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허의 맹수
증기심장 구역 깊숙한 곳, 으스스한 정적만이 감도는 거대한 폐공장 안이었다. 한때 수많은 톱니바퀴와 피스톤이 격렬하게 돌아가던 이곳은 이제 녹슨 철골과 부서진 기계 잔해들로 가득한 거대한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천장에서는 기름때 섞인 빗방울이 불규칙하게 떨어져 웅덩이를 만들었고, 그 주변으로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쇠 비린내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진은 낡은 증기 랜턴을 높이 들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랜턴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황갈색 불빛은 좁은 시야만을 허락했고, 그마저도 거대한 그림자들을 사방으로 춤추게 할 뿐이었다. 등 뒤에 멘 묵직한 배낭 안에는 며칠 전 겨우 구해낸 고철 덩어리들이 삐걱거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해, 그의 손은 늘 허리춤에 찬 증기식 권총의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형, 이쪽은 아무것도 없어.”
뒤따르던 아리의 목소리가 조용한 공기를 갈랐다. 열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리는 이 지독한 폐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모든 기술을 익힌 아이였다. 그녀의 작은 손에 들린 탐색 장치는 연신 미세한 진동만을 보낼 뿐이었다.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세 시간째 헤매고 있었지만, ‘정밀 압력 조절기’의 흔적은커녕 쓸만한 톱니바퀴 조각 하나 찾지 못했다. 보급창의 증기 엔진은 언제 멈춰 설지 모르는 상태였고, 이대로는 겨울을 넘기기 힘들 터였다.
“이 빌어먹을 구역은 점점 더 텅 비어가. 누군가 이미 다 털어갔거나, 아니면….” 진은 말을 흐렸다. 아니면, 존재 자체가 사라졌거나. 이 거대한 공장은 한때 도시 전체의 동력을 책임지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붕괴된 문명의 거대한 증거물일 뿐이었다.
둘은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사이를 지나 삐걱거리는 철제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끔찍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가 메아리쳐 돌아올 때마다 진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뭔가 잘못되었다. 이렇게 큰 소리를 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니. 너무 조용했다. 이 구역에 서식하는 기계 파편들이나 녹슨 자동인형들은 보통 이런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꼭대기 층에 다다르자, 폐쇄된 거대한 작업장이 나타났다. 바닥에는 녹슨 작업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공중에는 거미줄처럼 얽힌 증기 파이프들이 보였다. 그중 몇몇 파이프에서는 끊임없이 증기가 새어 나와 희뿌연 안개처럼 퍼지고 있었다. 이 안개는 시야를 더욱 방해했지만, 동시에 무언가로부터 자신들을 숨겨줄 수도 있었다.
“형, 저거 봐!” 아리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진이 랜턴 불빛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먼지 쌓인 작업대 뒤편, 부서진 자동 조립 로봇의 몸체 옆에 낯익은 실루엣이 보였다. 정밀 압력 조절기. 크고 묵직한 황동 몸체에 수많은 압력 게이지와 밸브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 장치는 완벽한 상태로 보였다. 폐허의 신이 베푼 기적과도 같았다.
“젠장, 진짜네.” 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며칠 밤낮을 헤맨 보람이 있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진은 권총을 집어넣고 배낭에서 공구 상자를 꺼냈다. 아리는 주변을 경계하며 망원경으로 멀리까지 살펴보았다. 조절기는 볼트 몇 개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진은 렌치를 꽉 쥐고 볼트 하나를 풀기 시작했다. ‘끼이익, 찌이익…’ 녹슨 볼트가 비명을 지르며 풀려나갔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그 순간, 아리의 탐색 장치가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멀지 않은 곳에서 둔탁한 쇳소리가 울렸다. ‘쿵… 쿵…’
진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뭐야?!”
“탐색기 수치 폭증! 기계… 거대 기계야! 아주 가까이!” 아리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그녀는 망원경을 얼굴에 바짝 붙이고 사방을 살폈다.
‘쿵… 쿵… 쿵…’ 진동이 더욱 거세졌다. 발소리는 증기 안개를 뚫고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단순한 자동인형이 아니었다. 이 정도로 큰 발소리를 내는 기계는… ‘감시자’였다. 이 구역에 봉인되어 있어야 할 가장 위험한 폐기물.
“빌어먹을! 하필 지금!” 진은 서둘러 마지막 볼트를 풀었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조절기가 자유롭게 떨어져 나왔다. 그는 급히 조절기를 배낭에 집어넣었다.
“형, 저기! 안개 속에서!” 아리의 경고와 동시에, 희뿌연 증기 안개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육중한 강철 다리가 바닥을 쿵, 하고 내리찍으며 발소리를 완성했다. 녹슨 강철 몸체, 부서진 관절, 한쪽 눈에서만 불길하게 빛나는 붉은 섬광. 전설로만 듣던, 망가진 감시자였다.
