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 잿빛 도시의 그림자**
지후는 숨을 죽였다. 삑- 삑- 삑- 이명처럼 울리는 금속음은 그의 신경을 끈적하게 달라붙는 거미줄처럼 휘감았다. 낡은 금속 탐지기였다. 그의 손에 들린 몽롱한 빛을 내는 장치는, 어쩌면 이 잿빛 도시에서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닳아빠진 등산화 아래로 부스러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발소리마저 조심스러운 사냥꾼처럼, 그는 무너진 백화점 잔해 속을 헤치고 나아갔다.
하늘은 언제나처럼 탁했다. 미세먼지와 재가 뒤섞여 만들어낸 회색빛 지붕은 햇빛조차 제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그랬다. 세상이 송두리째 뒤집힌 이후, 푸른 하늘은 전설 속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지후의 기억 속에도 푸른 하늘은 희미한 사진처럼 바래 있었다. 선명한 건 오직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뿐이었다.
삑- 삑- 삑- 금속음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강한 신호는 버려진 차량의 잔해거나 녹슨 철근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때로는, 아주 가끔은, 오래된 통조림 캔이나 버려진 총알 케이스 같은 귀한 것을 찾아낼 수도 있었다. 무엇이든 좋았다.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뱃속에서 요동치는 공허함을 채워줄 무엇인가였다.
“이쪽인가…”
낮게 읊조린 목소리는 건조한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지후는 벽을 따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한때 명품 옷가지로 가득했을 진열대는 산산조각 나고, 그 파편들은 바닥에 날카로운 이빨처럼 박혀 있었다. 거대한 유리 파편들 사이로 삐죽이 솟아난 철근들은 이 도시의 비극적인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다. 그는 발아래를 조심하며 탐지기를 바닥에 댔다. 신호는 점점 강해졌다.
삐이이이익-!
귀를 찢을 듯한 소리와 함께 탐지기의 붉은 불빛이 격렬하게 깜빡였다. 지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정도면… 그냥 철근은 아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흙과 잔해를 조심스럽게 걷어내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흙을 파내자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흙더미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낡고 녹슨 금속 상자였다. 심장이 다시 한번 크게 울렸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뒤섞여 그의 정신을 지배했다.
상자를 꺼내 들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사방이 녹슬고 흙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견고한 이음새와 자물쇠 흔적은 이것이 단순한 폐기물이 아님을 말해주었다. 그는 품속에서 작은 만능 도구를 꺼냈다. 낡았지만 아직 쓸 만한 도구는 그의 손에서 능숙하게 움직였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상자의 뚜껑이 열렸다.
먼지가 훅하고 올라왔다. 기침을 참으며 상자 안을 들여다본 지후의 눈이 커졌다. 안에는 낡은 천 조각에 감싸인 무언가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천을 걷어내자, 눈앞에 드러난 것은 예상치 못한 물건이었다.
작고 얇은, 그러나 견고해 보이는 손목시계. 그리고 그 옆에는 몇 개의 작은 약병이 놓여 있었다.
지후는 시계를 들어 올렸다. 검은색 다이얼에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시계는 시간을 표시하는 대신, 희미하게 숫자들이 깜빡이고 있었다. 00:00:00. 작동하는 시계였다. 하지만 왜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는 걸까. 그는 의아해하며 약병을 집어 들었다.
낡은 라벨이 붙어 있었지만, 글씨는 거의 지워져 있었다. 그나마 식별할 수 있는 건 ‘진정제’라는 단어와 흐릿한 사용 기한이었다. 몇 년은 족히 지난 듯했다. 먹는다고 해서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이런 폐허 속에서 진정제라니. 누가 이런 것을 이곳에 숨겨두었을까. 단순히 버려진 것이라고 보기에는 상자가 너무 견고했다.
그때였다.
