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제1장: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불씨**

진은 숨을 죽였다. 코끝을 스치는 비릿하고 차가운 흙냄새, 그리고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비명 소리가 그의 심장을 옥죄었다. 무너진 돌담 틈새로 보이는 하늘은 잿빛이었다. 해는 이미 저물었을 시간인데, 마치 거대한 손이 빛을 가린 듯 온 세상이 침울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옆에 웅크리고 앉은 세라 누나가 손가락으로 두 번, 짧게 땅을 두드렸다. ‘멈춰.’ 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명령은 언제나 절대적이었다. 스무 살, 고작 어린아이 티를 겨우 벗은 진에게 세라 누나는 생명의 은인이자, 이 참혹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진, 긴장 풀어. 등 뒤의 칼집에 손이 가 있잖아.”
세라 누나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찢어진 깃발처럼 갈라진 목소리 속에는 늘 단단한 무언가가 있었다. 진은 슬며시 손을 내렸다. 그저 습관이었다. 언제라도 튀어나올지 모를 황제군, 아니, 이젠 ‘어둠의 기사’라 불리는 존재들에 대한 조건 반사였다.

우리는 며칠 전, 보급로를 급습하려던 세라 누나의 부대가 매복에 걸려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후 도망쳐 나온 생존자들이었다. 황제군의 마수는 갈수록 대담해지고 잔인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일반 병사들이 아니었다. 끔찍한 의식을 통해 인간성을 잃고 오직 살육만을 아는 존재로 변모한 괴물들.

“저기 봐, 진.”
세라 누나의 시선을 따라 진은 다시 돌담 틈새로 시선을 던졌다. 잿빛 하늘 아래, 멀리 지평선에 펼쳐진 마을이 보였다. 아니, 마을이었다고 추정되는 폐허였다. 모든 것이 불에 탔고, 연기가 걷히지 않아 마치 거대한 상처처럼 보였다. 아스타리온 제국은 자신들의 뜻에 거스르는 모든 것을 이렇게 지워버렸다. 저곳에 분명 삶이 있었을 텐데. 아이들의 웃음소리, 노인들의 잔주름 깊은 미소, 어머니의 자장가가 가득했을 텐데.

“이젠 뭐 남은 것도 없겠네.” 진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세라 누나는 아무 말 없이 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길은 거칠었지만 따뜻했다.
“아직이야. 제국 놈들은 ‘흔적’을 남겨. 우린 그걸 지우러 가는 거야.”

흔적. 진은 그 단어가 품고 있는 섬뜩한 의미를 알았다. 제국은 단순히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포를 심고, 자신들의 권능을 과시하기 위해 끔찍한 의식을 자행했다.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고통스럽게 찢어발겨, 이 세계와 황제의 어두운 계약을 더욱 굳건히 하는 행위. 그것이 바로 ‘흔적’이었다.

“들어가자.”
세라 누나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녀는 먼저 몸을 낮춰 폐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진은 망설이다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발밑에 밟히는 것은 재와 삭막한 흙, 그리고 간간이 튀어나오는 사람의 뼈 조각들이었다. 그 뼈 조각들 위에는 검붉은 기호들이 새겨져 있었다. 제국이 남긴 섬뜩한 낙인.

폐허가 된 마을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공기는 더욱 차갑고 무거워졌다. 마치 땅 자체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진은 오소소 솟아나는 소름을 억누르며 주위를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너진 광장 한가운데 우뚝 솟은 기괴한 구조물이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나무 기둥 여러 개가 마치 거대한 손가락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 꼭대기에는 굳어버린 피딱지가 엉겨 붙어 있었고, 그 밑에는 사람의 형상을 알 수 없는 끔찍하게 뒤틀린 시체 조각들이 나뒹굴었다.

