’를 공동 창업한 둘도 없는 친구였다. 우리가 처음 창업할 때 가진 것이라곤 낡은 노트북 한 대와 라면으로 버티던 밤샘 작업의 기억뿐이었다.

“서준아. 너도 아직 있었네. 우리 신작 ‘루미나리아’ 사전 예약, 오픈 30분 만에 500만 돌파했어.”

내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이건 단순히 숫자가 아니었다. 우리가 수년간 공들여 만든 게임이 드디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서준은 내 어깨를 툭 치며 활짝 웃었다. 그의 눈에도 감격이 어려 있었다. “미쳤네, 미쳤어! 역시 진우 너 천재라니까! 이제 진짜 꽃길만 남은 건가?”

“꽃길은 무슨. 아직 시작이야. 내일 투자 설명회 잘 마무리하고, 다음 달 정식 론칭까지 긴장의 끈 놓지 마.”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이 기쁨을 그와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벅찼다. 나는 늘 한 발짝 앞에서 길을 터고, 서준은 늘 내 뒤에서 묵묵히 백업하며 실무를 총괄했다. 완벽한 조합이었다.

“아, 맞아. 내일 설명회 자료 최종본, 내 USB에 있는데 혹시 미리 한번 봐 줄 수 있을까? 혹시나 오타라도 있을까 봐 불안해서.” 서준이 말했다.

“그럼. 어차피 난 밤샐 생각이었어. 이따 내 자리로 가져다줘.”

“고마워, 진우야. 역시 넌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니까.”

그의 미소는 언제나처럼 따뜻했고, 그의 말은 늘 내 마음을 든든하게 했다. 그날 밤, 나는 서준이 건넨 USB를 꽂고 마지막 투자 설명회 자료를 검토하며 새벽을 맞았다. 완벽했다.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시간이었다.

***

다음 날, 투자 설명회장은 열기로 가득했다. 국내외 유수의 투자자들이 운집했고,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이터널 드림즈의 신작 ‘루미나리아’와 우리의 비전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나는 연단에 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다. 내가 개발해온 기술력과 게임의 독창성, 그리고 우리의 목표를 설명할 때마다 객석에서는 감탄사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내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마지막 질문이 끝나고 내가 마무리 인사를 하려던 찰나, 객석 뒤편에서 누군가 불쑥 손을 들었다.

“이진우 대표님.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낯선 얼굴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우 대표님께서는 지난 3년간 회사 자금 200억 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하고 해외 페이퍼 컴퍼니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내는 순식간에 술렁거렸다. 카메라 플래시가 더 격렬하게 터졌다. 200억 원 유용? 해외 페이퍼 컴퍼니? 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무슨 소리냐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내 말에 그 남자는 비웃듯이 서류 한 뭉치를 흔들었다. “여기 이 서류들은 모두 대표님의 친필 사인이 담겨 있습니다. 송금 내역과 해외 법인 설립 서류도 완벽합니다. 심지어 회사 회계 담당자들의 진술까지 확보했습니다. 부인하시겠습니까?”

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친필 사인? 송금 내역?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그 순간, 객석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서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싸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가 누구보다 믿었던 회사 재무팀장까지 함께였다.

“서준아…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서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연단으로 걸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따뜻함이 없었다. 오직 차갑고 날카로운 증오만이 서려 있었다.

“무슨 소리냐고? 진우야. 이제 네가 내려올 때가 됐다는 소리지.”

그의 말은 칼날처럼 내 심장을 꿰뚫었다.

“이진우 대표님은 말씀하신 대로 회삿돈을 횡령하고 탈세한 중대한 범죄자입니다. 저는 이터널 드림즈의 공동 창업자이자 사내 이사로서, 더 이상 이러한 대표의 비리를 묵과할 수 없어 직접 나섰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분명하고 또렷했다. 너무나 침착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는 마치 준비된 대본을 읽듯이 유창하게 나를 범죄자로 몰아세웠다.

“나는… 나는 아니야! 내가 왜 그런 짓을 해! 내가 평생을 바친 회사인데!” 나는 고래고래 소리쳤다.

서준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만 인정해. 너는 늘 천재 소리 듣고,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 하지만 진우야, 회사를 여기까지 키운 건 너 혼자가 아니야. 나는 늘 네 그림자였다. 네가 밤새 코딩할 때, 나는 회사 운영의 모든 잡다한 일을 처리했어. 뒤치다꺼리 전문이었지. 모든 공은 네 것이 되었지만.”

