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새벽 틈새] 1화. 사라진 온기

이준은 축 늘어진 몸을 소파에 던졌다. 시계는 이미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으레 그랬듯, 퇴근 후 찾아오는 지독한 피로감은 그의 온몸을 짓눌렀다. 빌어먹을 야근이 오늘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푹신한 쿠션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자, 아파트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들이 어지러운 잔상으로 남았다. 20층 높이의 이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야경은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제법 근사했지만, 이제는 그저 늘 똑같은 풍경일 뿐이었다.

“하아….”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배가 고팠지만, 몸을 움직일 기력조차 없었다. 겨우 손을 뻗어 탁자 위에 놓인 리모컨을 더듬었다. 손끝에 잡히는 차가운 플라스틱의 감촉. 그는 눈을 뜨지도 않은 채 더듬더듬 전원 버튼을 눌렀다. 티브이 화면이 번쩍이며 거실을 밝힌다. 의미 없는 뉴스 보도와 함께 저음의 앵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평소라면 단숨에 채널을 돌렸겠지만, 오늘은 그마저도 귀찮았다.

잠시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었을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리모컨은 탁자 정중앙에 두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탁자 끝, 거의 떨어질 듯한 위치에 위태롭게 걸쳐져 있었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가?*

이준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리모컨을 다시 제자리로 옮겨놓았다. 피곤하면 별 이상한 착각을 다 한다니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응?”

닫힌 창문 틈새로 찬 기운이 스며드는 듯한 서늘함이 그의 뺨을 스쳤다. 에어컨도 꺼져 있고,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늦은 밤이라 해도 바깥 기온이 급격히 내려갈 리도 없었다. 그는 의아함에 눈을 떴다. 거실의 모든 창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섰다. 유리에 손을 대보았지만, 특별히 찬 기운이 느껴지는 곳은 없었다.

*뭐지? 환절기라 예민해졌나.*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티브이에서는 여전히 재미없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준은 냉장고에 남은 맥주라도 꺼내 마실까 싶어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달그락. 덜그럭.

주방 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접시라도 떨어진 건가? 아니면 설거지통에 넣어둔 숟가락이 움직였나?
이준은 조용히 주방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그가 먹다 남긴 컵라면 용기가 놓여있을 뿐, 다른 것은 없었다. 설거지통은 텅 비어 있었고, 식기 건조대에는 가지런히 정리된 그릇들이 놓여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가 중얼거렸다. 어쩌면 위층이나 옆집에서 나는 소리가 울려서 들린 것일 수도 있었다. 낡은 아파트도 아닌데 이런 일이 있나 싶었지만, 워낙 예민한 편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주방에서 냉수를 한 잔 따라 마시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소파에 앉으려는데, 문득 탁자 위에 놓인 휴대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현관 옆에 있는 작은 수납장으로 향했다.

*내 차 키가 어디 갔지?*

늘 퇴근하면 휴대전화 옆에 차 키를 가지런히 놓아두는 습관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머니를 뒤져보고, 코트 주머니를 확인했지만, 어디에도 차 키는 없었다.

“이게 또 왜 이래….”

이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피곤해서 정신이 없는 건지, 아니면 정말 이상한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는 거실 바닥을 샅샅이 뒤졌다. 소파 밑, 탁자 아래, 심지어는 발로 차지 않았나 싶어 바닥을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차 키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한숨을 쉬며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혹시 현관에 걸어두는 작은 바구니에 던져 넣었나 싶어서였다. 그러나 바구니는 텅 비어 있었다. 그가 문득 시선을 위로 올렸다. 현관문 위에 설치된 비디오폰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바로 위, 작은 선반이 하나 있었다. 평소에는 우편물이나 영수증을 올려두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선반 위, 비디오폰 바로 옆에, 그의 차 키가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었다.

“말도 안 돼….”

이준은 경악했다. 저곳은 그의 키가 절대, 단 한 번도 놓인 적 없는 장소였다. 게다가 저 높은 곳에 누가 키를 올려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손을 뻗어 겨우 키를 집어 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그의 손에 닿았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단순한 착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명백한 이질감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키를 든 채 거실로 돌아왔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던 뉴스 소리가 갑자기 너무나 시끄럽게 느껴졌다. 이준은 리모컨을 집어 들어 전원을 껐다. 거실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싸늘한 정적.

바로 그때였다. 주방에서 다시금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또렷하고, 신경을 긁는 소리였다.

달그락! 쨍그랑!

마치 누가 일부러 숟가락과 그릇을 흔드는 듯한 소리. 이준은 본능적으로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주방으로 향하는 복도에 선 채, 주방 안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싱크대도, 식탁도,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달그락, 쨍그랑, 덜그럭!

점점 더 격렬해지는 소리. 이제는 누가 일부러 접시를 들어 흔들고 있는 것 같았다. 공포가 온몸을 감쌌다. 그의 눈은 주방의 모든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식탁 위, 컵라면 용기 옆에 놓여있던 유리잔이었다.
그 유리잔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잡힌 것처럼, 천천히 식탁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스으으윽.

마치 제 발로 걷는 것처럼, 유리잔은 식탁의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이준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광경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툭.

유리잔이 식탁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쳤다.
이준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는 차마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유리잔은 허공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촤르르르륵! 쨍그랑!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유리 파편들.
그와 동시에, 주방 전체를 가득 채우던 알 수 없는 냉기가 그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이준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의 눈에, 차갑고 검은 그림자가 주방 한쪽 벽면에서 스르르 기어 올라오는 것이 비쳤다.

그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심연의 틈새에서 새어 나온 그림자처럼, 아파트의 벽을 타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검고, 형태가 불분명하며, 이준의 공포를 먹고 자라는 것처럼 점점 더 짙어지는 그림자.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속삭였다.

[ …어서 와. ]

그것은 분명,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사람의 목소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오랜 시간 갇혀 있던 무언가가, 이제 막 해방된 듯한, 비릿하고 음침한 속삭임이었다.

이준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고,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어댔다.
그는 얼어붙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현관문 쪽으로 달렸다.
이곳은 더 이상 그의 집이 아니었다.
그는 이 아파트를 벗어나야만 했다.

살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