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고요하고 답답했다. 지훈은 맥주캔을 한 모금 들이켰다. 창밖은 이미 밤으로 잠겨 있었고,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불빛은 평소보다 희미하고 드문드문했다. 뉴스에서는 연일 이상한 사건들만 쏟아졌다. 길거리에서 비틀거리는 사람들, 통제 불능이 된 폭동,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괴성들.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지만, 지훈은 그저 고개를 저었다. 제발, 그저 집단 히스테리이길.

“하아….”

작은 한숨이 차가운 공기 중에 흩어졌다. 난방을 약하게 틀었음에도 왠지 모르게 싸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기어 올랐다. 그는 몸을 으스스 떨며 TV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시덥지 않은 오락 프로그램이라도 틀어놓으면 좀 나을까. 채널을 돌리자 뉴스 앵커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재 수도권 지역에… 정체불명의… 확산 중인… 정부는… 통제 불능…

지훈은 신경질적으로 채널을 다시 돌렸다. 보고 싶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였다. 찌익, 하는 짧은 노이즈와 함께 TV 화면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곧바로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송신 문제인가? 이런 일은 처음인데.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화면에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거실 한가운데 놓인 작은 탁상시계로 향했다.

시계의 초침이, 틱, 틱, 틱, 하고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어쩐지 그 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크게 들리는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파트 전체가 고요해서 모든 소리가 증폭되는 것 같았다. 아래층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옆집도 마찬가지. 이 고요함이 더 섬뜩했다.

쾅.

갑자기 안방 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지훈은 움찔하며 몸을 굳혔다. 뭐지?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창문을 열어둔 것도 아닌데. 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향했다. 문은 닫혀 있었다. 그가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손잡이가 스르륵, 하고 미끄러지듯 돌아갔다. 그리고는 닫혀 있던 문이 스르륵, 하고 천천히 열렸다.

“젠장, 뭐야?”

지훈은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분명히 닫혀 있었던 문이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혹시 오래된 건물이라 문이 헐거워진 건가? 그는 애써 침착하려 노력하며 안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커튼도 미동조차 없었다. 그는 천천히 문을 다시 닫았다.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아파트 전체에 울렸다.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 그는 다시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괜히 겁먹을 것 없어. 피곤해서 예민한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맥주캔을 다시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미지근해진 것 같았다.

그때, 부엌 쪽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명확했다. 접시라도 깨진 소리였다. 지훈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 소리에 이어, 탁, 탁, 탁, 하고 뭔가 바닥을 굴러가는 듯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마치 작은 공이 튀어 오르다 멈추고, 다시 튀어 오르는 듯한.

“누구… 없어?”

지훈은 목소리를 쥐어짜듯 물었다.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가장 가까운 물건인 리모컨을 움켜쥐었다. 리모컨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부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불은 꺼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식탁과 조리대들이 희미한 윤곽을 드러냈다.

덜컹!

싱크대 밑 수납장 문이 갑자기 활짝 열렸다. 그 안에서 냄비 뚜껑 하나가 떨어져 바닥에 부딪혔다. 쨍그랑, 하는 소리를 내며 접시 조각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지훈은 숨을 들이켰다. 분명히 잠겨 있었던 수납장 문이었다. 그리고 접시가 깨져 있었다. 그의 집에는 고양이도, 강아지도, 아무도 없었다.

머릿속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이건 그냥 오래된 건물의 문제나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차가운 공기가 확 끼쳐왔다. 마치 누군가 바로 뒤에 서서 숨을 들이쉬는 듯한 싸늘함. 지훈은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겨우 참아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거실, 소파가 놓인 그곳.

TV 화면은 여전히 노이즈로 일그러져 있었고, 그 앞에서 그의 손때 묻은 오래된 안경이 허공에 떠 있었다. 흔들림 없이, 마치 줄에 매달린 것처럼.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그의 눈앞에서 서서히 뒤틀리기 시작했다. 안경테가 휘어지고, 렌즈가 깨지는 소리가 귓가를 긁었다. 바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안경이 산산조각 나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었다. 숨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안경 조각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공포에 질려 흔들렸다. 그때, TV 화면의 노이즈가 더욱 거세졌다.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섬뜩한 장면이 나타났다.

아파트 단지. 밤. 그리고… 그들의 모습.

창백한 얼굴, 축 늘어진 사지, 피에 젖은 옷. 비틀거리는 몸으로 아파트 입구를 향해 몰려드는 사람들. 아니,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살아있는 시체였다. 그들의 몸이 흔들릴 때마다, 이상한 에너지파 같은 것이 공중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그들의 존재 자체가 주변의 사물을 흔들고 왜곡시키는 것처럼. 아파트 창문들이 흔들리고, 베란다 난간이 삐걱거렸다. 도시 전체가, 세상 자체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화면 속에서 그 시체들이 아파트 건물로 몰려들자, 지훈의 집 부엌 전등이 미친 듯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그 리듬은 마치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 불규칙적이고 강렬했다. 그리고 싱크대 위에 놓여 있던 칼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솟구쳤다. 날카로운 칼날이 천장을 향해 뾰족하게 서더니, 지훈의 눈앞에서 휘이잉, 하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칼은 섬뜩한 속도로 회전하며,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지훈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닿자마자, 그는 쿵, 하고 주저앉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뒤엉켰다. 귀신인가? 아니, 저것들은… 바깥의 것들과 관련이 있었다. 이 아파트, 그의 집이 지금, 저 알 수 없는 존재들에게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지지직, 하는 노이즈와 함께 섬뜩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으으윽… 으으으… 하는 기괴한 신음소리가. 마치 수십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고통받는 듯한.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지훈은 들었다. 아주 희미하게, 마치 그의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나가….*

그의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휴대폰을 떨어뜨리자, 화면은 이미 깨져 있었다. 그리고 부엌에서 회전하던 칼이, 끔찍한 속도로, 그의 심장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