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제목: 잿빛 하늘 아래, 첫 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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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1**
**장면:** 금이 간 콘크리트 벽과 부서진 창문으로 둘러싸인 허름한 건물 내부. 먼지가 잔뜩 쌓인 선반과 쓰러진 진열대가 과거 편의점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쪽 구석, 찢어진 천과 낡은 신문지를 모아 만든 간이 침대 위에 작은 소녀, 소미가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차가운 공기가 실내에 감돈다.
**내레이션 (유나):**
세상은 잿빛으로 물들었다.
하늘은 언제나 우중충했고, 땅은 메말랐으며,
살아남은 모든 것은 변이하거나, 그저 죽어갔다.
겨울이 오고 있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예측 가능한,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장면:** 유나가 간이 침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잠든 소미의 이마를 가만히 짚어본다. 열은 없는 듯하다. 유나의 손은 거칠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굳은살이 박혀 있다. 그녀의 낡은 가죽 장갑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다.
**유나 (혼잣말, 아주 작게):**
…춥네.
**장면:** 유나가 조용히 몸을 일으킨다. 그녀의 등 뒤에는 녹슨 철근과 부러진 유리 조각들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바닥에 놓인, 한때는 밝은 색이었을 마법봉은 이제 낡고 빛이 바랜 나무 지팡이처럼 보인다. 끝부분에 박힌 보석에는 가는 금이 가 있다.
**내레이션 (유나):**
몇 년째였을까.
달력을 세는 의미조차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하루는, 늘 배고픔과 함께 시작되었다.
**장면:** 유나가 찌그러진 금속 컵에 물 한 모금을 따라 마신다. 흙탕물 필터를 거쳤지만 여전히 흙내가 나는 물이다. 그녀의 눈은 피로에 잠겨 있지만, 동시에 단단한 결의가 비친다.
**유나:**
(한숨)
오늘도… 찾아 나서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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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2**
**장면:** 폐허가 된 도시의 거리. 무너진 빌딩의 잔해가 하늘을 가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스산하게 서 있다. 바닥에는 부서진 자동차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검붉은 얼룩들이 널려 있다. 잿빛 하늘에서는 희미하게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내레이션 (유나):**
이곳은 한때 ‘빛의 도시’라 불렸었다.
지금은 그림자만이 남은,
죽은 자들의 무덤.
**장면:** 유나가 조심스럽게 건물 잔해 사이를 걷는다. 그녀의 발소리는 이따금 굴러다니는 파편 소리에 묻힌다. 주머니에는 낡은 지도가 들어있는데, 대부분의 표식이 지워진 채 몇 군데만 희미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녀는 허리춤에 찬, 칼날이 무뎌진 식칼을 단단히 잡고 있다.
**유나 (중얼거림):**
이 근처에… 예전에 작은 식료품점이 있었는데.
아마 전부 약탈당했겠지만… 혹시나 해서.
**장면:** 유나가 한때 번화가였을 법한 거리를 지나 오래된 상가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유리창은 모두 깨져 있고, 내부에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썩은 내음이 진동한다. 바닥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흩어져 있다.
**유나:**
(숨을 들이쉬며 코를 막는다)
…젠장.
**장면:** 유나가 조심스럽게 내부를 살핀다. 부서진 선반, 찢어진 포장지, 텅 빈 냉장고들이 흉물스럽게 놓여 있다. 그녀는 벽에 붙어있는 오래된 포스터를 발견한다. 빛바랜 색깔 속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들의 모습. 유나의 얼굴에 잠시 씁쓸한 미소가 스친다.
**내레이션 (유나):**
내가 기억하는 세상은 이랬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이 폐허 속에서 눈을 떴으니까.
소미도, 나도.
**장면:** 유나가 상가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다. 한때 창고였을 법한 작은 방 문이 부서져 열려 있다. 안에서 희미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유나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그녀는 마법봉을 든 손에 힘을 준다. 보석에서 희미하게 푸른빛이 깜빡인다.
**유나:**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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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3**
**장면:** 창고 내부. 어두컴컴한 공간에 낡은 상자들이 쌓여 있다. 그 상자들 사이에서 기이한 형체가 꿈틀거린다. 마치 인간의 팔다리가 뒤틀린 채 진흙과 썩은 나뭇가지에 뒤덮인 듯한 모습. ‘오염체’다. 그것은 바닥에 떨어진 쥐의 시체를 뜯어먹고 있었다.
**유나 (내레이션):**
오염체.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변이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부산물.
정신없이 주변의 생명력을 흡수하며 자라나는 괴물들.
하지만… 약점도 있었다.
그들은 빛을 싫어했다.
**장면:** 오염체가 유나의 존재를 눈치챈 듯 고개를 든다. 기괴한 형상의 머리에는 눈알이 여러 개 박혀 있고,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유나를 향해 느릿느릿 몸을 돌린다. 주변 공기가 차갑게 변한다.
**오염체 (효과음):**
크르르르… 쉭…
**장면:** 유나가 마법봉을 앞으로 내민다. 금이 간 보석에서 좀 더 강렬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주변의 어둠이 일순간 물러난다. 오염체가 빛에 움츠러들며 비명을 지른다.
