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련의 그림자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흑운령의 척박한 산길을 밟는 그의 발걸음은 돌멩이 하나 흔들리지 않을 만큼 가벼웠지만, 그가 내뿜는 살기는 주변의 짐승들조차 숨죽이게 할 정도로 짙었다. 절벽 아래 심연에서 기어 올라온 망령처럼, 그는 강호에 다시 발을 들였다. 3년 전, 가장 믿었던 친구의 손에 등 뒤를 찔리고 추락했던 그날의 맹세가 심장을 옥죄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 하나가 번뜩였다. 혁, 그 이름만 떠올려도 피가 거꾸로 솟는 배신자 혁의 휘하 문파인 ‘혈랑문’의 순찰대였다. 련의 붉은 눈동자가 순간 섬뜩하게 빛났다. 그들은 그저 혁의 앞잡이일 뿐이었지만, 련의 복수심은 혁과 연관된 모든 것을 태워버릴 불길과도 같았다.
“거기 누구냐!”
선두에 선 혈랑문 무사가 어둠 속의 이질적인 기운을 감지하고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경계심으로 가득했지만, 그 안에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련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허리춤에 매달린 ‘흑연검’의 검집에서 서서히 손을 뻗을 뿐이었다. 칠흑 같은 검은색, 그러나 그 안에는 련의 암흑화된 내공이 흐르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모습을 드러내라!”
두 번째 경고가 떨어지기 무섭게, 련의 육체가 흑색 섬광처럼 움직였다. 경공술이었다. 인간의 움직임이라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그는 순식간에 선두 무사의 등 뒤로 파고들었다. 무사는 뒤늦게 검을 뽑으려 했지만, 이미 련의 흑연검이 그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다. 차가운 쇠붙이의 감촉이 소름 돋게 느껴졌다.
“크… 큽…!”
무사는 아무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혈랑문의 다른 무사들이 혼란에 빠져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지만, 련은 이미 그들의 공격 범위를 벗어나 다음 목표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춤을 추듯 유려했지만, 그 끝은 언제나 죽음이었다.
파앙! 파파팡!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뼈가 부러지는 소리, 짧게 터져 나오는 비명들이 흑운령의 밤을 갈랐다. 련은 흑연검을 휘두를 때마다 암흑화된 내공을 실었다. 검날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는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검기에 스며든 사악한 기운이 상대의 혈도를 얼려버려,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게 만들었다. ‘파멸흑연공’의 진정한 위력이었다.
“괴… 괴물이다…!”
한 무사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의 눈에는 이미 싸울 의지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련은 그를 놓아둘 생각이 없었다. 혁의 그림자 아래에서 숨 쉬는 모든 존재는 련의 복수심 앞에서 재가 될 뿐이었다.
휘익!
흑연검이 다시 한 번 섬광처럼 휘둘러졌다. 무사는 어깨에 깊은 상처를 입고 쓰러졌지만, 련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멱살을 잡아채, 눈높이를 맞췄다. 련의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혁은 어디에 있나.” 련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목적만을 위한 목소리였다.
무사는 고통과 공포로 몸을 떨었다. “크… 크흐윽…! 모… 모릅니다…! 저희는 그저 순찰을…!”
련은 그의 대답에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흑연검의 차가운 검날이 무사의 다른 쪽 어깨를 스쳤다. 피부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새로운 피가 솟구쳤다. 무사는 비명을 질렀다.
“거짓은 통하지 않아. 네놈의 심장이 먼저 알겠지.” 련은 무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혁이 이곳 흑운령에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터. 말해라. 그자가 언제, 어디로 오는가.”
무사는 피투성이 얼굴로 련을 올려다봤다. 련의 눈빛은 너무나도 냉정해서, 마치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듯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 이곳으로 올 것이라는 정보를 넘기는 순간, 어떤 처참한 보복을 당할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눈앞의 악마에게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의 혀는 공포에 마비되어 있었지만, 살고자 하는 본능이 결국 입을 열게 했다.
“내… 내일…! 자정…! 흑운령 정상…! 천마대신단… 접선입니다…!”
천마대신단. 마교와 결탁하다니. 련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혁은 겨우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금지된 문파와 손을 잡았던 모양이었다. 련의 복수심은 더욱 끓어올랐다.
련은 무사를 바닥에 내던졌다. 흑연검을 거두고 돌아서는 련의 뒷모습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무사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가지 더.”
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무사는 얼어붙은 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련은 뒤돌아보지 않고 낮게 읊조렸다.
“혁에게 전해라. 내가 돌아왔다고. 낙화곡에서 던져진 자가,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그 말을 끝으로 련의 그림자는 완전히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무사는 홀로 남겨진 채, 련이 남긴 살기에 짓눌려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눈에는 복수심에 미쳐버린 망령의 잔상이 아른거렸다.
내일 자정, 흑운령 정상.
혁, 네놈의 목을 베어, 내가 겪었던 지옥을 똑같이 돌려주마.
련의 입가에 차갑고 비정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이제 시작이었다. 진정한 복수의 서막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