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심연의 그림자: 첫 번째 기록

“또 꿈인가.”

이서하는 옅은 한숨과 함께 창백한 빛을 내는 데이터 슬레이트를 밀어냈다. 눈꺼풀 안쪽으로 자꾸만 기묘한 문양들이 아른거렸다. 거미줄처럼 얽힌 고대 언어의 조각들, 흙먼지에 뒤덮인 거대한 석조 기둥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심연의 정적. 지난 몇 년간 그녀를 괴롭혀 온 끈질긴 악몽이었다.

연방력 327년. 대륙연방의 수도 ‘아이온’은 눈부신 과학 기술의 총아였지만, 이서하의 연구실은 시간의 흐름을 비껴간 듯 고립되어 있었다. 먼지 앉은 서책들, 해석을 기다리는 석판 파편들, 그리고 이름 모를 고대 문명의 유물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서하는 이 모든 것을 사랑했다. 살아있는 역사보다 더 생생하게 숨 쉬는 과거의 흔적들을 파고드는 것이 그녀의 삶이었다.

그녀의 전공은 ‘잊힌 문명학’이었다. 주류 학계에서는 언제나 비주류 취급을 받는 분야. 특히 ‘지저(地底) 문명’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종종 학회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하곤 했다. 고대 기록에 드문드문 등장하는 ‘깊은 자들의 도시’나 ‘별빛 아래 잠든 문명’ 같은 이야기들은 그저 신화나 전설로 치부되었다. 지진 활동으로 사라진 지하 동굴, 혹은 단순한 광산 유적 정도로 해석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서하는 달랐다. 그녀의 직관은 그 단순한 해석을 거부했다. 그녀의 연구실 벽면에는 수많은 가설과 도표, 그리고 직접 발굴한 유물 사진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퍼즐 조각이었고, 그녀는 그 조각들을 맞추는 데 젊음과 열정을 바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데이터 슬레이트가 다시 한번 깜빡이며 긴급 알림을 띄웠다. 일상적인 학술 정보가 아니었다. 연방 최북단, ‘잿빛 산맥’이라 불리는 황량한 광산 지대에서 송신된 보고서였다.

서하는 무심코 슬레이트를 집어 들었다. 화면을 스크롤하자 익숙한 형식의 광산 조사 보고서가 펼쳐졌다. 새로운 광맥 개발을 위한 지질 탐사 결과였다. 평범한 내용의 연속이었다. ‘지하 300미터 지점에서 새로운 철광석 지대 발견’, ‘지하 500미터 지점에서 미지의 암반층과 조우’.

문득, 그녀의 눈이 한 문단에 고정되었다.

“`
[지하 782미터 지점 – 특이 사항]
통상적인 지질 구조와 상이한 인공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구조물 발견.
암석층을 뚫고 지나가는 매끄러운 수직 통로와 그 끝에서 발견된 미상 금속체.
초기 분석 결과, 현존하는 어떤 금속 합금과도 일치하지 않음.
본 연구소의 판단으로는 자연적인 지질 현상으로 인한 변형으로 사료됨.
추가 조사 필요성은 낮음.
“`

“자연적인 지질 현상이라고?”

서하의 입에서 탄식에 가까운 혼잣말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곧장 첨부된 이미지 파일을 열었다. 첫 번째 사진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통로의 입구를 담고 있었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벽면은 주변의 거친 암석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망치나 드릴로 뚫린 자국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진흙을 빚듯 부드럽게 만들어낸 것처럼 보였다.

두 번째 사진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건…!”

흙먼지에 뒤덮여 있었지만, 그 형상은 분명했다. 낡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은 돌. 그러나 단순히 돌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매끄럽고 윤기 나는 표면은 흑요석처럼 깊은 어둠을 품고 있었고, 그 위에 새겨진 문양들은 어떤 알려진 고대 문자 체계와도 달랐다. 미지의 상형문자와 기하학적 패턴이 뒤섞여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듯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돌에서 희미하게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었다. 사진에는 빛의 잔상까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규칙적인 간격으로 깜빡이는, 마치 심장 박동처럼 느껴지는 빛이었다.