**유나:**
(단호하게)
이리 와.
감히… 내 앞을 막아서겠다니.
**장면:** 오염체가 끔찍한 소리를 내며 유나에게 달려든다. 그 움직임은 예상보다 빠르다. 유나는 빠르게 자세를 취하고, 마법봉을 휘두른다. 푸른빛이 순간적으로 방패의 형태를 띠며 오염체의 공격을 막아낸다.
**유나 (내레이션):**
‘빛의 방패’.
내 가장 기본적인 마법.
하지만 이조차도…
나의 생명력을 갉아먹는다.
**장면:** 오염체가 방패에 부딪혀 뒤로 밀려난다. 그 틈을 타 유나는 마법봉을 다시 한 번 휘두르며 작게 주문을 외운다.
**유나:**
별똥별!
**장면:** 마법봉 끝에서 푸른색 섬광이 별똥별처럼 튀어나가 오염체를 강타한다. 오염체는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고꾸라진다.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유나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힌다.
**내레이션 (유나):**
하찮은 오염체 하나 쓰러뜨리는 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소미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버텨야 한다.
**장면:** 오염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유나가 마법봉을 내리고 한숨을 쉬며 주저앉는다.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그녀는 마법봉의 보석을 바라본다. 금이 더 깊어진 듯하다.
**유나:**
(숨을 헐떡이며)
하아… 하아…
**장면:** 유나가 잠시 숨을 고른 후, 쓰러진 오염체를 조심스럽게 지나쳐 창고 안쪽을 살핀다. 대부분의 물건은 썩어 있거나 쓸모없는 것들이지만, 구석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발견한다. 먼지를 털어내자 ‘비상식량’이라고 쓰인 글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유나:**
이건…
**장면:** 유나가 상자를 열자, 안에 든 것은 오래된 통조림 몇 개와 플라스틱 병에 담긴 물, 그리고 봉투에 든 건빵 같은 것들이다. 모두 유통기한이 훨씬 지났겠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보다 귀한 보물이다. 유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유나:**
(작게)
…소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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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4**
**장면:** 다시 유나와 소미가 머물던 간이 쉘터 내부. 유나가 허름한 난로에 나뭇조각을 넣고 불을 지피고 있다. 작은 불꽃이 실내를 희미하게 밝힌다.
**소미:**
(활짝 웃으며)
언니! 언니가 최고야!
**장면:** 소미가 통조림 뚜껑을 따는 유나의 옆에 바싹 붙어 앉아 행복한 표정으로 유나를 올려다본다. 유나는 작은 플라스틱 접시에 통조림 속 콩을 덜어 소미에게 건넨다.
**유나:**
(옅은 미소)
조금밖에 없어. 아껴 먹어.
**소미:**
응! 아껴 먹을게!
**장면:** 소미가 조심스럽게 콩을 포크로 찍어 먹는다. 그 작은 콩 한 알에도 세상 모든 행복이 담겨 있는 듯한 표정이다. 유나는 그런 소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내레이션 (유나):**
언제나 그랬다.
이 아이의 미소만이,
내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장면:** 유나는 소미가 준 물을 마시고, 건빵을 조금 뜯어 먹는다. 퍽퍽한 건빵이 목에 걸리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떤 진수성찬보다 달콤하게 느껴진다. 창문 밖으로는 잿빛 하늘에서 눈발이 더 굵게 쏟아지고 있다.
**소미:**
언니, 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혹시… 위험한 일 있었어?
**장면:** 소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유나를 올려다본다. 유나는 미소 지으며 소미의 볼을 가볍게 꼬집는다.
**유나:**
아니야, 괜찮아.
언니는 강하잖아?
소미를 지킬 수 있을 만큼.
**소미:**
(고개를 끄덕이며)
응! 우리 언니는 마법소녀니까!
**장면:** 유나의 표정이 잠시 복잡해진다. ‘마법소녀’. 한때는 동화 속 이야기였던 그 단어가, 이제는 이 잔혹한 현실에서 자신을 묶어두는 족쇄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소미의 눈빛을 보면, 그 족쇄가 다시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
**내레이션 (유나):**
마법소녀.
그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답은 알 수 없지만,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선…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장면:** 밤이 깊어지고, 작은 난로의 불꽃마저 점차 사그라든다. 소미는 유나의 품에 안겨 스르륵 잠이 든다. 유나는 잠든 소미를 꼭 끌어안고, 차가운 벽에 기대앉는다. 창밖의 눈발은 폭설로 변해 세상을 하얗게 덮어가고 있다.
**유나 (내레이션):**
첫 서리가 내리고,
첫눈이 온다.
이 혹독한 겨울을,
우리는 또다시 살아낼 수 있을까.
**장면:** 유나가 잠든 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멀리 폐허가 된 도시를 바라본다. 그녀의 눈빛은 비장하고도 애처롭다. 마법봉의 금이 간 보석이 달빛처럼 희미한 빛을 내며 반짝인다.
**내레이션 (유나):**
어둠 속에서 빛을 잃지 않는 한,
희망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아주 작을지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