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했다. 언제나처럼, 그리고 불변처럼 고요했다. 아틀라스 호의 조타석에 앉아 있던 강윤성 함장은 우주선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칠흑 같은 심연을 응시했다. 무수한 별들이 점점이 박힌 캔버스. 그것은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한없이 거대하고 냉혹했으며, 이 작은 금속 덩어리 안에서 살아가는 자신들의 존재를 한없이 왜소하게 만들었다. 지구에서 출발한 지 어언 5년, 오르트 구름 너머, 인류의 탐사 역사상 가장 멀리 도달한 이 지점에서 그의 임무는 단 하나였다. 미지의 것을 찾아 기록하고, 가능하면 샘플을 채취하는 것. 하지만 그 미지의 것이 이런 식으로 나타날 줄은 몰랐다.
“함장님, 미확인 에너지원 재감지! 이번엔 너무 강합니다!”
날카로운 서지현 부함장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강윤성은 거의 반사적으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상 상황에만 울리는 경고음이 낮게 깔렸고, 메인 콘솔 중앙에 위치한 홀로그램 스크린 위에는 붉은색 점 하나가 빠르게 깜빡였다. 처음엔 작은 점이었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파장으로 변하며 아틀라스 호의 센서 전체를 마비시킬 듯한 기세로 퍼져나갔다.
“젠장, 무슨 일이야? 고장인가?” 박준혁 항해사가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당혹감이 역력했다.
“아닙니다, 항해사님. 센서는 정상 작동 중입니다. 이 에너지원은… 기존 데이터와 일치하는 패턴이 없습니다. 마치… 갑자기 무(無)에서 유(有)로 솟아난 것 같습니다.” 서지현 부함장의 음성에는 학자 특유의 냉철함과 함께 미세한 전율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빠르게 놀려 각종 데이터를 분석했다. “중력 렌즈 효과도, 고속 이동체의 흔적도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이 순간, 갑자기 나타난 겁니다.”
강윤성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갑자기 나타난 미지의 존재. 우주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현상들이 종종 발생하지만, 이런 식으로 시스템 전체를 교란시킬 정도의 압도적인 에너지는 처음이었다. 그는 빠르게 판단했다. “접근한다. 가장 안전한 거리에서 육안으로 확인한다. 서 부함장, 센서 최대 출력으로 주변 스캔. 박 항해사, 엔진 출력 최소한으로 유지하면서 천천히.”
아틀라스 호는 거대한 몸체를 천천히 움직였다. 칠흑 같은 우주를 가르며 붉은 경고등이 깜빡이는 미지의 존재에게 다가갔다. 강윤성은 초조하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지난 5년간 수많은 소행성과 혜성을 지나쳤고, 예측 불가능한 우주 폭풍도 견뎌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심장이 차갑게 조여드는 듯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수십만 킬로미터, 수만 킬로미터, 수천 킬로미터… 거리가 좁혀질수록 홀로그램 스크린 속 붉은 점은 선명한 형태로 변해갔다. 그리고 마침내,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거리에 도달했을 때, 세 명의 승무원은 동시에 숨을 삼켰다.
“맙소사….” 박준혁 항해사가 경외와 두려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우주선 전면 유리창 너머로,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듯한 칠흑의 육면체가 떠 있었다. 완벽한 정육면체. 그 크기는 아틀라스 호보다 훨씬 거대했으며, 표면은 완벽하게 매끄러웠고, 그 어떤 흔적도, 이음새도 없었다. 마치 장인의 손길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깎아낸 검은 수정 같았다. 하지만 그 어떤 수정도 이렇게 깊고 어두운 검은색을 띨 수는 없었다. 그 존재 자체로 주변의 별빛마저 흡수하는 듯, 육면체 주위의 공간은 더욱 깊은 어둠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스캔 결과는 어떻지, 서 부함장?” 강윤성이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물었다.
서지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측정 불가입니다, 함장님. 모든 주파수의 레이저, 전자기파, 중력파… 그 어떤 것도 육면체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에너지원 감지는 여전히 폭주 중이지만, 이 물체의 구성 성분이나 내부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습니다. 마치… 물리적인 존재가 아닌 것처럼.”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니? 저게 지금 우리 눈앞에 떠 있는데?” 박준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물리적인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지만, 동시에 모든 물리적 상호작용을 거부합니다. 말도 안 되는… 역설적인 존재입니다.” 서지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물체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이 정도의 완벽한 대칭과 구조는 오직… 지성체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지의 지성체.
