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지훈은 길게 한숨을 쉬며 노트북 화면에서 시선을 떼었다. 시계는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좁은 원룸 오피스텔에서 낮밤의 경계가 무의미해진 지는 오래다. 며칠째 이어지는 마감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피로 때문인지, 머리 한편이 지끈거렸다.

창밖은 여전히 불을 밝힌 도시의 심장이었다. 수백 개의 창문들이 저마다의 빛을 뿜어내고, 저 멀리 강변북로 위로는 붉은 미등과 흰 전조등이 끊임없이 흘러갔다. 이 거대한 메트로폴리스 한복판, 스물아홉 평짜리 자신의 보금자리는 마치 유리 상자 속 작은 우주 같았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예측 가능하며, 안전하다고 믿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젠장, 피곤하네.”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굳어진 어깨를 풀기 위해 기지개를 켜자 뚝, 뚝, 뼈 마디가 경쾌하게 울렸다. 물 한 잔 마시고 잠시 쉬어야겠다 싶어 주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간결하게 정돈된 싱크대 위에는 어제 마시고 남은 머그컵 하나가 놓여 있었다. 물을 따르려 컵에 손을 뻗는 순간, 거실에서 ‘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뭐지? 설마, 벌써 고장이 났나?
그가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거실 한복판에 놓인 스탠드 조명이었다. 평소에는 따뜻한 주백색 빛을 뿜어내던 조명이 지금은 깜빡거리고 있었다. 마치 수명이 다한 형광등처럼, 빛을 뿜었다가 꺼지기를 반복했다.

“하필 지금?”

짜증이 치밀었다. 입주한 지 이제 겨우 1년이 지난 신축 아파트였다. 이런 자잘한 고장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애써 신경 끄고 물을 마셨다. 물잔을 내려놓고 다시 노트북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조명은 완전히 꺼져버렸다.

방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노트북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만이 유일한 광원이 되었다.
지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서비스 센터에 전화해야겠네.”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냥 자버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마감은 내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책상 스탠드를 켰다.

그의 시선이 문득 책상 한쪽에 놓인 펜꽂이에 머물렀다. 방금 전에는 분명 똑바로 서 있던 펜들이 왠지 모르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했다. 지훈은 고개를 갸웃하며 펜꽂이를 들어 살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꽂혀 있던 펜 한 자루가 아예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검은색 볼펜이었다.

“내가 떨어뜨렸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보통 물건을 떨어뜨리면 그 소리를 인지하기 마련인데, 전혀 듣지 못했다. 그냥 피곤해서 정신이 없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볼펜을 주워 다시 펜꽂이에 꽂았다.

그때였다.
쿵!

이번엔 확실히 다른 소리였다. 마치 발코니 쪽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듯한 둔탁한 진동. 창문 밖으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일 리 없었다. 지훈은 순간 얼어붙었다. 등골을 타고 싸늘한 기운이 올라왔다.

“누구세요?”

무의식적으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텅 빈 공간에 자신의 목소리가 울리고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천천히 발코니 쪽으로 향했다. 유리문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공간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했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나란히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작은 수납장이 보였다.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내가 너무 피곤한가… 환청이라도 들리는 건가?”

현실 부정에 가까운 합리화를 중얼거렸다. 다시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몸을 던졌다. 심장이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 기분이었다.
시선을 돌리자, 거실 벽에 걸린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은은한 간접 조명 아래, 시침과 분침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계 바로 아래, 벽에 걸려 있던 액자가 미묘하게 비뚤어져 있었다.

지훈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완벽주의자에 가까울 정도로 사물을 제자리에 두는 습관이 있었다. 특히 벽에 걸린 액자는 수시로 수평을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바로잡곤 했다. 그런데 지금, 액자는 마치 누군가 한쪽을 건드린 것처럼 확연히 기울어져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액자 앞으로 다가갔다. 손을 뻗어 액자를 바로잡으려는 순간,

끼이이익!

거실 한쪽에 세워둔 장식장 유리문이 마치 비명이라도 지르듯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너무나도 서서히.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손잡이를 잡고 잡아당기는 것처럼.

지훈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굳어버렸다. 입이 딱 벌어지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눈앞의 광경은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아무도 그 문을 만지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온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유리문은 분명히, 그의 눈앞에서 스스로 열리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서, 방금 전 바로잡으려 했던 액자가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가 적막한 아파트 전체를 울렸다.
지훈의 심장이 발작하듯 미친 듯이 뛰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듯한 소름이 돋았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눈앞의 열린 장식장 문, 바닥에 산산조각 난 액자 파편.
이것은 환청도, 착각도, 피로로 인한 착시도 아니었다.
누군가 이 공간에, 그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지금 그를 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차갑고 끈적한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때, 산산조각 난 액자 파편 위로, 그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 그림자 너머, 바닥에 비친 또 다른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마치 그를 지켜보는 듯, 그의 등 뒤에서, 아주 가깝게.
지훈은 온몸의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온 감각이 공포에 마비되는 순간, 그의 귓가에 차가운 속삭임이 들렸다.

[…안녕.]

그것은 분명히, 인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사람은 없었다.
지훈은 그대로, 눈앞이 새하얘지는 것을 느끼며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