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두 시, 고층 아파트의 창밖은 희미한 도시의 잔광으로 가득했다. 민준은 새삼 제 방이 얼마나 고요한지 깨달았다. 방음이 완벽한 신축 아파트, 27층. 아래로는 복잡한 도시의 심장이 끓고 있지만, 이 안은 마치 심해처럼 정적만이 존재했다. 그는 방금 벗어 던진 재킷을 의자 등받이에 걸고,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았다. 피곤한 하루였다. 늘 그렇듯이.
침대에 몸을 뉘었다. 천장을 응시했다. 무채색의 벽지, 흔들림 없는 형광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질서 정연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똑.”
아주 작은 소리. 민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잠시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낡은 집에서나 들릴 법한 나무의 수축 팽창 소리였겠거니,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똑. 똑.”
이번엔 더 선명했다. 그의 심장이 움찔했다. 어디선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 민준은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방에는 시계가 없었다. 벽에서 나는 소리인가? 아니, 조금 더 높았다.
“똑. 똑. 똑.”
천장에서 나는 소리였다. 정확히는 형광등 커버 안에서. 민준은 의아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설마 벌레라도 들어갔나? 혹은 전등이 나갈 징조인가? 그는 일어나 형광등 스위치를 몇 번 껐다 켰다 해봤지만, 불빛은 여전히 멀쩡했다.
“젠장, 무슨 소리지?”
작게 중얼거렸다. 소리는 멈췄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침대에 다시 앉았다. 잠시 후, 주방 쪽에서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민준은 얼어붙었다. 잘못 들었을 리 없었다. 분명 냉장고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발소리를 죽이며 주방으로 향했다. 거실의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 주방은 고요했다. 냉장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무것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
“누가 장난치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이 고층 아파트에, 그것도 그의 집안에 누군가 침입했다면 경비 시스템이 울렸을 것이다.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민준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온 신경이 곤두서서 작은 소리 하나에도 반응했다. 밤새도록,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다음날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겨우 일어났다. 어제 일은 그저 과로로 인한 환청이었을 거라고 치부하기로 했다. 출근 준비를 위해 씻고 나왔는데, 식탁 위에 있어야 할 어제 먹다 남은 빵이 보이지 않았다.
“이거 어디 갔지?”
그는 분명 랩으로 씌워서 식탁에 두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굶은 채로 집을 나섰다.
밤이 되어 돌아오자마자, 그는 어제 잃어버렸던 빵 봉지를 식탁 위에서 발견했다. 하지만 빵은 더 이상 랩에 싸여 있지 않았다. 봉지 안에는 딱딱하게 굳은 빵 조각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뭐야, 이거. 내가 어제 제대로 안 치웠나?”
아니, 그는 깔끔한 성격이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게 무심하게 음식물을 방치할 리 없었다. 그는 집안을 꼼꼼히 살폈다. 모든 문은 닫혀 있었고, 창문도 잠겨 있었다. 침입의 흔적은 없었다.
그날 밤, 사태는 더욱 심해졌다. 민준이 샤워를 하는 동안, 거실에서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쨍그랑!” 하는 굉음에 그는 비명을 지르며 샤워기를 껐다. 심장이 발밑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누구야! 거기 누구 있어?!”
그는 벌거벗은 채로 욕실 문을 벌컥 열고 거실을 향해 소리쳤다. 스탠드 불빛 아래, 식탁 위에는 그가 아끼던 세라믹 접시가 산산조각 나 있었다. 조각들은 마치 누군가 던진 것처럼 넓게 퍼져 있었다.
민준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건 명백히 폴터가이스트 현상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말도 안 돼.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잖아!
그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아니면 경비실에? 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제 집에서 접시가 저절로 깨졌어요”라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게 뻔했다.
그는 겨우 진정하고 옷을 입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밤을 꼬박 새웠다. 접시 조각들은 그대로 두었다.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새벽 두 시. 부엌 싱크대에서 물이 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콸콸콸.” 민준은 몸을 움츠렸다. 감히 부엌 쪽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물이 끊기는 소리와 함께 수도꼭지에서 “뚝. 뚝. 뚝.” 하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심장 박동처럼.
“하지 마… 제발…”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두려움에 온몸이 마비되는 듯했다. 그는 휴대폰 손전등을 켜서 부엌 쪽을 비췄다. 수도꼭지는 닫혀 있었다. 하지만 물방울 소리는 계속됐다. 환청인가?
그때,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던 그의 낡은 스피커에서 “지지직” 하는 잡음과 함께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딨니…?”
민준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목소리는 낮고 허스키했으며, 마치 낡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처럼 뭉개져 있었다. 그는 손전등을 스피커로 향했다. 스피커의 전원은 분명 꺼져 있었다.
“거기… 어딨어…?”
목소리는 더욱 선명해졌다. 이번에는 스피커가 아니라, 마치 공기 중에서 직접 울리는 듯했다. 민준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구야! 대체 누구냐고! 제발 내 눈앞에 나타나!”
그는 발버둥 치듯 소리쳤다. 그러자 주변의 모든 스탠드와 불빛들이 일제히 “팟!” 하는 소리와 함께 꺼졌다. 순식간에 아파트는 암흑에 잠겼다. 밖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도시의 불빛만이 거실을 간신히 비추고 있었다.
“찾았다…”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렸다. 차가운 공기가 그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누군가 그의 어깨 위에 고개를 파묻고 속삭이는 것처럼. 민준은 얼어붙어 뒤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등골이 오싹했다.
“여기… 있었구나…”
그의 어깨 위에 차가운 손가락이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틀며 앞으로 내달렸다. 어둠 속에서 거실 테이블에 부딪혔고, 접시 조각들이 발에 밟히며 “바스락” 하는 소리를 냈다. 발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현관문으로,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는 비틀거리며 현관문으로 향했다. 손잡이를 잡았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잠겨 있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당겼지만, 마치 무거운 바위라도 놓여 있는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 돼… 열려… 열어줘!”
그는 문에 매달려 절규했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차가운 공기가 다시 그의 등을 덮쳤다. 이번에는 더 강하게, 온몸을 휘감는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
“어딜 가니… 이제… 시작인데…”
목소리가 그의 귀에 박혔다. 섬뜩하게도, 그 목소리에는 어딘가 슬픈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앞에 한 장면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낡은 아파트, 깨진 창문, 그리고 어둠 속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한 여인의 형상…
민준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환각인가, 아니면 이 아파트에 깃든 어떤 기억인가? 그의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날 두고 가면… 안 돼…”
그의 어깨를 잡는 손길이 더욱 강해졌다. 민준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더 이상 비물질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뼈마디가 느껴지는, 차갑고 단단한 손이었다.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싫어! 저리 가! 난 아무것도 몰라!”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이 존재가 왜 자신에게 나타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이 아파트에 이사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평범하고 고요한 삶을 원했을 뿐이었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아까 깨진 접시 조각들이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이익…” 마치 깨진 유리 위를 누군가 맨발로 걷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그의 눈앞에는 어둠과 환영이, 등 뒤에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차가운 손길이.
민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체념과 절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이 아파트에서, 이 존재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현관문 너머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이, 그의 처절한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 위로, 또 다른 어둡고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의 아파트는 더 이상 안전한 안식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새로운 감옥이었다.
그리고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절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