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균열
아틀라스 호의 중앙 연구실은 칠흑 같은 심우주 한복판에서도 늘 빛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어떤 조명도 이 공간을 완전히 밝힐 수 없는 듯했다. 방 한가운데, 강화 유리 케이스 안에 놓인 그것 때문이었다.
한지우 박사는 차가운 유리벽에 이마를 기댄 채 한참을 서 있었다. 그것은 완벽하게 검은색이었다. 마치 모든 빛을 집어삼킨 듯,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의 눈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그런 검은색. 고작 어른 주먹 두 개를 합쳐놓은 크기였지만, 그 부피감은 우주선 전체를 짓누르는 듯했다. 형태는 불규칙한 다면체였으나, 그 면들은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듯 착각하게 만들었다.
“벌써 세 시간째 아무런 데이터도 나오지 않습니다, 선장님.”
한 박사의 목소리는 평소의 확신에 찬 어조와 달리 미세하게 떨렸다. 김태영 선장은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케이스 너머의 ‘그것’을 응시했다. 선장의 노련한 눈빛에도 미약한 불안이 스쳐 지나갔다.
“온도, 압력, 구성 성분, 에너지 방출량… 모든 물리적, 화학적 스캔에서 ‘정보 없음’만 반복됩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요. 그런데 분명히 여기에 있잖습니까?”
한지우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케이스를 짚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시린 냉기가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 무기물이었지만, 섬뜩할 정도로 생명력이 느껴졌다. 마치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들을 주시하고 분석하는 듯한,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인 것만 같았다.
“선내 컴퓨터는 계속 과부하 상태입니다. 이 물체에서 발산되는 알 수 없는 파동 때문인 것 같습니다. 통신망에도 자꾸 노이즈가 껴서 본부와의 연결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선장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넉 달간의 심우주 탐사 중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 환호했던 순간은 이미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졌다. 태양계 외곽, 미지의 성운 깊은 곳에서 발견된 이 유물은 그들의 모든 상식을 뒤엎었다.
“이진아 보안팀장은 어디에 있나?” 김 선장이 물었다.
“격리실 외부 경계 근무 중입니다. 선장님, 아무래도… 이 물체는 단순한 유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지우 박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피로와 함께 섬뜩한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모든 탐사선이 그랬습니다. 미지의 외계 문명과 조우했을 때… 그들은 언제나 ‘환대’가 아닌 ‘침범’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연구실 문이 열리며 이진아가 들어섰다. 그녀는 평소의 단정함 대신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선장님, 한 박사님. 센서에 이상한 수치가 잡힙니다. 선내 압력 변화는 없는데, 미세한 진동이 감지되고 있어요. 그리고….” 이진아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선장이 재촉했다.
“승무원들 몇몇이 두통과 이명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쉬쉬하는 분위기라 정확한 보고는 없지만, 의무실에 문의한 결과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승무원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한지우 박사는 ‘그것’을 다시 돌아보았다. “그것 때문입니다. 분명해요. 이 물체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파동이 생체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겁니다.”
“하지만 저희는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못했습니다만.” 김 선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요, 선장님.” 한지우가 고개를 저었다. “느끼고 계실 겁니다. 단지 아직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에요. 저도… 방금 전부터 가끔씩… 귓가에 알 수 없는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한지우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은 흔들림 없이 ‘그것’을 향하고 있었다.
“속삭임이라니? 무슨 말이지?” 김 선장이 물었다.
“특정 언어가 아닙니다. 의미 없는 음절의 조합이에요. 하지만… 그 소리들이 마치 제 생각을 파고드는 것 같습니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이진아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저도 조금 전, 복도를 걷는데 갑자기 선체 내부에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분명 누수 경보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시야가 잠깐 흔들렸습니다.”
세 사람의 침묵이 연구실을 짓눌렀다. ‘그것’은 여전히 그 자리에 고요히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더욱 섬뜩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이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물건입니다.” 한지우의 목소리는 이제 확신에 차 있었다. “이 파동은 물리적 장벽을 무시하고, 우리의 의식에 직접 개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김 선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 모든 감각이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이 미지의 존재는 그들의 과학적 이해를 넘어섰고, 이제는 그들의 정신마저 위협하기 시작했다.
“선장님.” 이진아가 다급하게 불렀다. “지금 복도에서 들렸습니다. 누군가 비명을….”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내 전체를 뒤흔드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격벽을 뚫고 들어왔다. 곧이어 통신망이 지지직거리며 연결되는가 싶더니, 알 수 없는 잡음과 함께 한 남자의 절규가 섞여 들려왔다.
— “안 돼! 저건… 저건 내 것이 아니야! 내 몸이…! 흐읍…!!” —
통신은 끊겼다.
김 선장은 연구실 문을 향해 냅다 달려나갔다. 그의 등 뒤로, 한지우는 여전히 유리 케이스 속의 ‘그것’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의 귓가에는 속삭임이 아닌, 수많은 목소리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들은 불확실한 그림자처럼 그녀의 시야를 잠식하며, 마치 그녀의 가장 깊은 두려움을 형상화하려는 듯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으로 아주 미세하게, 아주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듯했다. 마치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심장이 처음으로 박동하는 것처럼.
그들의 정신에 드리운 균열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