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잿더미 속 밀가루 반죽
“아니, 이보시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새벽 5시. 해는커녕 옅은 여명조차 희미한 시각, 황도 카이저스베르크 뒷골목의 작은 빵집 ‘아리아의 행복한 빵’에서는 불꽃 튀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주인 서아리아는 온몸에 밀가루를 뒤집어쓴 채 두 손으로 허리를 짚고 서 있었다. 오븐에서 막 꺼낸 뜨끈한 빵처럼 부풀어 오른 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세 명의 제국 병사가 마치 거대한 짐승처럼 빵집의 좁은 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번쩍이는 갑옷과 험상궂은 표정은 새벽 공기를 한층 차갑게 만들었다. 그중 한 병사가 손에 든 두루마리를 흔들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이, 빵 굽는 아가씨. 어제부터 시행된 ‘제국의 위대한 조화와 번영을 위한 특별 증세안’을 못 들었나? 밀가루 100키로그램당 100데나르, 설탕 50키로그램당 80데나르의 특별 세금이 추가되었다. 미신고 밀가루는 압수 조치된다.”
“뭐라고요? 100키로그램당 100데나르요? 지난주에 새로 들여온 밀가루가 창고에 가득 있는데 그걸 다 압수하겠다는 겁니까? 이건 말도 안 돼요! 어제까지는 이런 법이 없었잖아요!”
아리아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빵 굽는 뜨거운 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막 구운 통밀빵을 진열대에 올리려던 참이었다. 그 빵들은 오늘 하루, 뒷골목 사람들의 아침과 저녁을 책임질 양식이었다.
병사들은 아리아의 울분에 찬 항변을 비웃기라도 하듯 코웃음을 쳤다.
“법은 원래 하루아침에도 바뀌는 법이지. 제국은 관대하시지만, 불온한 세력의 준동을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늘부터 당장 미신고 밀가루는 전부 국고로 귀속된다. 어서 창고 문을 열어라.”
“불온한 세력? 이보세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뭘 한다고 불온하다는 겁니까? 그저 빵이나 구우며 살던 사람들인데! 이러다간 우리 전부 굶어 죽어요!”
아리아는 기가 막혔다. 카이저스베르크의 뒷골목, 이른바 ‘흙먼지 마을’ 사람들은 대대로 제국에 충성하며 살아왔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찾아 하루하루 버텨냈고, 세금을 내라면 냈고, 징집되면 끌려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불온한 세력’이라니? 밀가루가 곧 생명줄인 이들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더 항변하려 할 때,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아침부터 소란스럽군. 무슨 일인가?”
목소리의 주인은 황도 경비대의 정식 제복을 입은 청년이었다. 굳게 다문 입술과 날카로운 눈매, 반듯한 자세는 그가 이 뒷골목 병사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허리에는 제국의 문장이 선명하게 새겨진 검집이 매달려 있었고, 가슴팍에는 붉은 휘장이 빛났다. 그의 등장에 병사들은 순간 움찔하며 허리를 숙였다.
“카이렌 경위님! 그게, 이 빵집 아가씨가 어제 발표된 특별 증세안을 무시하고 불법 밀가루를 은닉하려 들어서 말입니다.”
카이렌 경위는 병사들의 보고를 들으면서도 시선은 아리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얼굴에 묻은 밀가루와 분노로 상기된 붉은 볼,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타오르는 듯한 눈빛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불법 밀가루라니요? 이건 제가 어제 정당하게 돈 주고 사 온 재료입니다! 그걸 하룻밤 사이에 불법으로 만드는 게 제국의 법이라는 겁니까? 카이저스베르크 시민을 이토록 농락해도 되는 겁니까?”
아리아는 카이렌 경위의 시선에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더 당당하게 맞섰다. 그의 깔끔한 제복과 위압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굶주릴 마을 사람들의 얼굴만이 떠올랐다.
카이렌은 묘한 표정으로 아리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짜증과 함께 언뜻 흥미로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아가씨. 제국의 법은 위대하고 공정하며, 모든 백성의 안녕을 위해 존재한다. 그 법에 따라 집행하는 경비대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은 중대한 범죄다.”
“안녕이요? 굶어 죽게 생겼는데 무슨 안녕을 말씀하십니까? 밀가루가 없으면 빵을 못 만들고, 빵이 없으면 이웃들은 굶습니다! 대체 누가 행복해지는 법이라는 겁니까, 이 법은?”
아리아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다. 빵집 문 앞에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 마을 사람들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빛 역시 불안과 분노로 흔들리고 있었다.
카이렌은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은 아리아에게 더욱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이 빵집을 지켜야 했고, 흙먼지 마을의 작은 희망을 지켜야 했다.
“음… 좋다. 밀가루 압수는 규정대로 진행될 것이다.”
카이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잔인할 만큼 단호했다. 아리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의 말에 병사들은 으쓱거리며 창고 쪽으로 향했다.
“안 돼요! 멈추세요! 제발요!”
아리아는 급히 병사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절박한 외침에 카이렌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경비대 업무 방해죄에 반역죄까지 추가하고 싶은가?”
“반역이라니요! 빵집 주인한테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저 밀가루는, 저 밀가루는… 저에게 전부나 마찬가지예요!”