감시자는 고철과 콘크리트가 널브러진 바닥을 신경 쓰지 않고 전진했다. 그 거대한 몸체가 내는 진동이 작업장 전체를 흔들었다. 놈은 망가진 팔을 휘둘러 낡은 작업대를 박살 냈다. 금속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 모습은 마치 분노한 맹수와도 같았다.
“뛰어! 아리!” 진은 아리의 손목을 잡고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증기 파이프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출구로 향했다. 감시자는 그들의 등 뒤에서 끈질기게 추격했다. 낡은 작업장 전체가 놈의 무게와 충격으로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 ‘콰아앙!’ 감시자의 망가진 팔이 진이 방금 지나온 철제 기둥을 후려쳤다. 기둥은 엄청난 굉음과 함께 구부러졌고, 천장에서 콘크리트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젠장, 제정신이 아니잖아!” 진은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감시자는 보통 일정 구역을 순찰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이렇게 맹렬하게 추격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아마 이 구역에 너무 깊숙이 들어왔거나, 아니면 놈이 완전히 고장 나버렸거나 둘 중 하나일 터였다.
그들은 아슬아슬하게 출구로 이어지는 통로에 진입했다. 통로 끝에는 철제 비상계단이 있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이 구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빨리! 아리!” 진은 아리를 먼저 계단으로 밀어 넣었다. 아리가 계단을 두 칸씩 건너뛰며 내려갔다. 진은 등 뒤를 돌아보았다. 감시자가 통로 입구를 완전히 막아선 채, 붉은 눈에서 섬광을 뿜으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놈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망가진 어깨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충전하는 듯했다.
“형! 뭐 해! 빨리 와!” 아리가 아래층에서 애타게 소리쳤다.
진은 망설였다. 놈의 행동이 심상치 않았다. 저 망가진 감시자가 마지막으로 남은 기능을 사용하려 한다면… 아마 파괴적인 증기 충격파를 발사할 수도 있었다. 좁은 통로에서 그걸 맞는다면 둘 다 살아남을 수 없을 터였다.
그의 눈에 통로 옆, 녹슨 철근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지대가 들어왔다. 이곳은 원래 거대한 환풍구를 지탱하던 자리였다. 진은 즉각적인 계산을 마쳤다.
“아리! 먼저 뛰어가! 절대 돌아보지 마!” 진은 소리치며 허리춤의 증기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몸을 지지대로 던졌다. 녹슨 철근에 매달린 채, 권총을 감시자의 발밑, 통로의 가장 취약해 보이는 부분에 조준했다.
‘쉬이익… 팡!’ 증기 권총이 불을 뿜었다. 짧고 강력한 증기탄이 통로 바닥에 박혔다. ‘끼이이익…!’ 낡은 통로의 철골이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감시자의 붉은 눈에서 섬광이 극대화되었다. 놈의 거대한 몸체에서 억눌린 증기 압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젠장…!” 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도망칠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그가 쏜 증기탄이 박힌 통로 바닥이 ‘콰아앙!’ 하는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감시자의 육중한 몸체가 균형을 잃고 쏟아지는 돌무더기와 함께 아래층으로 추락했다. ‘크아아아앙!’ 거대한 기계의 분노에 찬 비명소리가 폐공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진은 철근에 매달린 채 숨을 헐떡였다. 그의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심장은 광란하듯 뛰어댔다. 감시자의 추락과 함께 거대한 먼지 구름이 솟아올랐고, 한동안 공장은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죽은 공간이 되었다.
“형!” 아리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려왔다. 그녀는 아래층 계단참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진은 힘겹게 몸을 지지대 위로 끌어올렸다.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괜찮아, 아리. 괜찮아.”
그는 조심스럽게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무너진 통로 아래에는 감시자의 잔해가 거대한 고철 더미로 변해 있었다. 놈의 붉은 눈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우리가 해냈어….” 아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진의 배낭을 보았다. “압력 조절기도 무사하고.”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안도감 대신 짙은 피로감이 서려 있었다.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그의 귀에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쉬이이익… 삐걱…’
그것은 감시자의 잔해 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마치 죽어가는 짐승의 마지막 숨소리처럼. 진은 아리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그리곤 권총을 다시 고쳐 쥐고 무너진 잔해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증기 랜턴의 불빛이 놈의 잔해를 비추었다. 감시자의 부서진 몸체 사이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동력원에서 증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새로, 섬뜩한 무언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푸른색의 광석이었다. 거대한 감시자의 핵이자 동력원이자, 동시에 폐허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곤 하는 아주 위험한 물질이었다. ‘불안정한 광물’.
진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그들이 얻은 것은 단순한 압력 조절기가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훨씬 더 위험한 것을 건드린 것 같았다. 불안정한 광물은 이대로 방치하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젠장….” 진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우리가 사냥당한 게 아니었어. 우리가… 놈을 깨운 거였어.”
그리고 그 순간, 불안정한 광물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빛이 더욱 강렬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이대로 도망친다고 해도, 놈의 마지막 발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좁은 폐공장 안에 갇힌 채, 진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