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지하의 속삭임: 균열

밤이 깊어질수록 아카데미는 그 거대한 심장을 숨죽인 듯 가라앉혔다. 웅장한 대리석 복도 위로 달빛이 은색 강물처럼 쏟아져 내렸지만, 이안의 마음은 그 차가운 빛만큼이나 서늘했다. 손안에 쥔 고서의 양피지에서 퀴퀴한 먼지 냄새가 났다. 금서 목록에 오른 책이라는 건 알지만, 이제 와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찾는 답은 책장 사이의 먼지처럼 쌓여만 있었다.

“……그게 정말일까.”

중얼거린 목소리는 복도를 따라 희미하게 울리다 사라졌다. 최근 들어 아카데미 지하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문은 단순한 장난을 넘어섰다. 벽 속을 기어 다니는 벌레 소리 같다고도 하고, 거대한 짐승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고도 했다. 어떤 이는 텅 빈 동굴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 같다고 했지만, 그 소리는 분명 차갑고, 음습하며, 무언가 간절하게 속삭이는 듯했다.

도서관 관리인 ‘벨라’ 할머니의 경고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안, 이 젊은이. 자꾸 이상한 책만 들춰보니 얼굴이 시퍼렇게 질리지. 쓸데없는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단다. 특히… 지하 쪽은 조심해야 해.”
할머니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푸근했지만, 그 깊은 곳에는 오래된 비밀을 품은 듯한 피로감이 어려 있었다. 할머니는 그저 오래된 미신이나 괴담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안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이안은 책을 덮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책 속의 오래된 지도는 희미했지만, 아카데미 지하의 복잡한 통로를 대략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독 굵은 선으로 표시된 한 지점. ‘금기의 방’이라고 적힌 곳이었다. 오래 전, 아카데미 설립 초기에 봉인되었다는 전설만 내려오는 곳.

“설마… 정말로 거기서 그런 소리가 나는 건가?”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복도를 따라 그의 발소리가 불안하게 울렸다. 늘 삼엄하게 경비가 서는 본관 지하 통로는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조용했다. 경비병들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너무 조용한 것이 오히려 불길했다.

통로 끝, 낡은 촛대가 어둠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굳게 닫혀있을 강철 문은 미세하게 열려 있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이미 들어간 걸까? 아니면, 누군가 고의로 열어둔 걸까?

이안은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다. 틈새로 스며든 어둠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눅눅하고, 곰팡이 냄새가 섞인 비릿한 흙냄새,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심연에서 끌어올려진 듯한 냄새. 차가운 공기가 그의 뺨을 스쳤다.

“이안? 거기 너였어?”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이안은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그림자 속에 서 있던 건 마법사 지망생 중 가장 뛰어난 수재로 손꼽히는 ‘엘리사’였다. 그녀의 새하얀 교복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엘리사는 늘 침착하고 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눈빛은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엘리사? 네가 왜 여기에… 설마, 너도 그 소문 때문에?” 이안이 물었다.

엘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마법 랜턴이 들려 있었다. 랜턴의 푸른빛이 흔들리며 주변을 비췄다. “며칠 전부터… 잠을 잘 수가 없었어. 밤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거든. 처음엔 환청인 줄 알았는데… 갈수록 선명해져. 벽을 긁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무언가가… 속삭이는 것 같기도 해. 이안, 너도 들었지?”

이안은 망설였다. 엘리사에게 이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그녀는 깊이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았다. “응, 나도 그랬어. 그래서 이 책을 찾아봤어. 아카데미 설립 초기의 기록인데… 이 지하에 ‘금기의 방’이라는 곳이 봉인되어 있었다는 내용이 있어.”

엘리사의 눈빛이 더욱 흔들렸다. “금기의 방? 난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그저 오래된 수로와 식량 창고가 전부라고 배웠는데.”

“그게 아니라… 이 지도를 봐.” 이안은 책을 펼쳐 엘리사에게 보여주었다. 희미한 선들이 얽힌 그림은 일반적인 지하도가 아니었다. 미로처럼 복잡하고, 비대칭적인 구조가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의 내장을 연상시켰다.

엘리사의 시선이 지도의 특정 지점에 멈췄다. ‘금기의 방’이라 적힌 곳. 그리고 그 방에서부터 뻗어 나가는 가느다란 선들. 혈관처럼 이어져 아카데미의 심장부까지 닿아 있는 듯했다.