“말도 안 돼… 서준아… 너… 너 설마…?”

그의 눈빛은 비웃음으로 가득했다. “그래, 내가 했어. 네가 늘 천재 소리를 듣는 동안, 나는 네 뒤에서 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조작했지. 네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회사, 그 모든 자금, 명의… 전부 내 손에 있어. 네가 믿었던 그 모든 것들이 실은 내가 쳐놓은 거미줄이었어.”

내 머릿속에 어제 서준이 USB를 건네주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밤새 내가 검토했던 투자 설명회 자료. 나는 그의 USB에 어떤 파일이 있었는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 그 안에 내가 알지 못하는, 나를 파멸로 이끌 무언가를 심어 두었을 터였다. 아니, 어쩌면 그 USB 자체에 내가 모르는 어떤 조작된 서류들이 저장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비틀거렸다.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해 꽂혔다. 경멸, 조롱, 그리고 희열. 특히 서준의 얼굴에는 길고 긴 그림자 속에 숨겨두었던 끔찍한 복수심이 가득했다.

경찰이 들이닥치고, 나는 그 자리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 내 세상은 무너져 내렸다. 내가 모든 것을 바쳐 만든 회사는 순식간에 나의 감옥이 되었고, 내가 가장 믿었던 친구는 나의 처형인이 되었다.

***

그 이후의 시간은 지옥 그 자체였다. 나는 구속되었고, 언론은 나를 ‘젊은 성공신화의 이면에 숨겨진 추악한 욕망’이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내가 항변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서준은 모든 증거를 완벽하게 조작해 놓았다. 내 친필 사인이 위조된 문서들, 내 이름으로 개설된 해외 페이퍼 컴퍼니, 심지어 회사 자금이 내 개인 계좌를 거쳐 빠져나간 것처럼 보이는 정교한 위조 기록들까지.

그는 심지어 나를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눈물까지 흘리며 나를 ‘믿었던 친구의 배신’이라는 프레임으로 가둬 버렸다. 대중들은 서준을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로 칭송했고, 나는 ‘천하의 사기꾼’으로 낙인찍혔다.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서준이 준비한 증거는 너무나 완벽했다. 빠져나갈 구멍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결국 나는 횡령 및 탈세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 갇힌 채, 나는 매일 밤 서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따뜻했던 미소 뒤에 숨겨진 악의. 그가 나를 부르던 ‘진우야’라는 다정한 목소리 속에 감춰진 비수.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줬고, 그는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내 꿈, 내 명예, 내 자유, 그리고 내가 쌓아 올린 전부를.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나는 살아갈 이유를 잃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내 유일한 소망은 오직 하나, 서준에게 복수하는 것뿐이었다. 그를 내 발아래 꿇리고, 그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모든 것을 빼앗는 것. 그 염원만이 나를 지탱했다.

하지만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밥도 넘어가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악몽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질 때쯤, 나는 극심한 고통과 함께 눈을 감았다.

***

차가웠다.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서늘함.

“젠장, 이런 곳에서 죽으려고 했다니…!”

내 귀에 들려온 건 내가 알던 한국어가 아니었다. 전혀 다른, 낯선 언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보이는 것은 푸른빛으로 가득 찬 낯선 풍경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나무들과, 거대한 나뭇가지 사이를 떠다니는 듯한 신비로운 빛무리였다. 그리고 내 몸은… 익숙하지 않았다. 가늘고 왜소한, 어린아이의 몸이었다.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어제까지 내 손은 성인 남자의 거칠고 굳은살 박힌 손이었는데, 지금은 작고 매끄러운 손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온몸에 힘이 없었고, 낯선 감각에 휘청였다.

“살아있는 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지만, 내 입에서 나온 것은 한국어가 아니었다. 혀끝에서 맴도는 발음은 낯설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알았던 언어처럼.

이곳은… 어디지? 나는 죽지 않았나? 아니,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왜 이곳에, 이 아이의 몸으로 깨어나 있는 거지?

머릿속에 혼란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한 가지 분명한 감정만은 살아남아 격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박서준. 그 이름.

복수. 그 집념.

이곳이 어디든, 내가 어떤 모습이 되었든 상관없다.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상, 나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그 빌어먹을 배신자에게 지옥을 선사하기 위해서.

어린아이의 몸으로, 나는 낯선 숲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심장이 증오로 뜨겁게 타올랐다. 새로운 삶이 시작된 곳은 분명히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복수는, 이제 막 진짜 시작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