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뒤틀린 일상

지훈은 눈을 떴다. 뻐근한 목을 쓸어 올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지만, 묘하게 개운치 않은 아침이었다. 지난밤,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희미한 기억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뭔가 불편하고, 무거운 것. 이 아파트에 이사 온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늘 그랬듯, 습관처럼 침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섰다. 탁 트인 창밖으로는 회색빛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져 있었고, 이른 시간부터 움직이는 차량들의 행렬이 점처럼 이어졌다. 잠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지훈의 시선이 거실 한복판에 멈췄다.

테이블 위. 어젯밤 분명 침대 옆 협탁에 두었던 스마트폰이 엉뚱하게도 커피 테이블 정중앙에 놓여 있었다. 그것도 충전기에서 뽑힌 채로.

“내가… 어젯밤에 술을 마셨나?”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어제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찍 잠자리에 든 평범한 밤이었다. 며칠 전부터 조금씩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긴 했다. 분명 잠그고 나왔던 현관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든가, 서재 책상 위에 올려둔 펜꽂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든가. 그때마다 지훈은 제 건망증이나 물건의 노후화를 탓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피곤해서 그렇겠지, 건물이 낡아서 흔들렸겠지, 하고.

그러나 스마트폰은 달랐다. 침대 협탁과 커피 테이블은 족히 세 걸음은 되는 거리였다. 잠결에 내가 들고 나와서 저기에 던져놨을 리가 없잖아. 지훈은 고개를 갸웃하며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액정은 꺼져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배터리 잔량은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누군가 완벽하게 충전시킨 후에 제자리에 갖다 둔 것처럼.

기분 탓이겠지. 지훈은 애써 생각을 지우고 샤워를 위해 욕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줄기가 어깨를 적시는 동안, 좁은 욕실 안은 습기와 물소리로 가득 찼다. 문득, 거울 속 자신의 뒤편으로 보이는 희미한 그림자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간 듯했다. 지훈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지만, 거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김이 서려 뿌연 거울과 그 안의 자신만이 존재할 뿐.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나.”

식은땀이 등에 맺혔다. 착각이라고 되뇌면서도, 왠지 모를 한기가 온몸을 감쌌다.

점심시간, 지훈은 재택근무 중이었다. 노트북 화면 속 스프레드시트를 노려보며 계산에 몰두하던 그의 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시계 초침 소리인가 싶었지만, 그의 서재에는 시계가 없었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려 애쓰자, 소리는 어느새 거실 쪽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지훈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발걸음이 거실로 향하는 동안, ‘똑… 똑…’ 하는 소리는 점차 커지고 빨라졌다. 마치 누군가 손톱으로 유리창을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그러나 거실 유리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창밖의 세상은 고요했다.

그리고 소리는, 소리는 테이블 위에서 나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테이블 위에 놓인 화병 속 유리구슬들이 흔들리는 소리.

화병 속 유리구슬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흔들리는 것처럼, 서로 부딪치며 ‘똑똑’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훈의 눈앞에서, 명백히, 아무런 외력도 없이.

지훈은 얼어붙었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섬뜩한 감각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손을 뻗어 화병을 잡으려 했다. 그 순간, 화병은 마치 그의 손길을 피하는 것처럼 탁자 위에서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투명한 유리구슬들이 화병 안에서 요란하게 부딪치며 더 큰 소리를 냈다.

“뭐, 뭐야…?”

지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건 명백히 물리적인 현상이었다. 착각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그는 뒷걸음질 쳤다. 화병은 그가 물러나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다시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유리구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멈춰 섰다.

지훈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현상을 어떻게든 합리화하려 애썼다. 지진인가? 하지만 진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지진이 나면 화병이 저렇게 ‘피하듯이’ 움직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날 저녁, 지훈은 한동안 회사 동료에게 전화하여 재택근무 중 겪은 일들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동료는 “지훈 씨, 혹시 집에서 혼자 일하다가 외로움 타서 헛것 보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스트레스성 환각?” 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하지만 지훈은 알았다. 이건 헛것이 아니었다.

밤이 깊어지고, 지훈은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 작은 소리에도 반응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딸깍’ 소리에 그는 번쩍 눈을 떴다. 부엌에서 나는 소리였다. 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어둠이 짙게 깔린 복도를 지나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지훈은 안도하며 다시 침실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였다.

‘스르륵.’

냉장고 문이 천천히 열리는 소리. 지훈은 심장이 발끝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느꼈다. 냉장고 문은 지훈의 눈앞에서, 정말로, 아무도 만지지 않았는데, 아주 조금씩, 소름 끼치도록 느린 속도로 열리고 있었다.

그 안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냉장고 내부 조명은 들어오지 않았다. 지훈은 공포에 질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냉장고 문은 멈추지 않고, 완전히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차가운 공기와 함께 희미한 속삭임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거기… 누구세요…?”

지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냉장고 속 어둠이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순간, 그의 눈에 냉장고 선반 위에 놓인 사과 하나가 들어왔다. 선홍빛 사과.

그 사과가, 그의 눈앞에서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사과를 붙든 것처럼, 사과는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사과 표면의 윤기가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반짝였다. 지훈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막힌 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어 굳어버렸다.

사과가,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지훈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아앙!

사과는 지훈의 머리 옆, 벽에 맹렬하게 부딪혔다.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사과즙이 벽에 흥건하게 튀었다. 지훈은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쓰러졌다. 그의 귓가에는 여전히 냉장고 문이 완전히 열린 채로 내뿜는 차가운 공기와 함께, 듣기 싫은 속삭임이 아른거리는 듯했다.

더 이상 이 아파트는, 그의 집이 아니었다. 분명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그의 집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이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벽에 묻은 사과즙을 본 지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안에서, 섬뜩한 어둠의 실루엣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