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펑크 독립적인 단편 소설

회색빛 하늘 아래, 금빛 황동과 검붉은 강철로 지어진 도시 ‘엔진하트’는 매 순간 거대한 심장처럼 고동쳤다. 거대한 증기기관들이 내뿜는 흰 연기가 도시를 덮었고, 톱니바퀴들이 쉼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울려 퍼졌다. 하늘에는 거대한 비행선들이 낮게 깔린 구름을 뚫고 지나갔고, 지상에는 자율 구동 증기 마차가 길게 줄을 이었다.

이진우는 엔진하트의 심장부, 정확히는 ‘탑골 빌딩’ 707호에 살았다. 그의 아파트는 여느 현대식 주거 공간과 다를 바 없었지만, 모든 가전제품과 실내 장식은 증기압과 미세한 태엽 장치, 그리고 에테르 전력을 이용해 구동되는 방식이었다. 은은한 황동빛 조명 아래, 그는 언제나 작은 태엽 시계의 규칙적인 똑딱임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끝냈다.

“젠장, 또 늦었잖아!”

진우는 아침 8시, 태엽식 알람 시계의 요란한 종소리에 눈을 떴다. 언제나처럼 침대 머리맡에 놓인 작은 자동 태엽장치가 그의 잠옷을 잡아당겨 몸을 일으켰고, 그는 비몽사몽간에 욕실로 향했다. 자동으로 온수를 공급하는 증기식 샤워기는 늘 그 시간, 그 온도에 맞춰 예열되어 있었다. 익숙한 루틴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어제 분명히 단단히 잠가 두었던 거실의 자동 차양막이 스르륵, 소리 없이 열려 있었다. 아침 햇살이 황동빛 바닥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뭐야, 내가 안 잠갔나?”

진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계 오작동이라기엔 너무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게다가 차양막은 작동 스위치를 눌러야만 열리는 방식이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가끔 이런 사소한 오류쯤이야.

사건은 그날 밤 다시 일어났다. 진우는 퇴근 후, 작은 증기압식 주전자에 물을 올려 차를 마시려 했다. 주전자의 밸브를 돌리고 가열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주전자 안에서 김이 피어오르기도 전에, 기이하게도 ‘쉬이이익-’ 하는 증기 소리가 울렸다. 마치 주전자가 스스로 가열되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는 깜짝 놀라 주전자를 바라봤지만, 밸브는 아직 완전히 잠겨 있었고, 가열 스위치는 빨간불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환청인가…?”

진우는 피곤함에 눈을 비볐다. 야근 후의 스트레스가 그를 예민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애써 무시하며 다시 주전자의 밸브를 열고 스위치를 눌렀다.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증기가 끓어오르며 차가운 밤공기를 데웠다.

며칠이 흘렀다. 기묘한 현상은 점점 더 잦아지고 대담해졌다.

어느 날 새벽, 진우는 거실에서 들리는 ‘똑딱, 똑딱’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보니, 거실 벽에 걸린, 태엽이 풀린 지 한참 되어 멈춰 있던 조그만 장식용 시계였다. 그 시계의 톱니바퀴가 홀로 힘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강제로 태엽을 감은 것처럼.

“이게… 왜 움직이지?”

진우는 손을 뻗어 시계를 만져보았다. 멈췄다. 그리고 손을 떼자마자 다시 미약하게 ‘똑딱, 똑딱’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소름이 돋아 시계를 벽에서 떼어내 서랍에 처박았다.

다음 날은 더 심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식탁 위에 놓아두었던 작은 자동 와인 오프너가 혼자 ‘덜컹’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오프너의 나선형 송곳이 허공을 향해 뱅글뱅글 돌았고, 그 작은 기계 안의 톱니들이 미친 듯이 엮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진우는 놀라 오프너를 잡아 눌렀다. 오프너는 그의 손아귀 안에서 잠시 발버둥 치는 듯하다가 멈췄다. 그의 손에는 기름때가 묻어 나왔다.

“고장인가? 아니, 이건 좀 심하잖아.”

진우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기계 오작동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그의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기계들을 조종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그는 퇴근 후, 아파트의 자동화 시스템을 점검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다. 모든 에테르 회로는 정상이었고, 증기압은 일정했으며, 톱니바퀴들의 마모도 역시 허용 범위 내였다. 결함은 없었다.

