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양자 봉인의 침묵
네오 서울의 밤은 언제나 은하수를 닮았다. 빌딩 숲을 수놓은 홀로그램 간판들은 허공에서 다채로운 빛을 뿜어냈고, 고층 빌딩 사이를 유영하는 에어 택시들은 마치 별똥별 무리처럼 반짝였다. 그 화려함 속에서도, 도시의 심장부라 불리는 센트럴 타워 꼭대기에 위치한 펜트하우스는 정적에 잠겨 있었다.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것은, 건물 전체를 감싸는 듯한 비상등의 붉은 섬광뿐이었다.
오전 3시 17분. 센트럴 타워 120층.
‘넥서스 바이오텍’의 수석 연구원이자 생체 인공 장기 분야의 권위자, 박선우 박사가 자신의 서재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비상 호출을 받고 달려온 도시 보안국의 특수 수사팀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젠장, 어떻게 된 거야?”
수사팀장 최도윤 경감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현장 통제 요원에게 물었다. 그의 얼굴은 피로와 함께 짙은 당혹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서재 문은 ‘양자 봉인’ 시스템으로 완벽하게 잠겨 있었습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고요. 내부에서 강제로 열려고 시도한 흔적도 없습니다.”
현장 담당 요원이 홀로그램 패드를 들어 올리며 설명했다. 패드에는 서재의 내부 구조와 보안 시스템의 상세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양자 봉인. 그것은 네오 서울에서도 극히 일부의 초고급 주거 시설에만 적용되는 최첨단 보안 기술이었다. 특정 생체 정보 없이는 출입 자체가 불가능하며, 외부에서의 물리적 충격은 물론, 전자기적 해킹 시도조차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시스템. 심지어 내부에서 외부로의 탈출도 완벽하게 막아버리는 말 그대로 ‘밀폐된 감옥’이었다.
“피해자의 사망 시각은 시스템 기록상으로 대략 자정 즈음입니다. 목에 칼날 같은 예리한 도구로 인한 깊은 상처가 발견되었고, 출혈 과다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부검팀 요원이 조심스럽게 시신 스캔 결과를 보고했다. 스캔 이미지에는 박선우 박사의 경동맥이 끊어진 처참한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최도윤은 굳은 얼굴로 서재 내부를 훑어보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창문은 특수 강화 유리로 되어 있었고, 비상 탈출을 위한 환기구조차 양자 봉인 시스템과 연동되어 외부와 완벽히 단절된 상태였다. 유일한 출입문인 서재 문은 박선우 박사의 지문과 홍채 정보로만 열리는 생체 인식 잠금장치였다.
“그럼 범인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설마 유령이 죽이고 도망이라도 쳤단 말이야?”
곁에 서 있던 젊은 형사 이지훈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공포와 함께 해명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좌절감이 서려 있었다.
“지훈아, 농담할 상황 아니야.”
최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시선은 서재의 한쪽 벽에 걸린 대형 홀로그램 시계에 고정되어 있었다. 시간은 3시 25분. 강태한이 올 시간이었다.
***
강태한은 소리 없이 나타났다.
검은색 오버코트 차림에, 한 손에는 낡은 인조 가죽 수첩을 들고 있었다. 그의 서른 후반 나이를 짐작케 하는 얼굴에는 피로감보다는 지적인 날카로움이 깃들어 있었고, 무심한 듯 보이는 그의 시선은 그러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 예리했다. 그는 수사팀 요원들의 보고서 브리핑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최도윤에게 짧게 고갯짓 인사를 건넸다.
“강탐정님, 오셨군요.”
최도윤은 피식 웃었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강태한은 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타나, 누구의 설명도 듣지 않고 오직 자신의 눈으로만 진실을 좇았다.
강태한은 아무 말 없이 서재 문 앞에 섰다. 보안 요원이 그를 위해 양자 봉인 시스템의 기록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이 문은 어제 오후 10시 32분, 박선우 박사의 지문과 홍채 정보로 잠겼습니다. 이후 외부에서의 어떤 접근 시도도, 내부에서의 강제 개방 시도도 없었습니다.”
보안 요원이 로봇처럼 정확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강태한은 홀로그램 데이터를 잠시 응시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뻗어 홀로그램 벽을 가로지르듯 움직였다. 그의 손끝이 닿는 곳마다 데이터 조각들이 일렁였다.
“외부 온도 변화 기록은?”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보안 요원이 재빨리 데이터를 불러왔다.
“오후 10시 32분부터 현재까지 서재 내부 온도는 21.5도에서 22.1도 사이를 유지했습니다. 외부 온도의 영향을 받은 기록은 없습니다.”
“습도는?”
“55%에서 56% 사이입니다.”
“산소 농도는?”
“정상 범위인 20.9%에서 변동 없습니다.”
수사팀원들은 강태한의 기이한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신과 범인, 그리고 밀실 트릭에 대한 질문이 나와야 할 때였다. 하지만 강태한은 마치 현장과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환경 데이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최도윤은 그런 강태한의 행동에 익숙한 듯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과거에도 그랬다. 강태한은 항상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았고, 다른 사람들이 묻지 않는 것들을 물었다.
강태한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서재 내부를 향했다.
“피해자의 시신은 어디에 있죠?”
그의 물음에 보안 요원이 서재 내부의 시신 위치를 홀로그램으로 표시했다. 박선우 박사는 앤티크한 서재 책상에 엎어져 있었다.
“문이 잠긴 채로, 외부 침입은 물론 내부에서의 탈출도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CCTV도 없습니다. 이 펜트하우스는 외부에서 조종되는 스마트 홈 시스템이라,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서재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최도윤이 상황을 요약해서 설명했다.
강태한은 서재 문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눈은 양자 봉인 시스템의 미세한 틈새라도 찾는 듯, 표면을 훑었다.
“양자 봉인 시스템은 100% 완벽한가요?”
“네, 강탐정님. 이론상 완벽합니다. 물리적으로든, 에너지적으로든, 정보적으로든.”
보안 요원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강태한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시선은 확신에 찬 보안 요원과 최도윤을 지나쳐, 서재 내부의 특정 지점을 응시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박선우 박사의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유리컵이었다.
“컵은 비어 있습니까?” 강태한이 물었다.
보안 요원이 빠르게 스캔 결과를 띄웠다.
“네, 완전히 비어 있습니다. 안에 어떤 액체 흔적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강태한은 작게 코웃음을 쳤다. 그것은 비웃음이라기보다는, 복잡한 퍼즐의 실마리를 찾았을 때의 만족감에 가까운 소리였다.
“최경감님, 이 ‘완벽한 밀실’은 사실,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 수사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향했다.
“밀실 살인? 아니, 밀실 *살인*은 맞겠지만, 그 살인을 가능하게 한 ‘트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강태한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박선우 박사를 죽인 범인은, 저 서재 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살인을 저질렀으니까요.”
수사팀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혼란과 함께, 천재 탐정 강태한이 과연 어떤 기상천외한 진실을 밝혀낼지에 대한 기대감이 뒤섞여 있었다. 강태한의 시선은 다시 한번 박선우 박사의 책상 위, 비어 있는 유리컵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의 입술은 다음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챕터에서 이 ‘양자 봉인의 침묵’을 깨부술 첫 번째 단서가 드러날 것이라는 예고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