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잿빛 새벽

낡은 장화가 으깨진 콘크리트 조각 위를 삐걱이며 미끄러졌다. 사방을 집어삼킨 잿빛 안개는 한 치 앞도 허락하지 않는 끈질긴 장막처럼 세상의 모든 윤곽을 지워버렸다. 강지후는 손에 든 녹슨 파이프를 고쳐 쥐었다. 축축하고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마비된 손끝에 미약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매일이 그랬다. 동이 트는지조차 알 수 없는 잿빛 새벽이 찾아오면, 지후는 폐허가 된 도시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목적은 언제나 같았다. 살아남기 위한 아주 사소한 것들. 한 조각의 썩지 않은 통조림, 반 모금의 오염되지 않은 물, 어쩌면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그것’들을 잠시나마 막아줄 희미한 조명탄 하나.

오늘 그의 목표는 옛날 지도를 통해 ‘슈퍼마켓’이라 불렸던 건물이었다. 한때 온갖 먹을거리와 생활용품으로 가득했을 그곳은 이제 뼈대만 남은 채 앙상한 유령처럼 서 있었다. 그 안은 어떨지 알 수 없었다. 지난번 ‘도서관’이라 불리던 곳에선 이상한 기호들이 벽을 가득 메운 채 그를 맞았고, 불규칙한 속도로 깜빡이던 비상등 아래에서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형상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그는 간신히 살아 돌아왔지만, 그날 이후 매일 밤 꿈속에서 그 기호들이 살아 움직이며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했다.

쉬이이익…

둔탁한 마찰음이 안개 속에서 흘러나왔다. 지후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여 낡은 버스 잔해 뒤에 숨었다. 심장이 귀청이 찢어질 듯 울렸다. 파이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것은 이 도시를 지배하는 알 수 없는 존재 중 하나일 터였다. 때로는 거대한 촉수가, 때로는 기이한 관절로 뒤틀린 인간 형상이, 때로는 그림자처럼 희미한 무언가가 안개 속을 유영하며 먹잇감을 찾았다. 그들에게 인간은 그저 움직이는 고깃덩어리일 뿐이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사방은 다시 정적에 잠겼다. 하지만 지후는 알고 있었다. 이 고요함이야말로 가장 잔혹한 함정이라는 것을.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압박감은 살갗을 찢고 들어와 정신마저 좀먹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착각이었을지도 몰랐다. 아니, 착각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젠장….”

쉰 목소리가 안개 속으로 흩어졌다. 지후는 조심스럽게 버스 잔해를 벗어나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슈퍼마켓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부서진 아스팔트 위를 덮은 것은 끈적하고 기괴한 균류들이었다. 보라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균류들은 희미하게 빛을 발하며 길을 밝히는 듯했지만, 동시에 썩은 살덩이 같은 역겨운 냄새를 풍겼다. 이 균류들이 세상에 퍼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새로운 생명이라며 환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환호는 곧 비명으로 바뀌었다. 균류는 땅을 오염시키고, 물을 독으로 물들이고, 심지어는 공기마저도 뒤틀린 형태로 만들었다.

슈퍼마켓 건물 앞에 섰을 때, 지후는 잠시 망설였다. 거대한 간판은 반쯤 부서져 땅에 박혀 있었고, 유리창은 모두 깨져나가 검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마치 이빨 빠진 거인의 입 같았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나 완벽한 침묵이었다.

“하아….”

작게 한숨을 쉬며 지후는 비어있는 어깨에 메고 있던 낡은 배낭을 고쳐 맸다. 그는 익숙하게 배낭에서 손전등을 꺼내 불을 켰다. 희미한 불빛이 균열이 가득한 바닥을 비췄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내부는 예상했던 대로 처참했다. 진열대는 모두 쓰러져 있었고, 상품들은 바닥에 나뒹굴며 부패하고 있었다. 지후의 손전등 불빛이 벽을 스치자, 붉고 검은색의 얼룩들이 드러났다. 피의 흔적이었다. 그것도 사람의 피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짙고 기괴한 색이었다.

지후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핏자국은 바닥을 따라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어쩌면 아직 이 안에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며칠째 제대로 된 식량은 입에 대지도 못했다. 그는 굶어 죽거나, 저 알 수 없는 존재들에게 잡아먹히거나, 혹은 미쳐버리거나, 셋 중 하나의 결말을 맞이할 운명이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굶어 죽는 쪽이 가장 먼저 찾아올 터였다.