아리아는 억울함에 목이 메었다. 이때였다. 빵집 문 앞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노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카이렌 경위님… 그, 그 밀가루는 아리아 아가씨가 병든 어머니 약값과 동생들 학비를 벌려고 어렵게 모아 산 겁니다.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노인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카이렌은 그제야 아리아의 뒷사정을 엿본 듯 했다. 그의 시선은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개인의 사정은 안타깝지만, 법은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이건 제국의 명령이다. 물러서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사들이 아리아를 밀치고 창고 문을 활짝 열었다. 뽀얀 밀가루 포대들이 가득 쌓여 있는 모습이 드러나자 아리아의 눈에서는 결국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흙먼지 마을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이 부서지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이거 전부 가져가! 국고로 귀속될 것이다!”
병사들이 낄낄거리며 밀가루 포대를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아리아는 무릎이 꺾이는 듯 주저앉았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이제 정말 끝인가. 흙먼지 마을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
바로 그때였다.
“이보시오, 병사 양반들! 그렇게 쉽게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소?”
갑자기 빵집 뒤편에서 커다란 솥뚜껑을 든 건장한 사내가 뛰쳐나왔다. 그는 마을에서 가장 힘센 대장장이인 ‘레오’였다. 그의 뒤를 이어 상인, 농부, 심지어 아이들까지 온갖 생활 도구를 손에 들고 모여들었다. 그들의 눈빛은 더 이상 불안에 떨지 않았다. 불타오르는 분노와 결의가 깃들어 있었다.
“우리 아리아 아가씨의 빵을 빼앗는 건, 우리 목숨줄을 끊는 것과 마찬가지다! 밀가루는 한 톨도 못 내줘!”
레오의 선언에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그들은 빵집 문 앞에 겹겹이 서서 병사들을 막아섰다. 흙먼지 마을의 작은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카이렌 경위의 얼굴에 드디어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무슨 짓이냐! 제국 경비대에 저항하는 것은 반역 행위다! 전부 체포될 것이다!”
“체포요? 그럼 우리 다 체포하시든가! 더 이상은 못 참아!”
한 아주머니가 손에 든 절구통을 들고 소리쳤다. 곳곳에서 “맞아! 더 이상은 못 참아!” 하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더 이상 순종적인 백성이 아니었다. 오랜 억압과 설움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아리아는 주저앉은 자리에서 그들의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빵 때문에, 그녀의 밀가루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나선 것이다. 눈물이 다시 흐르려 했지만, 이번에는 솟구치는 감동과 함께 묘한 결의가 뒤섞여 있었다.
카이렌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의 병사들을 훑어보았다. 세 명의 병사로는 이 많은 마을 사람들을 막을 수 없었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아리아에게 닿았다. 주저앉아 있던 그녀가 천천히 일어섰다. 밀가루가 묻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자, 그녀의 눈빛은 이전보다 훨씬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맞아요! 더 이상은 못 참아요!”
아리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마을 사람들의 기세는 더욱 맹렬해졌다. 그들은 그녀를 중심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카이렌은 굳게 닫혔던 입술을 어렵사리 열었다.
“자네… 정말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겠나?”
아리아는 그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병사들의 손에서 밀가루 포대 하나를 낚아챘다. 그리고는 그 포대를 번쩍 들어 올려 사람들의 머리 위로 힘껏 흔들었다.
“우리 빵은 우리가 지켜요! 흙먼지 마을의 자유는, 우리의 밀가루부터 시작될 거예요!”
그녀의 선언에 마을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밀가루 먼지가 허공에 뿌려지며 햇살처럼 반짝였다. 카이렌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잿더미 같은 삶 속에서 피어난 하얀 밀가루 반죽처럼, 그녀의 선동은 작고 보잘것없었지만, 거대한 제국에 균열을 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균열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의 임무는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서 그 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혼돈의 중심에, 밀가루를 뒤집어쓴 빵집 아가씨가 서 있었다.
아리아의 다음 행동은 카이렌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녀는 번쩍 든 밀가루 포대를 바닥에 쾅 내려놓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근데… 우리 이제 뭘 해야 하죠?”
마을 사람들의 함성이 멎고, 정적이 흘렀다. 그들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이렌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 황당한 광경 속에서, 카이렌은 어쩐지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반란 치고는 너무나도 어설펐지만, 그들의 순수하고 절박한 열기는 외면하기 어려웠다.
그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 임무냐, 양심이냐. 빵집 아가씨의 어설픈 반란은, 제국의 냉철한 경위의 마음에 작은 균열을 내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무언가 말이 나오려 할 때였다.
“좋아, 아리아 아가씨. 이왕 이렇게 된 거, 당신의 그 어설픈 반란, 내가 좀 더 효율적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카이렌은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에 스스로도 놀랐다. 그리고 아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밀가루 반죽처럼 말랑말랑한 미소가 번졌다.
“정말요? 그럼… 혹시 빵은 안 뺏어 가시는 건가요?”
황도 경비대 최고의 엘리트 경위 카이렌은, 이제 막 시작된 흙먼지 마을의 빵집 반란에, 어쩌다 보니 발을 담그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반란의 중심에는 빵 냄새 풀풀 나는, 고집 센 아가씨가 서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