밤이 깊어지고, 진우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그는 잠이 오지 않았다.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기계음들이 마치 그의 신경을 긁는 듯했다. 그때,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작은 자명종 시계의 톱니바퀴가 ‘끽, 끽’ 하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시계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지만, 안에서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소리는 점차 커졌다. 마치 그 시계 안에 뭔가 살아있는 것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러더니 시계가 갑자기 ‘달그락!’ 소리를 내며 협탁 위에서 옆으로 넘어졌다. 그리고는 마치 바닥에 닿는 것을 피하려는 듯, 공중에서 두어 번 불규칙하게 흔들리더니, 기어이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젠장!”

진우는 벌떡 일어났다. 등골이 오싹했다. 이건 명백한 물리적 현상이었다. 그는 허리를 굽혀 시계를 집어 들었다. 시계는 아무 이상 없었다.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진동과 소리는 분명히 시계가 스스로 움직인 것이었다.

그날 이후, 진우는 아파트에서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의 자율 청소 로봇, 작은 깡통 모양의 ‘모모’는 매번 정해진 시간에만 작동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밤중에 거실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지지직’ 하는 모터 소리와 함께 어두운 거실을 떠도는 모모의 모습은 섬뜩했다. 더 기괴한 것은, 모모가 청소를 하지 않고, 그저 의미 없이 진우의 발치 주변을 맴돌거나, 멈춰 서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삐빅’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마치 모모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교감하고 있는 것처럼.

“모모, 멈춰!”

진우가 소리치자, 모모는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바닥을 맴돌았다. 진우는 모모를 강제로 끄고 충전 스테이션에 넣어두었다.

며칠 뒤, 그는 샤워실에서 ‘끼이이익’ 하는 소리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경험을 했다. 증기압식 수도꼭지가 저절로 돌아가며 차가운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느리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진우는 수도꼭지를 잠그려 했지만, 수도꼭지는 그의 손아귀 안에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거부하듯 꿈틀거렸다. 마치 누군가 그 힘을 빌려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온 힘을 다해 잠갔지만, 손이 덜덜 떨렸다.

이제 진우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침대에 누우면 벽 속에서, 바닥 아래에서, 그리고 천장 위에서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증기가 새는 소리,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것은 환청이 아니었다. 때로는 그의 침대 아래에서 ‘달그락, 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는 진우가 침대에서 내려오면 멈추는 식이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어.”

진우는 결심했다. 그는 도시 외곽의 낡은 건물에 위치한 ‘에테르 연구소’를 찾아갔다. 이 연구소는 도시의 기묘한 현상들을 연구하고 해결해주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늙고 기이한 인상의 소장, 아서 몽고메리가 그를 맞이했다. 아서의 안경은 복잡한 톱니바퀴 장치로 되어 있었고, 그의 허리춤에는 작은 증기식 측정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기계들이 자꾸 멋대로 움직인다는 거군요? 흥미롭군요. 707호실이라…”

아서 소장은 그의 복잡한 안경을 매만지며 진우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단순한 오작동이 아닙니다. 마치 누가 조종하는 것 같아요. 어떤 때는… 저를 노려보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진우의 목소리는 떨렸다.

아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폴터가이스트 현상과는 다르군요. 정신 에너지가 직접 물질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메커니즘을 조종한다라… 이건 ‘기계령(械靈)’이거나, 아니면 강력한 ‘잔류 에테르 에너지’가 주변의 기계 장치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일 수 있습니다.”

“기계령이요?”

“네. 특정 기계에 깊은 애착을 가진 영혼이나,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 장소의 에테르 에너지가 주변의 기계들과 공명하며 발생하는 현상이죠. 특히 당신의 아파트처럼 에테르 전력과 정교한 기계장치로 가득 찬 공간에서는 더욱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서는 다음 날 진우의 아파트로 방문하기로 했다. 진우는 그 말을 듣고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날 밤, 진우는 아서 소장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식탁에 앉아 있었다. 온 아파트가 너무나 조용했다. 오히려 그 조용함이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는 작은 에테르 램프의 불빛 아래에서 멍하니 벽을 응시했다. 그때였다.