그는 파이프를 단단히 움켜쥔 채, 핏자국을 따라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 거대한 공간 안에서, 그의 발소리만이 메아리치며 묘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어디선가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옅은 비린내가 풍겨왔다.

“누구… 없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대답은 없었다. 다만,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지후의 존재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소름 끼치는 시선이 느껴질 뿐이었다. 기분 탓이기를 바랐지만,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무심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손전등 불빛이 닿는 곳에는 검게 그을린 구멍들이 뻥뻥 뚫려 있었다. 아마도 옛 사람들이 사용하던 ‘조명’이었을 것이다. 그 구멍들 사이로, 거대한 거미줄 같은 것이 뒤엉켜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미줄이 아니었다. 섬뜩할 정도로 매끄러운 끈적한 물질들이었고, 그 사이사이에 뭔지 알 수 없는 조그만 알갱이들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후의 시야에 뭔가가 잡혔다.

쓰러진 진열대 사이, 바닥에 뒹굴던 상품 더미 속에서 반짝이는 금속성 광채.

“이건….”

지후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것은 찌그러진 통조림 캔 몇 개였다. 다행히 겉으로 보기에는 내용물이 새거나 오염된 것 같지는 않았다. 캔을 집어 들자, 예상치 못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묵직하고 단단했다. 적어도 일주일은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그는 황급히 캔들을 배낭에 집어넣었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이상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렇게 쉽게 얻다니. 너무나도 쉽게. 이 황폐한 세계에서는 어떤 대가 없는 행운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쉬이이익!

아까 들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가까운 마찰음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지후는 몸을 휙 돌렸다. 손전등 불빛이 빠르게 회전하며 어둠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인간의 형상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뒤틀린, 기괴한 그림자였다. 그것은 팔다리가 불균형하게 늘어나 있었고, 머리라고 부를 만한 곳에는 입만 찢어져 섬뜩한 웃음을 짓는 듯했다. 안개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그것은 그림자처럼 희미하면서도, 동시에 비현실적인 존재감을 내뿜었다. 그 몸체 곳곳에는 아까 천장에서 본 것과 같은 끈적한 물질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크으으….”

그것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라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수백 개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지후는 순간 얼어붙었다. 이성은 도망치라고 외쳤지만, 몸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공포가 온몸의 신경을 마비시켰다.

그림자가 지후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다가왔다. 이상하게도 바닥에 발자국조차 남지 않았다. 마치 바닥을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존재였다.

지후는 온몸의 힘을 쥐어짜 간신히 발을 떼었다. 도망쳐야 했다. 살아야 했다.

“젠장… 젠장!”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슈퍼마켓 내부를 가로질러 출구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는 마치 그의 뒤통수에 달라붙은 채 속삭이는 듯했다. ‘달아날 수 없을 것이다. 너의 몸은 우리의 먹이이며, 너의 정신은 우리의 놀이터가 될지니.’

넘어진 진열대를 뛰어넘고, 부패한 상품들을 밟으며 질주했다. 배낭 속의 통조림 캔들이 몸을 흔들 때마다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마치 추격자의 위치를 알려주는 듯하여 더욱 공포스러웠다.

마침내, 지후의 눈앞에 부서진 슈퍼마켓 입구가 보였다. 희미한 잿빛 안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문턱을 넘었다. 몸이 외부의 차가운 공기와 만나자, 간신히 호흡을 되찾을 수 있었다. 뒤돌아볼 용기조차 없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렸다. 안개 속으로, 황폐한 도시 속으로, 알 수 없는 운명 속으로.

그는 달리고 또 달렸다. 잿빛 새벽의 장막 아래, 그가 짊어진 것은 낡은 배낭과 통조림 몇 개, 그리고 매일 밤 그의 정신을 갉아먹는 악몽 같은 환영뿐이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곧 더 깊은 공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오늘 밤도, 지후는 잠들 수 없을 터였다. 그의 귀에 여전히 그 그림자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 비명은 이제 그의 귓속이 아니라, 그의 영혼 속에 깊이 새겨진 것일지도 몰랐다.

잿빛 안개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 안개 속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잠들어 있거나, 혹은 깨어나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지후는 그저 그들 중 하나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발길을 재촉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