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챕터 1. 녹슨 문 뒤의 침묵**

우리는 아크 안에 있었다. 회색빛 콘크리트와 금속으로 된 이 거대한 방주는 세상의 끝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도시였다. 바깥은 시체 썩는 냄새와 피 튀는 비명으로 가득한 지옥이었지만, 이곳은 살아남은 자들의 마지막 안식처. 거대한 방벽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좀비 떼의 끊임없는 파상공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언제나 위태로웠다. 전기가 끊길까, 식량이 바닥날까, 혹은… 내부에서부터 균열이 생길까.

오늘, 그 균열이 시작되었다.

“긴급! 전원, C-7 구역 기술반장실로 집결하라!”

금속 스피커를 찢는 듯한 비상방송이 아크 전체에 울려 퍼졌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이 비상방송은 바깥의 벽이 뚫렸을 때나 울리는 것이었다. 내부에서?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의 얼굴에 공포와 당혹감이 교차했다. 생존자들은 각자 소총을 움켜쥐거나, 손전등을 챙기거나, 혹은 그저 두려움에 떨며 귀를 기울였다.

류진혁은 낡은 의자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철학서였다. 먼지 쌓인 렌즈 너머로 차분한 눈빛이 활자 위를 훑었다. 비상방송이 울렸을 때,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을 뿐, 다른 사람들처럼 허둥대지 않았다. 그저 책갈피를 끼워 책을 덮고,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의 키는 컸고, 몸은 마른 편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날카로운 인상을 주었다.

“류 박사님! 어디 가십니까?”

경비대원 한 명이 그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C-7 구역.”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먼저 확인해봐야…”

“아크 내부에서, 그것도 기술반장실에서 위험할 게 뭐 있나?” 진혁은 피식 웃었다. “좀비라도 텔레포트했나?”

경비대원은 할 말을 잃었다. 그가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아크 내부는 완벽하게 통제된 공간이었다. 문이 잠기고, 감시 카메라가 24시간 돌아가는 곳. 좀비는 고사하고, 작은 쥐새끼 한 마리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불길했다.

C-7 구역. 기술반장 박선우의 개인 작업실이 있는 곳이었다. 아크의 모든 전력, 통신, 보안 시스템을 총괄하는 핵심 인물. 그가 있는 곳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진혁이 도착했을 때, 이미 수십 명의 사람들이 녹슨 금속 문 앞에 모여 있었다. 아크의 총책임자인 최영호 대령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경비대장인 김민철이 문을 주시하며 연신 땀을 닦고 있었다.

“문을 강제로 열었습니다!”

경비대원들이 절단기를 이용해 문고리를 끊어내고, 묵직한 강철 문을 힘껏 밀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내부의 광경이 드러났다. 사람들의 입에서 동시에 경악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방 안에는 박선우 기술반장이 쓰러져 있었다. 새하얀 작업복은 선혈에 흥건히 젖어 있었고, 그의 목에는 깊고 잔혹한 상처가 나 있었다. 마치 칼날로 뼈까지 도려낸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눈은 공포에 질린 채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방 안에 박선우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최영호 대령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감시 카메라도 이상이 없었고! 대체 누가… 누가 박반장을 죽였단 말인가?!”

김민철 대장이 손전등을 들고 방 안을 꼼꼼히 살폈다.

“창문은 없습니다. 환기구는 성인 팔 하나도 안 들어갈 크기입니다. 문은 분명히 안에서 걸쇠까지 내려져 있었고, 저희가 강제로 부수기 전까지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혼란과 공포가 뒤섞였다. 아크 안에서 살인이라니. 그것도 밀실 살인이라니. 바깥의 좀비보다 더 무서운 공포가 이들의 뼈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서로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때, 진혁이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나섰다. 최 대령이 그를 발견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류 박사, 당신은 이런 곳에 있을 필요 없어. 이 일은 경비대가 알아서 처리할 거네!”

“처리라뇨? 살인자가 좀비에게 물려 자살이라도 했다는 결론을 내릴 작정이십니까?” 진혁은 시체로 향하는 길을 막는 경비대원을 한 손으로 밀어내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쭈그리고 앉아 박선우의 시체를 관찰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선은 방 안의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를 훑었다. 닳아빠진 작업화, 바닥에 떨어진 펜, 벽에 붙은 시스템 회로도.

“밀실 살인이라… 흥미롭군요.” 진혁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재미있다는 미소라기보다는, 마치 어려운 퍼즐을 발견한 사람의 기대감 같은 것이었다.

“흥미롭다고?! 지금 이게 농담으로 보이나, 류 박사?!” 최 대령이 목소리를 높였다.

진혁은 대답 없이 손을 뻗어 죽은 박선우의 손에 들린 작은 십자드라이버를 집어 들었다. 드라이버는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 드라이버… 박 반장 자신의 것입니까?” 진혁이 물었다.

김민철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늘 저것만 썼습니다.”

“그렇군요.” 진혁은 드라이버를 잠시 들여다보더니,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시체의 목에 난 상처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칼날에 베인 듯 깊은 상처였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상처의 형태가… 날카로운 칼날보다는, 마치 무언가 뾰족하고 거친 것에 긁힌 듯한 느낌이었다.

“김 대장.” 진혁이 불렀다. “이 방 안의 모든 물건을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보존하십시오.”

“이미 충분히 살폈습니다! 범인은 없었고, 문은 잠겨 있었고! 이건 자살이거나… 아니면 유령의 소행이겠죠!” 김 대장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유령이라… 그럴 수도 있겠군요.” 진혁은 시체에서 시선을 떼고, 방 안의 벽면을 천천히 훑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문득 한 곳에 멈췄다. 방 안을 밝히는 유일한 전등, 그 전등에 연결된 전선. 전선은 벽을 타고 내려와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진혁은 그 전선 끝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 묘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유령은 아니겠군요. 이 세상에 유령이 있다면, 그들이 이런 조잡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르진 않을 테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진혁에게로 향했다. 그의 말은, 마치 그가 이미 진실의 일부분을 간파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조잡한 방법이라니… 류 박사,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최영호 대령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진혁은 그들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전선 끝을 바라보던 시선을 들어, 살해당한 박선우의 공포에 질린 눈과 마주쳤다.

“자살? 유령? 밀실?” 진혁의 입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건, 누군가가 우리 모두에게 던진 거대한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저 전등의 전선만큼이나 명확한 실마리를 품고 있군요.”

그의 말이 끝나자, 방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바깥의 좀비 울음소리마저 잠시 잊혀질 만큼,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제 아크 안에서, 좀비보다 더 예측 불가능하고 무서운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인간의 악의로 빚어진 살인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그리고 류진혁은, 그 괴물의 뼈대를 꿰뚫어 볼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