“젠장… 이 새끼들.”
세라 누나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을린 기둥에는 사람의 형상을 본뜬 조각들이 잔뜩 걸려 있었는데, 그것들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었다. 인간의 살과 뼈를 엮어 만든, 살아있는 예술품처럼 끔찍하게 변형된 형상들. 그들의 눈은 텅 비어 있었고, 입은 영원한 고통을 표현하듯 벌어져 있었다. 그것들은 마을 사람들이었다. 진은 속에서 역겨움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거… 루나 아줌마 아냐?” 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한쪽 팔이 유난히 길게 늘어져 거대한 거미 다리처럼 변한 형상. 루나 아줌마는 진이 어렸을 적, 늘 따뜻한 빵을 구워주던 상냥한 사람이었다.

“아니야, 진. 저건 루나 아줌마가 아니야. 저건 제국 놈들이 아줌마의 육신을 비틀어 만든 ‘껍데기’일 뿐이야.”
세라 누나는 진의 눈을 가리듯 자신의 손을 뻗었다. 하지만 진은 이미 보았다. 살아있을 적의 루나 아줌마라면 결코 낼 수 없었을, 텅 빈 절규와도 같은 표정을.

그때였다.
“누구냐!”
날카로운 목소리가 어둠을 찢고 울려 퍼졌다. 진과 세라 누나는 동시에 몸을 숙였다. 황제군이었다. 폐허 저편에서 횃불을 든 그림자 셋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갑옷은 검은색이었고, 헬멧 아래로 빛나는 붉은색 눈동자는 섬뜩한 광기를 담고 있었다.

“어둠의 기사…!” 세라 누나가 낮은 신음처럼 뱉었다.
그들은 보통의 병사가 아니었다. 제국의 흑마법에 의해 육체가 개조된, 반인반마의 존재들. 그들의 피부는 돌처럼 단단하고, 힘은 인간의 열 배를 뛰어넘었다.

“젠장, 벌써 온 건가!”
세라 누나가 진의 팔을 잡아끌며 속삭였다.
“진, 이쪽으로. 우린 흔적을 지워야 해.”

그녀는 무너진 건물 잔해를 헤치며 광장 옆의 작은 신전처럼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진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눈앞의 끔찍한 광경을 지우려 애썼다. 횃불의 그림자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기사들이 땅을 밟는 둔탁한 소리가 심장을 울렸다.

신전 안은 더욱 음습했다. 바닥에는 검은 피가 마른 흔적이 낭자했고, 벽에는 고대 문자와 기괴한 형상들이 어지럽게 새겨져 있었다. 그 중심에는 섬뜩한 제단이 있었다. 사람의 뼈로 만든 장식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고, 제단 위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붉은 액체가 고여 있었다.

“여기가 중심이군.” 세라 누나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걸 부숴야 해.”
그녀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단검에는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저것은 단순한 단검이 아니었다. 어둠의 힘을 끊어내는, 몇 안 되는 성물 중 하나였다.

“진, 네가 시간을 벌어.”
세라 누나의 말에 진은 화들짝 놀랐다.
“제가요? 하지만…!”
“이것만이 살길이야. 놈들은 감각이 예민해. 분명 우리가 이곳에 들어온 걸 알 거야.”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전 입구에서 굉음이 울렸다. 검은 그림자 세 개가 횃불을 들고 신전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의 붉은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침입자들인가! 감히 황제의 영역을 더럽히려는 어리석은 벌레들!”

진의 손이 다시 칼자루로 향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둠의 기사 하나가 거대한 검을 휘두르며 진에게 달려들었다. 진은 필사적으로 옆으로 피했다. 검은 그의 귀를 스쳐 벽에 박혔고, 돌먼지가 폭발하듯 튀어 올랐다.

“젠장!”
진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이런 괴물들과 정면으로 싸워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저 겁에 질린 채 몸을 숨기고 도망치는 데 익숙한 평범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의 등 뒤에는 세라 누나가, 그리고 이 마을의 끔찍한 흔적들이 있었다.

