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백송헌. 그 이름처럼 고고하게 서 있는 저택은 한밤중의 섬뜩한 정적 속에서 거대한 관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대문 앞을 에워싼 경찰차의 붉고 푸른 조명만이 차가운 비를 맞아 미끄러운 아스팔트 위에서 불길하게 반짝였다. 빗방울은 밤의 어둠을 찢는 사이렌 소리처럼 저택의 육중한 벽을 두드렸고, 그 소리는 마치 죽은 자의 흐느낌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강 형사님, 정말 큰일입니다.”

형사반장 김철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의 낡은 코트에서는 빗물이 뚝뚝 떨어져 복도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던 강세준은 무심한 시선으로 복도 끝에 서 있는 경관들을 훑었다. 그의 표정은 늘 그렇듯 무덤덤했지만, 그의 눈빛은 고요한 호수 아래 감춰진 심연처럼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밀실 살인이라니, 이런 고전적인 수법이 대체… 현장으로 안내해주시죠.”

세준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마치 그곳이 살인 현장이 아니라 한가로운 갤러리라도 되는 양 여유로웠다. 김철수는 투덜거리며 앞장섰다. 살인 현장은 2층 가장 안쪽에 위치한 서재였다. 두꺼운 마호가니 문 앞에는 이미 수사팀이 진을 치고 있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이 복도의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피해자는 한성민 회장입니다. 고령이시긴 했지만 지병은 없었고, 건강하셨다고 합니다. 사인은 목에 깊은 자상. 흉기는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김철수의 설명을 들으며 세준은 서재 문을 응시했다. 문의 잠금장치는 낡고 견고한 철제 걸쇠였다. 안쪽에서 단단히 걸어 잠근 형태였다. 문을 열기 위해 소방대원들이 애를 먹었다는 김철수의 말이 떠올랐다.

“창문은요?” 세준이 물었다.

“모두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방충망도 뜯긴 흔적 없고요. 특이사항이라면… 창문 바깥쪽에는 덩굴나무가 빽빽하게 자라서 사람 한 명 지나다니기 어려울 겁니다. 설령 지나간다 해도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을 수는 없죠. 그런데 흙바닥엔 아무 흔적도 없었습니다. 비까지 오는데도 말입니다.”

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형적인 밀실이었다. 이런 사건일수록 트릭은 의외로 단순한 곳에 숨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서재 안으로 들어서자, 묵직한 고서적 냄새와 함께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짙은 갈색 카펫 위에는 한 회장이 쓰러져 있었다. 굳어진 눈은 천장을 향해 끔찍한 진실을 외치고 있었다. 그는 앤티크 책상에 비스듬히 기댄 채, 왼손에는 아직 펼쳐진 고서를 쥐고 있었다. 책상의 램프는 꺼져 있었고, 작은 스탠드만이 희미한 불빛을 내고 있었다.

세준은 주변의 통제선을 넘어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굳이 장갑을 끼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에서 작은 은색 펜라이트를 꺼내 들었다. 빛은 그의 손끝에 붙들린 채 살아있는 생물처럼 방 안의 구석구석을 훑었다.

“CCTV는요?” 세준이 나직하게 물었다.

“집 안팎으로 다 확인했는데, 이 방 앞 복도에는 없었습니다. 이 저택 자체가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최근에 새로 설치하려다가 회장님이 반대하셨다고 합니다.”

세준은 대답 대신 바닥을 살폈다. 빗물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카펫. 하지만 발자국 하나는 발견되었다. 범인의 것이 아닌, 피해자 한 회장의 것으로 보이는, 약간 닳은 구두 자국. 그 자국은 책상에서부터 문 쪽으로, 다시 문에서 책상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방 안에서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한 것처럼.

“피해자가 사망하기 전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흔적은 있습니까?”

“아뇨. 발견된 건 한 회장 한 명뿐입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도 마찬가지였으니… 범인은 말 그대로 유령처럼 사라졌습니다.” 김철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세준은 펜라이트를 한 회장이 쥐고 있던 고서로 옮겼다. 낡은 종이에는 희미한 얼룩이 묻어 있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을 때, 세준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곳에는 누군가가 연필로 휘갈겨 쓴 메모가 있었다.

‘마지막… 숨겨진….’

글씨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흐릿했지만, 세준은 그 단어들이 품고 있는 의미를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서재의 벽면을 찬찬히 훑었다. 책장은 벽에 빈틈없이 붙어 있었고, 그 위에 놓인 책들은 수십 년간 제자리를 지킨 듯 견고했다.

그의 시선이 책장 아래, 낡은 마룻바닥에 닿았다. 먼지가 조금 더 쌓여 있는 듯한 구역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무릎을 굽혀 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휘익—*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함께 세상이 일그러졌다. 시야가 흐려지고, 모든 색채가 사라진 흑백의 잔상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묵직한 공기가 폐부를 짓눌렀고,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환상 속에서, 세준은 다시 같은 서재에 서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랐다. 램프는 환하게 켜져 있었고, 창밖으로는 비가 아닌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 회장이 살아 있었다. 그는 책상에 앉아 뭔가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다.

세준의 시선은 한 회장의 손에 들린 물건으로 향했다. 그것은 낡은 나무 상자였다. 한 회장은 그 상자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준이 지금 살펴보던 마룻바닥의 먼지 쌓인 구역으로 향했다. 그는 바닥의 일부를 들어 올리고, 그 안에 나무 상자를 조심스럽게 넣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때, 낯선 여인의 목소리가 환상 속에서 울려 퍼졌다.

“회장님, 그건 아무도 모르게요, 꼭 숨겨두세요.”

한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을 다시 덮었다. 감쪽같았다. 바닥은 원래 그랬던 것처럼 완벽하게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한 회장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책상으로 돌아갔다.

*쿵!*

환상이 깨졌다. 세준의 의식은 다시 피 냄새 가득한 서재로 돌아왔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방금 그 짧은 순간의 비전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 김철수는 알 수 없었다.

“강 형사님,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김철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지만, 세준은 듣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아까 그가 살펴본 마룻바닥의 특정 구역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는 듯했다.

“김 반장님. 이 마룻바닥, 좀 더 자세히 조사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세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김철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세준의 진지함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세준은 다시 그 구역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낡은 나무의 질감을 더듬었다.

범인은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밀실의 트릭을 완전히 새롭게 조작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이 방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 회장이 숨겨둔 ‘무언가’를 통해, 감쪽같이 사라졌다.

세준의 뇌리에는 번개처럼 하나의 가설이 스쳐 지나갔다.
밀실 살인. 하지만 이 밀실은, 살인자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에 의해, 사건 후에 완벽하게 ‘재현’된 밀실이었다.

과거의 잔상이 현재의 진실을 뒤흔들고 있었다.
세준은 확신했다. 이 서재의 모든 것이, 거대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거짓말의 심장을 꿰뚫어 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시간 여행 능력이, 이번에는 어떤 진실을 밝혀낼 것인가.
아직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