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이상한 침묵
이준호는 눈을 떴다. 칙칙한 아침 햇살이 창밖으로 스며들어 벽에 바스락거리는 먼지 입자들을 비추고 있었다. 새로 지어진 지 채 2년도 되지 않은 아파트였다. 이 높은 층에서는 도시의 소음이 미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간밤의 꿈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끈적하고 불쾌한 감정이 가슴 한구석에 달라붙어 있었다.
“젠장, 또 꿈자리가 사나웠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스마트폰을 집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7시 30분. 평소보다 10분이나 늦게 일어났다.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은 꽤 피곤해 보였다. 그는 습관처럼 세면대 위 칫솔을 집었다. 그런데 칫솔이… 분명 어제 저녁에 똑바로 세워두었는데, 지금은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뭐지?”
별것 아닌 일이었다. 잠결에 그가 무심코 건드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원래 그렇게 놓여 있었는데 자신이 잘못 기억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칫솔을 바로 세우고 양치를 시작했다. 거품을 뱉어내고 물로 입을 헹구는 동안, 왠지 모르게 싸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보일러는 충분히 돌려두었는데도 말이다.
씻고 나와 옷을 갈아입었다. 정갈하게 다림질된 셔츠와 슬랙스. 이준호는 늘 깔끔함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주방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토스트를 구워 먹을 생각이었다. 식빵을 꺼내 토스터에 넣으려는 순간, 식탁 위에 놓인 열쇠 꾸러미가 눈에 들어왔다.
“어…?”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어제 밤, 퇴근하고 돌아와 열쇠를 현관 옆 선반 위에 두었다. 늘 그랬다. 그런데 지금 열쇠는 식탁 정중앙에 놓여 있었다. 그는 기억력이 나쁜 편이 아니었다. 분명, 선반 위에 두었다.
“내가 정신이 나갔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젓다가, 문득 주방 창문 쪽으로 시선이 닿았다. 닫혀 있어야 할 창문이 아주 미세하게, 손가락 하나 정도의 틈으로 벌어져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층 아파트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준호는 늘 환기 후 창문을 닫고 잠금장치까지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창문으로 다가갔다. 정말로 잠금장치가 살짝 풀려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완전히 닫는 순간, 어딘가에서 ‘딸깍’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 멀리서 아주 작은 스위치를 조작하는 듯한 소리였다.
이준호는 잠시 숨을 죽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도시의 희미한 웅성거림만이 그의 귀를 채울 뿐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이라 정의했다. 이런 종류의 기이한 현상들은 늘 합리적인 설명이 뒤따르는 법이었다. 오래된 건물이면 몰라도, 최신식 아파트에서?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나.”
식빵을 토스터에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빵 굽는 냄새가 희미하게 퍼져나왔다. 그는 열쇠 꾸러미를 다시 현관 선반으로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토스터기가 문제였다. 분명 작동 중이었는데, 갑자기 툭 하고 꺼져 있었다. 전원 코드를 확인했다. 멀쩡하게 꽂혀 있었다. 다시 스위치를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이게 또 왜 이래?”
짜증이 밀려왔다. 새 아파트에, 가전제품도 다 최신식인데 벌써부터 고장이라니. 그는 코드를 뽑았다가 다시 꽂았다. 그리고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토스터기 안에서 ‘찌릿!’ 하는 스파크가 튀었다.
“젠장!”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깜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토스터기를 노려봤다. 스파크가 튀는 동시에, 거실의 스탠드 불빛이 한 번 깜빡거렸다. 마치 누군가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이준호는 어쩐지 모를 불쾌감에 휩싸였다. 단순히 고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일련의 사건들이 너무나도 ‘우연’이라는 단어를 강요하는 듯했다. 그는 오늘 출근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니, 그보다 먼저, 이 아파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그는 찝찝한 기분을 애써 외면하고 출근을 준비했다. 일단 토스터는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토스트는 포기했다. 현관을 나서기 직전, 그는 마지막으로 거실을 둘러봤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가 애착을 가지고 꾸민 그의 공간이었다. 깔끔하고, 모던하고, 완벽하게 통제된.
그때였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작은 유리 테이블 위에서, 그가 어제 읽다 놓아둔 책이 ‘스윽’ 하고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종이책의 바닥 면이 테이블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소리. 이준호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방금, 책이 움직였다. 아무도 만지지 않았는데. 바람이 불어온 것도 아니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집 안은 완벽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이준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책은 테이블 가장자리에서 한 뼘 정도 떨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손가락으로 살짝 밀어 놓은 것처럼.
그는 손을 뻗어 책을 집어 들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종이의 감촉이 이상하게도 차갑게 느껴졌다. 그의 이성적인 머릿속에서 모든 논리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누구… 누구 있어?”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집 안을 향해 물었다. 당연히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쥐죽은 듯한 침묵만이 그를 조롱하는 듯했다. 그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은 본능적으로 거실의 모든 곳을 훑었다. 닫힌 방문들, 그림자 드리운 구석, 천장의 조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분명히 느꼈다. 이 공간 안에, 그 혼자가 아니라는 섬뜩한 확신.
갑자기, 등 뒤에서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오래된 경첩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 이준호는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현관문이, 아주 미세하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아까 분명히 닫았다고 생각했다. 잠금장치까지 확인했다. 그런데 지금, 문은 어둠을 토해내듯 벌어져 있었다. 이준호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그의 등골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더 이상 이 모든 현상을 우연이나 고장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무언가가, 이 집에 있었다.
아니, 어쩌면 무언가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준호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섰다. 열린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깥의 소음은 마치 다른 세상의 소리 같았다. 그의 아파트는, 이제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차갑고, 낯선 기운이 그의 오감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 모든 이상한 일들은, 이제 막 시작된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