진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돌덩이를 집어 들고 기사의 얼굴에 힘껏 던졌다. 돌은 마치 철판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져 나갔지만, 기사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진은 칼을 뽑아 들고 기사의 옆구리를 찔렀다. 칼날은 단단한 갑옷에 부딪혀 겨우 흠집만 냈다.

“하찮은 발버둥이군.” 기사가 비웃듯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거칠었다.
기사의 거대한 손이 진의 목을 향해 뻗어왔다. 진은 피할 새도 없이 잡혔다. 질식할 것 같은 압력에 눈앞이 노래졌다. 그의 몸이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진!” 세라 누나의 외침이 들렸다.
그녀는 제단을 향해 단검을 내리찍으려 하고 있었다.
“늦었다! 이 제단은 황제 폐하의 위대한 힘이 깃들어 있나니, 하찮은 벌레들이 훼손할 수 없을… 으악!”

어둠의 기사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진을 놓쳤다. 진은 바닥에 뒹굴며 콜록거렸다. 무슨 일이지?
세라 누나가 단검을 휘둘러 제단 위에 고여 있던 피를 바닥에 흩뿌린 것이다. 핏방울이 바닥에 닿자마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끔찍한 비명 소리가 신전을 가득 채웠다. 어둠의 기사들의 몸이 순간적으로 경련했다.

“저주받은 성물!” 기사 중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제단 위에 새겨져 있던 기괴한 문양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빛은 곧 은빛 단검의 광채에 잡아먹혔다. 세라 누나가 단검으로 제단을 깊숙이 찔러 넣자, 검은 균열이 제단 전체를 뒤덮었다.

“크아아악!”
어둠의 기사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육체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갑옷이 녹아내리고, 살이 뒤틀렸다.

“망할! 제단이 파괴된다!”
세라 누나가 마지막으로 단검을 비틀자, 제단은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그 순간, 신전 전체를 짓누르던 어둡고 음습한 기운이 사라지는 것을 진은 느낄 수 있었다.

“튀어, 진!”
세라 누나가 외쳤다.
어둠의 기사들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들의 몸은 마치 끓는 물속의 인형처럼 변형되고 있었다. 육체가 녹아내리고, 뼈가 튀어나오고, 결국은 검은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진은 세라 누나의 손을 잡고 신전 밖으로 뛰쳐나왔다. 등 뒤에서는 섬뜩한 비명 소리가 아직도 울리고 있었다. 폐허가 된 마을 광장에 걸려 있던 끔찍한 조각상들, 루나 아줌마의 껍데기도 함께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하늘은 아직 잿빛이었지만, 어딘가에서 아주 희미한 별빛 하나가 깜빡이는 것 같았다. 진은 숨을 헐떡이며 세라 누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흙투성이에 땀범벅이었지만, 눈빛은 이전보다 더욱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해냈어, 누나!”
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라 누나는 피식 웃었다.
“아직 멀었어, 진.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해. 저놈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이런 ‘흔적’을 남겼고, 우린 그걸 다 지워야 해.”

그녀는 고개를 돌려 멀리, 제국의 수도가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거대한 흑탑들이 잿빛 하늘을 꿰뚫고 서 있는 환영이 보이는 듯했다. 그곳에 제국의 심장이 있었고, 그 심장을 뽑아내지 않는 한 이 지옥은 끝나지 않을 터였다.

“이제 뭘 해야 해요?” 진이 물었다.
세라 누나는 진의 어깨를 꽉 잡았다.
“살아남는 거야, 진. 그리고 저 어둠 속에서… 우리만의 불씨를 피워내는 거지. 수많은 불씨들이 모여, 언젠가 저 거대한 제국을 불태워버릴 때까지.”

그녀의 말은 진의 심장에 웅크리고 있던 작은 불씨를 건드리는 것 같았다.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아주 작은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둠이 짙었지만, 그 불꽃은 더는 홀로 타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폐허 속에서 숨죽여 자신들의 불씨를 품고 있을 테니까.

두 사람은 밤의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발걸음은 지치고 상처투성이였지만,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긴 싸움의 밤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