그 단어가 강윤성의 뇌리를 스쳤을 때, 그의 심장은 더욱 강하게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인류는 우주에서 생명체를 찾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번번이 좌절해왔다. 이 광대한 우주에서 인류는 외로운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눈앞에 인류의 과학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완벽한 형태로 존재하는 무언가가 나타난 것이다.
“접근합니다. 견인 빔을 준비해.” 강윤성이 결단을 내렸다.
“함장님! 너무 위험합니다! 저것이 우리에게 적대적일 수도 있습니다!” 박준혁이 거의 소리치듯 말했다.
“박 항해사 말대로 위험합니다, 함장님. 이 미지의 물질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직접 접촉하는 건 무모합니다.” 서지현도 동조했다.
강윤성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이 임무를 위해 지구에서 5년 동안 항해해 왔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짊어지고.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 만약 저것이 지성체의 산물이라면, 우리의 존재를 알릴 첫 접촉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우리가 마주할 최후의 미스터리일 수도 있고.”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견인 빔. 화물칸으로 이동시킨다.”
아틀라스 호의 로봇 팔이 칠흑의 육면체를 향해 조심스럽게 뻗어 나갔다. 강력한 견인 빔이 육면체에 닿자, 그 주변의 암흑이 일렁이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우주선 내부에서는 모든 전자기기가 미세하게 떨리고, 조명이 깜빡였다. 경고음이 더욱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육면체는 엄청난 질량을 가지고 있는 듯, 아틀라스 호의 추진 시스템에 상당한 부담을 주었다. 엔진이 비명을 질렀고, 선체 전체가 진동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육면체는 천천히 끌려와 아틀라스 호의 거대한 화물칸 에어록 안으로 안착했다.
콰앙!
에어록이 닫히는 육중한 소리가 선내를 울렸다. 이제 칠흑의 육면체는 아틀라스 호의 심장부, 화물칸에 놓여 있었다.
강윤성, 서지현, 박준혁 세 사람은 방호복을 착용하고 화물칸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거대한 공간 한가운데에 오롯이 서 있는 육면체를 마주했을 때, 그들은 다시 한번 할 말을 잃었다. 우주선 내부의 조명조차 육면체 근처에서는 힘을 잃는 듯 희미해져 있었다. 육면체 주변만 유독 어둡고 차가운 공간으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표면 온도는 외부와 동일합니다. 대기 변화도 없습니다.” 서지현이 스캐너를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갔지만, 그녀의 스캐너는 여전히 ‘정보 없음’을 표시했다.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아. 대체 이 물체의 정체가 뭐지?” 박준혁이 육면체를 향해 손을 뻗으려다 멈칫했다.
그 순간, 강윤성의 심장이 쿵, 하고 크게 울렸다. 환청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칠흑의 육면체에서 아주 미세한, 그러나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낮은 진동이 느껴졌다. 그 진동은 공기를 타고 흐르는 소리가 아니라,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전율이었다.
육면체 표면, 아무것도 없던 그 완벽하게 매끄러운 검은 면 한가운데에, 아주 희미하게, 마치 물속에서 피어나는 연기처럼 불길한 붉은빛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식간에 육면체 전체를 감쌌고, 화물칸의 어두움을 한층 더 깊은 심연으로 만들었다. 붉은 빛은 마치 살아있는 피처럼 꿈틀거렸다.
“함장님!” 서지현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강윤성은 육면체에 박힌 듯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 섬뜩하고도 매혹적인 붉은빛 속에서, 그는 잊고 있던 불길한 예감을 다시금 느꼈다. 아틀라스 호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탐사선이 아니었다. 거대한 미지의 힘을 품은 관이 될 수도, 혹은… 무덤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육면체에서 무언가가 뻗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아니, 뻗어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육면체의 표면이 물결치듯 일렁이며, 검은 액체가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액체는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바닥으로, 그리고 아틀라스 호의 선체 내부를 향해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지의 유물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미지의 존재에게 발견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