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잿빛 먼지가 폐허 구역 7번을 감싸고 있었다. 한때 하늘을 찌르던 빌딩들은 이제 뼈대만 앙상한 유령처럼 서 있었고, 그 그림자는 이 구역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음산하게 드리워졌다. 살아남은 이들은 그 잔해 속에서 쥐처럼 기어 다니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현수는 익숙하게 녹슨 철근 더미 위를 넘어섰다. 그의 등에는 찢어진 천으로 덮인 배낭이 무겁게 매달려 있었다. 안에는 오늘 아침 겨우 찾아낸 깨진 유리 조각 몇 개와 찌그러진 깡통들이 들어있었다. 이걸 내다 팔아도 오늘의 식량을 사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하늘은 언제나 흐렸다. 제국이 ‘황금의 새벽’이라 부르는 대재앙 이후, 푸른 하늘은 전설 속 이야기가 되었다. 그 대신 강철 회색의 먹구름이 항시 지상을 덮었고, 그 위로 거대한 제국의 감시선들이 그림자처럼 떠다녔다. 그들은 완벽하게 정돈된 제국의 수도, ‘찬란의 도시’에서 이 잿빛 구역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었다. 폐허 구역의 사람들은 그 감시선들을 ‘눈’이라고 불렀다. 제국의 눈.

“젠장,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없네.”

현수가 거친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목은 찢어질 듯 건조했고, 발은 낡은 신발 속에서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저 멀리, 한때 번화했을 상가의 잔해 속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현수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여 폐허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곳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위험했다. 동족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었다. 배고픔은 사람을 짐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다가오는 인기척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둔탁한 금속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제국 병사들이었다. 그들의 강철 부츠는 폐허의 잔해들을 짓밟으며 경쾌하다 못해 오만한 소리를 냈다. 현수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들의 검은 제복과 번쩍이는 무기는 이 잿빛 세상에서 유일하게 깨끗하고 위협적인 존재였다.

“이봐! 거기!”

병사들의 거친 목소리가 폐허에 울려 퍼졌다. 현수는 숨을 죽였다. 그들은 현수를 본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대신 그들의 시선은 쓰러져 가는 건물 벽에 기대어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노파에게 향해 있었다. 노파의 쭈글쭈글한 얼굴에는 이 폐허 구역의 모든 고통이 새겨져 있는 듯했다. 그녀의 곁에는 작은 낡은 보따리가 놓여 있었다. 현수는 알고 있었다. 그 안에는 노파가 며칠을 굶어 모은 귀한 식량, 말라비틀어진 빵 조각 몇 개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진흙뿌리’가 들어있을 터였다.

“이것 봐라, 불법 식량 소지자에 무허가 거주자군. 잡동사니 구역의 쓰레기 같은 것들이 감히 제국의 식량 배급법을 어겨?”

병사 중 한 명이 킬킬거리며 노파의 보따리를 발로 찼다. 낡은 보따리가 땅에 나뒹굴었고, 그 안의 내용물들이 흙먼지 위로 흩어졌다. 노파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고, 희미한 눈으로 자신의 빵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주름진 눈물이 고였다.

“이런… 이런 제기랄… 이건 내 전부란다…!” 노파가 떨리는 손으로 빵 조각을 주우려 했다.

하지만 병사는 그녀의 손을 발로 짓밟았다.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현수의 귀에 박혔다. 노파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폐허 속으로 스며들었다.

“감히 제국의 권위에 도전하려 드는가? 늙은이가 제정신이 아니군. 이 쓰레기들을 치워버려!”

또 다른 병사가 비웃으며 노파의 뺨을 후려쳤다. 노파는 힘없이 쓰러졌다. 병사들은 흩어진 빵 조각들을 발로 뭉개며 깔깔거렸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현수의 귓속을 파고들어, 차가운 분노로 변해 심장을 얼어붙게 했다. 현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이 광경이 너무나 익숙하고, 너무나 무력했으며, 너무나 역겨웠다.

이것이 제국의 방식이었다. 통제, 압제, 그리고 무자비한 약탈. 모든 것이 ‘황금의 새벽’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제국이 질서와 번영을 가져왔다고 그들은 선전했지만, 폐허 구역의 삶은 지옥과 다름없었다.

병사들은 노파를 끌고 갔다. 그녀의 흐느낌이 점점 멀어지다 이내 끊겼다. 현수는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분노와 절망으로 이글거렸다. 뭉개진 빵 조각과 진흙 뿌리가 밟힌 흙먼지 위에 널려 있었다. 현수는 그것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날 밤, 현수는 폐허 구역의 깊숙한 지하, 제국의 감시선조차 닿지 않는 낡은 하수관 끝에서 몇몇 이들과 만났다. 어둠 속에 모인 이들은 모두 현수와 같은 얼굴이었다. 지치고, 굶주리고, 그리고 분노에 찬 얼굴.

“오늘도 제국 병사들이 폐허 구역 3번에서 한 노파를 끌고 갔습니다. 식량을 빼앗고, 무자비하게 폭행했습니다.” 현수가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처 가라앉지 못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지.” 늙은 현자라 불리는 ‘바람’이 한숨을 쉬었다. 그의 얼굴은 주름졌지만, 눈빛만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살아있었다. “제국은 이 모든 것을 ‘재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그들의 배를 채우기 위한 우리의 피와 땀 뿐이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별’이라는 이름의 젊은 여인이 날카롭게 말했다. 그녀의 주먹은 분노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가축처럼 끌려가면서 이 모든 것을 참고 있을 수 없어요.”

“우리가 뭘 할 수 있다고?” 한 남자가 비관적으로 중얼거렸다. “우린 무기도 없고, 숫자도 적고, 훈련도 받지 못한 평민들일 뿐이다. 제국의 강철 병사들에게 개미 한 마리만도 못할 거야.”

그의 말에 침묵이 흘렀다. 그들의 현실은 너무나 냉혹했다. 제국의 힘은 압도적이었고, 그들은 너무나 약했다.

현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개미 한 마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개미들이 모이면, 거대한 바위도 갉아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구역에, 이 도시 곳곳에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의 절망과 분노를 모으면, 우리는 충분히 ‘들불’이 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 희미한 불꽃이 어둠 속에서 피어올랐다.

바람이 현수를 뚫어지라 응시했다. “들불이라… 좋다. 그 불꽃을 모으자. 우리는 조용히, 그리고 은밀하게 움직일 것이다. 제국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의 발밑에서부터.”

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도, 훈련도 없다고 했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진실이 있습니다. 제국이 감추려는 진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겁니다.”

현수는 어둠 속에 모인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 속에서 절망은 희미해지고, 그 대신 새로운 결의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폐허 구역 7번의 지하 깊숙한 곳,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은밀한 공간에서, 거대한 제국에 맞설 작은 들불이 조용히 피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첫 걸음은, 언젠가 제국의 강철 심장을 녹일 뜨거운 불꽃의 시작이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