삭- 삭-
아주 미세한 소리. 마치 쥐가 벽을 긁는 듯한, 혹은 작은 돌멩이가 굴러가는 듯한 소리였다. 지후의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본능적으로 상자와 약병을 다시 천으로 감싸 품에 넣었다. 그리고는 허리에 찬 낡은 단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소리는 분명 상자의 반대편, 즉 그가 들어온 길목에서 들려왔다. 그는 몸을 낮춰 무너진 진열대 뒤로 숨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혹시 다른 생존자일까? 아니면… ‘그들’일까.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해준 그의 육감은 지금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누구… 없습니까?”
갈라진 목소리가 공간을 맴돌았다. 어딘가 익숙한 말투였다. 지후는 숨을 꾹 참았다. 소리의 주인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두 명, 아니 세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의 발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낡은 등산화가 콘크리트 바닥을 긁는 소리, 거친 숨소리, 그리고 낮은 대화 소리.
“이쪽에서 소리가 났는데… 누가 있었던 것 같아.”
“헛것을 들은 거겠지. 이런 곳에 뭐가 있다고.”
“아니야, 분명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어. 게다가 여기 흙이 파헤쳐진 흔적이 있잖아. 신선해.”
지후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이 그를 발견했다. 아니, 그가 파헤친 흔적을 발견했다. 젠장. 그는 자신이 너무 안일했다고 자책했다. 오랜만에 찾은 수확에 들떠 경계를 게을리한 대가를 치를 뻔했다.
“꼼짝 마!”
갑자기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지후는 움찔했다. 하지만 외침의 방향은 그가 숨어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진열대 틈새로 시선을 돌렸다.
두 명의 남자가 다른 한 명의 남자를 포위하고 있었다. 포위된 남자는 등에 배낭을 메고 손에 낡은 쇠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피로와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거기 있는 거 다 내놔. 순순히 주면 살려줄게.”
“내가 뭘… 뭘 훔쳤다고!”
포위된 남자의 목소리는 떨렸다. 지후는 그를 알아보았다. 며칠 전, 물물교환 시장에서 잠시 스쳐 지나갔던 남자였다. 그는 꽤 희귀한 약초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약탈자들이 그를 노린 것이었나.
“개소리 하지 말고, 이리와. 다 봤어. 네가 뭘 들고 도망치는지.”
약탈자 중 한 명이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쉭- 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공포를 더했다. 지후는 등골이 오싹했다. 저들이 자신을 발견했다면, 자신도 저 남자와 같은 처지가 될 터였다. 약탈자들의 눈은 굶주림과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굶주린 짐승도, 무너진 건물도 아닌, 바로 인간이었다.
지후는 숨을 멈추고 상황을 주시했다. 개입할 것인가? 아니. 그럴 이유가 없었다. 자신도 겨우 살아남는 처지였다. 다른 이의 싸움에 휘말리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냉정하게 판단했다. 그의 생존 본능이 외쳤다. *’숨어. 움직이지 마.’*
포위된 남자는 결국 저항을 포기했다. 배낭을 바닥에 내던지자 약탈자들은 그를 잔인한 폭행하기 시작했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남자의 비명이 들렸다. 지후는 이를 악물었다. 시선을 돌렸다.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귀는 그 비명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모든 소리가 멈췄다. 약탈자들은 남자가 쓰러진 자리에 남아있던 것들을 뒤져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젠장, 겨우 이거 하나? 쓸데없이 힘만 썼네.”
“그래도 뭐, 없는 것보단 낫지.”
그들은 다시 떠나는 듯했다.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들으며 지후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식은땀이 등에 흘러내렸다.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지후는 재빨리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향했다. 최대한 소리 없이,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심장이 아직도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방금 전 목격한 광경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간의 광기가,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새삼 섬뜩하게 다가왔다.
품속의 시계가 희미하게 깜빡였다. 00:00:00.
무언가 시작되는 듯한, 혹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
지후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잿빛 도시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