서하의 심장이 쿵, 하고 크게 울렸다. 손끝이 떨려왔다. 이것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절대로. 그녀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그 ‘흔적’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온몸을 감쌌다.

“미상 금속체? 자연적인 변형?”

그녀는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소의 안이한 판단에 분노했다. 그들은 단지 눈앞의 물질적 가치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이 기묘한 발견의 의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하 782미터. 어떤 인공적인 구조물도 발견될 수 없는 깊이. 그곳에서, 저런 매끄러운 통로와 미지의 돌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서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머릿속이 온통 그 검은 돌과 푸른빛, 그리고 심연의 꿈으로 가득 찼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 이건… 증거야.”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통신 장치를 집어 들었다. 수십 년간 잊힌 문명을 연구하며 유일하게 그녀의 ‘미친’ 가설에 귀를 기울여 준 한 사람, 은퇴한 고고학자 한성진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 저 서하입니다. 급한 일이 생겼어요.”

수화기 너머에서 한성진 교수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군. 자네가 이 시간에 연락할 정도면 뭔가 대단한 거라도 발견했나 보군.”

“네. 아마도요.” 서하의 목소리에는 흥분과 확신이 뒤섞여 있었다. “잿빛 산맥 광산에서 온 보고서인데… 교수님이라면 아실 거예요. 제가 줄곧 말하던 그 지하 문명과 연관된 것일지도 몰라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성진 교수는 서하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의 오랜 경험과 직관은 서하의 주장에 어느 정도 무게를 두곤 했다.

“지하 782미터라… 꽤 깊군. 그런데 연방 당국이 그걸 자네에게 보냈다고? 의외로군.”

“아니요. 그냥 일반적인 광산 조사 보고서였어요. 거기서 ‘특이 사항’으로 언급된 부분을 제가 찾아낸 거죠. 그들은 이걸 단순한 지질 현상으로 치부하고 있어요.”

“멍청이들 같으니.” 한 교수의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비웃음이 담겼다. “자네가 그렇게 확신한다면, 나도 믿어 보겠네. 그래서, 뭘 하려는 건가?”

“잿빛 산맥으로 갈 거예요.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해야 해요.” 서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가능하다면, 교수님께도 같이 가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한 교수는 다시 한 번 침묵했다. 그는 은퇴한 지 오래였고,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지만 서하의 열정과, 그 ‘지하 문명’에 대한 호기심은 그를 다시금 현장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하하, 자네는 여전히 똑같군. 그래, 내게 연락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네. 혼자서 그곳에 가는 건 위험할 거야. 연방의 눈을 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그럼… 교수님도 함께 해주시는 건가요?”

“물론이지. 이 늙은이에게 아직 이 정도 모험쯤은 남겨져 있다고.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하게. 연방이 알게 되면 골치 아파질 거야. 특히 그들이 ‘자연적 현상’으로 치부한 것에 대해 우리가 딴지를 건다면 말이지.”

“알고 있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서하는 한층 더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연구실 벽에 붙어 있는 잿빛 산맥의 지도를 응시했다. 오래된 지도는 온통 흐릿하고 부정확했다. 그곳은 연방의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

하지만 이제, 그곳은 서하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미지의 심연이 되어 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수십 년간 신화 속에서만 존재했던 ‘깊은 자들의 도시’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서하는 낡은 배낭을 집어 들었다. 가장 기본적인 탐사 장비와 몇 권의 고대어 사전을 챙겼다. 떠나기 전, 그녀는 다시 한번 데이터 슬레이트에 담긴 검은 돌의 사진을 보았다.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이는 그 돌은 마치 그녀를 심연 속으로 유혹하는 길잡이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모험은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지하 782미터. 그곳에 어떤 비밀이 잠들어 있을지, 그리고 그 비밀이 세상의 질서를 어떻게 뒤흔들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서하만이, 그 알 수 없는 미지의 부름에 응답하고 있었다. 어둠 속으로, 그리고 그 아래 더 깊은 어둠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