“이게 뭐야? 이 선들은… 에테르 흐름인가? 아니면… 뿌리?” 엘리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확히는 모르겠어. 하지만 벨라 할머니가 경고했던 게 자꾸 마음에 걸려. ‘지하 쪽은 조심해야 해’라고 하셨거든.” 이안은 문틈으로 다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저 문… 누가 일부러 열어둔 것 같지 않아?”

엘리사는 랜턴을 들어 문 안쪽을 비췄다. 랜턴 빛이 닿는 곳마다 낡고 습한 기운이 짙게 깔려 있었다. 벽에는 이끼가 두껍게 끼어 있었고, 바닥에는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누군가 먼저 들어갔다면… 더 위험할 거야. 이안, 우리 돌아갈까?” 엘리사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늦었어. 이미 여기까지 왔잖아. 그리고… 저 소리가 들리지 않아? 더 크게 들려.”

두 사람의 귀에 희미하게 들려오던 속삭임이 점차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물이 흐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거대한 돌이 마찰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보다 더 소름 끼치는 것은, 모든 소리 뒤편에 깔려 있는 낮고 불길한 음성이었다. 언뜻 인간의 언어 같으면서도, 결코 인간이 내는 소리가 아닌, 태초의 심연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끔찍한 음성.

“이안, 저건… 대체 무슨 소리야?” 엘리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모르겠어… 하지만 저 소리가 나는 곳이 바로 저 안이야.” 이안은 결심한 듯 랜턴을 켜들고 먼저 발을 내디뎠다. 어둠 속으로 한 발짝 내딛자, 차가운 습기가 온몸을 감쌌다. 곰팡이 냄새와 함께 묘한 쇠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통로는 생각보다 길고 비좁았다. 벽에 닿는 손가락 끝으로 축축한 이끼와 끈적이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랜턴 빛이 닿는 저편에서, 통로가 급격히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오래되어 부식된 돌계단은 밟을 때마다 불안한 소리를 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소리는 더욱 선명해졌다. 이제는 속삭임이 아니라, 마치 수백 개의 혀가 동시에 움직이는 듯한 소름 끼치는 마찰음과, 깊은 곳에서 울리는 낮고 묵직한 고동 소리였다.

“심장이 뛰는 것 같아….” 엘리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안, 이 소리가 아카데미 전체를 감싸고 있던 소리였어. 지하 깊은 곳에서…”

이안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온 신경은 앞으로 쏠려 있었다. 통로의 끝, 어둠이 가장 짙게 깔린 곳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푸른빛은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내뿜는 것 같은, 기괴한 주홍빛이었다.

두려움이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 그를 앞으로 밀어붙였다. 그 빛은 마치… 그의 심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무언가를 흔들어 깨우는 것 같았다.

마침내, 통로가 둥근 공간으로 이어졌다.
랜턴 빛이 그 공간의 중앙을 비추자, 이안과 엘리사는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그곳에는 거대한 원형의 제단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제단 표면에는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고, 그 문양들은 불규칙하게 깜빡이는 주홍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제단 안에서 무언가가 살아 숨 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제단 한가운데…

무언가가 심연의 어둠 속에서 솟아나 있었다. 끈적거리는 검은 점액질로 뒤덮인,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덩어리였다. 그것은 느릿하게 꿈틀거렸다. 덩어리의 표면에는 수없이 많은 눈송이 같은 균열들이 있었고, 그 균열 사이에서 불길한 주홍빛이 섬뜩하게 새어 나왔다.

그것은 살아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카데미 지하의 심장인 양, 느리고 거대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동 소리 사이로, 이안과 엘리사에게 똑똑히 들리는 목소리가 울렸다.
인간의 혀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비명에 가까운 언어.

*“크툴루 프타그하그은… 이아!”*

엘리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 이안은 황급히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것의 거대한 몸체에 박힌, 균열들 사이에서 섬뜩하게 빛나던 수십 개의 눈이, 일제히 이안과 엘리사가 서 있는 어둠을 향해 돌아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아카데미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묵직한 진동이 지하에서부터 치솟았다.
이안의 귀에, 아카데미 설립자들이 봉인하려 했던 오래된 금기의 속삭임이 똑똑히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단지 잠들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끔찍한 균열 사이로…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