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먼지 속에서 깨어난 시간

내 이름은 김민준, 스물셋. 보통의 대학생이라면 시험 기간마다 커피를 달고 살며 밤샘 과제에 허덕이고 있을 나이건만, 나는 그런 ‘보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방학 내내 내가 하는 일이라곤 고물상이나 다름없는 할아버지의 낡은 골동품 가게를 지키는 것뿐이었으니까.

“하아… 또 먼지야.”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훅 끼쳐오는 퀴퀴하고 곰팡이 냄새는 이제 익숙하다 못해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햇빛 한 줌 제대로 들지 않는 창문은 항상 뿌옇게 흐려져 있었고, 선반마다 빼곡히 쌓인 온갖 잡동사니 위로는 세월의 더께가 두껍게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걸레를 집어 들었다. 오늘도 청소 전쟁의 서막이다.

골동품 가게 ‘황혼의 유산’은 할아버지가 30년 넘게 운영해 오신 곳이었다. 하지만 2년 전 할아버지가 갑작스럽게 편찮으시면서 모든 관리는 내게로 넘어왔다. 매일 ‘황혼의 유산’에 해가 지는 것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가게는 대체 언제쯤 밝게 빛날 수 있을까.’

선반 위, 빛바랜 도자기와 녹슨 철제 조각상들을 닦아내던 중이었다. 손때 묻은 나무 상자들을 치우다 보니 구석 깊숙한 곳에 쌓인 낡은 보자기가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절대 함부로 손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호기심은 언제나 이성을 앞서는 법. 나는 슬그머니 보자기의 매듭을 풀었다.

보자기 속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희한한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모양을 알 수 없는 청동 파편들, 색이 바랜 양피지 조각, 그리고… 내 손바닥만 한 낡은 나무 상자 하나. 상자는 옻칠이 되어 있었지만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났다. 특별할 것 없는 겉모습과 달리, 상자 위에는 정교하고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나뭇가지 같기도, 알 수 없는 글자 같기도 한 무늬들이 빼곡하게 얽혀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나는 상자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잠금장치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열려고 해도 틈새조차 벌어지지 않았다. 꽤나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고목처럼 단단했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상자 틈새를 찾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그때였다. 날카로운 나뭇결에 손가락 끝이 스쳤고, 따끔한 통증과 함께 손끝에서 붉은 피 한 방울이 맺혔다.

“아야!”

무심코 뱉은 신음과 함께 맺힌 피가 그만 상자 위, 기이한 문양 중 한 점에 톡 하고 떨어졌다. 붉은 점이 나무에 스며드는 순간,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 문양이 꿈틀거렸다. 마치 실핏줄처럼 얇은 선들이 피를 흡수하며 섬뜩한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나는 놀라 손을 떼려 했지만, 상자는 이미 내 손에 착 달라붙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붉은빛은 상자 전체를 뒤덮더니 이내 섬광처럼 터져 나왔다.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고, 귀청을 때리는 굉음이 온몸을 휘감았다. 마치 거대한 폭풍의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내 몸이 허공으로 붕 뜨는 것 같았다. 시야는 잔뜩 일그러졌고, 어지럼증과 동시에 구토감이 치밀어 올랐다. 간신히 눈을 뜨자, 익숙한 골동품 가게는 온데간데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기이하고 낯선 풍경이었다. 울창한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저 멀리 거대한 돌기둥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돌기둥들 위로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반짝이는 푸른색 이끼들이 뒤덮여 있었고, 숲 속에서는 처음 듣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기는 신선하다 못해 쌉쌀했고, 풀 내음과 흙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이게… 대체…?”

나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 먼지 쌓인 가게 안에 있었는데, 어떻게 순식간에 이런 곳으로 오게 된 것일까? 꿈인가? 너무나도 생생한 꿈.

그때, 숲 속 깊은 곳에서 섬뜩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동물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낮고 굵으며, 동시에 어딘가 비장하고 슬픔이 깃든 소리.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는 듯했고, 나도 모르게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나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발이 미끄러지면서 넘어지려는 찰나, 손에 들고 있던 나무 상자에서 다시 한번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콰아앙!

모든 것이 다시 한번 새하얀 빛 속으로 사라졌다.

“흐읍!”

눈을 뜨자, 천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익숙한 가게의 천장이었다. 퀴퀴한 먼지 냄새, 빛바랜 골동품들, 그리고 손에 들린 낡은 나무 상자.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꿈… 꿈이었나?”

땀으로 축축한 손바닥을 펼쳐 보았다. 손가락 끝에 난 상처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모든 것이 환상이었던 걸까. 하지만 손에 들린 나무 상자는 여전히 따뜻했다. 그리고 상자 위에 새겨진 문양들은 아까 내가 피를 떨어뜨린 부분만 섬세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처럼 은은하게, 미세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환상이 아니었다. 나는 방금… 다른 곳에 다녀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분명히.

심장이 다시 한번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두려움보다는, 알 수 없는 전율이 온몸을 감쌌다. 이 낡은 나무 상자가 나를 다른 시간, 다른 공간으로 데려다준 걸까?

나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붉게 물든 문양이 내 심장 박동과 함께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했던 물건. 이 낡은 골동품 가게, 이 먼지 쌓인 공간 속에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걸까.

내 손안의 나무 상자가, 마치 잠자는 사자가 깨어나듯 나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직감했다. 내 평범했던 삶이, 이 순간부터 완전히 뒤바뀌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