주방 쪽에서 ‘드르륵, 덜그럭!’ 하는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방의 찬장 문이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진우가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오래된 증기식 믹서기가 스스로 찬장 밖으로 굴러 나왔다. 믹서기는 식탁 위에 올라서더니, ‘위이잉-’ 하는 금속성 마찰음을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믹서기의 칼날이 텅 빈 내부에서 미친 듯이 회전했다.

“흐읍!”

진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믹서기는 점점 더 격렬하게 회전했고, 그 소리는 귀를 찢을 듯했다. 믹서기 안의 톱니바퀴들이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거실 벽에 걸린 복잡한 증기압식 시계의 추들이 일제히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계의 톱니바퀴들은 ‘그르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과부하가 걸린 듯 돌아갔고, 유리창이 ‘파직’ 소리를 내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파트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계 괴물처럼 울부짖는 것 같았다. 벽에 박힌 리벳들이 하나둘 튕겨 나가고, 천장의 에테르 램프가 ‘펑!’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어둠 속에서 믹서기의 칼날만 섬뜩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가야 해…!”

진우는 공포에 질려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자동 잠금장치의 복잡한 톱니바퀴들이 ‘철커덕, 철커덕’ 하는 소리를 내며 스스로 맞물려 돌아가, 문을 안쪽에서 잠그고 있었다. 손잡이를 잡아 돌려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열려! 열라고!”

진우는 문을 두들겼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뒤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지직… 삐빅…’.

뒤를 돌아보자, 그의 청소 로봇 모모가 느릿느릿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모모의 몸체에서는 희미한 에테르 불빛이 깜빡였고, 깡통 로봇의 머리 부분에 달린 작은 카메라 렌즈가 진우를 응시하는 듯했다. 모모는 진우의 발치에 멈춰 서더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삐빅’ 소리를 내며 천천히 회전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모모가 감지하는 것처럼.

진우는 등 뒤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파트 전체가 자신을 가두고 있는 듯했다. 믹서기의 칼날 소리는 여전히 귀청을 때렸고, 벽시계의 톱니바퀴는 비명처럼 울렸다. 그리고 모모는 그저, 그 텅 빈 공간을 향해 삐빅, 삐빅… 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진우는 문득 천장을 올려다봤다. 불 꺼진 에테르 램프의 잔해 사이로, 오래된 환풍기 구멍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안에서, 아주 작고 낡은 톱니바퀴 하나가 ‘끼이이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모든 소동의 근원인 것처럼 보였다. 너무나 작고, 너무나 낡아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법한, 그저 벽 속에 박혀있던 잊힌 부품.

그 순간, 진우의 귓가에 낡은 기계가 마찰하는 듯한, 거칠고 삐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왜… 이제야… 날 보는 거니…

그것은 환청이었다. 아니, 어쩌면 환청이 아닐지도 모른다. 진우는 공포에 질린 채, 천장의 작은 톱니바퀴를 바라보았다. 아파트의 모든 기계가 한꺼번에 멈췄다. 믹서기의 칼날이 서서히 멈췄고, 벽시계의 추도 움직임을 멈췄다. 모모도 ‘삐빅’ 소리를 멈추고 고정되었다.

완벽한 정적.

진우는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그때, 천장의 작은 톱니바퀴가 ‘끽’ 하고 마지막 소리를 내더니, 정지했다. 그 순간, 현관문의 잠금장치가 ‘철컥’ 소리를 내며 풀렸다. 문이 스르륵, 하고 열렸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진우의 얼굴을 스쳤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아파트를 뛰쳐나갔다. 뒤에서 문이 다시 스르륵 닫히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계단을 미친 듯이 내려가면서,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천장의 작은 톱니바퀴와, 낡은 기계가 마찰하는 듯한 그 목소리만이 맴돌았다.

“왜… 이제야… 날 보는 거니…”

탑골 빌딩 707호의 황동빛 문은 굳게 닫혔고, 그 안의 모든 기계들은 다시 완벽한 침묵 속에 잠겼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진우는 알고 있었다. 707호는 단순히 고장 난 기계들로 가득 찬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그 어떤 영혼보다도 끈질긴, 기계적인 생명체가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계적인 영혼은, 어쩌면 영원히,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다시 낡은 톱니바퀴에 관심을 가져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