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미스터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어두운 골목 끝, 낡은 돌담 사이로 기어오른 담쟁이덩굴이 유난히 붉었다.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발악하듯 타오르는 노을 때문이기도 했지만, 유이의 눈에는 마치 피를 머금은 듯 섬뜩하게 보였다. 이곳, 그녀의 낡고 조용한 동네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평화로운 풍경 아래, 스며들듯 드리워진 묘한 기운.

유이는 작업실 창가에 앉아 키보드 위를 헤매던 손가락을 멈췄다. 한 글자도 더 나가지 못하고 멈춰버린 문장들은 마치 거대한 벽에 부딪힌 작은 파도 같았다. 그녀는 신작 웹소설의 첫 문단을 스무 번도 넘게 고쳐 썼지만, 매번 텅 빈 감정만이 남았다. 창작의 고통은 익숙했지만, 오늘은 유독 날카로운 조각칼처럼 가슴을 긁어댔다.

창밖의 풍경은 그녀의 글쓰기처럼 답답했다. 낡은 전봇대에는 아직도 흑백 사진 속 인물처럼 빛바랜 전단지가 나부꼈고, 갈라진 아스팔트 틈새에서는 이름 모를 잡초가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고요하고 잊힌 듯한 동네만이 그녀에게 유일한 피난처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특히, 골목 가장 안쪽에 자리한 한 노인의 고택은 언제나 유이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한 노인. 그의 이름조차 제대로 아는 이가 드물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그림자 한 씨’라고 불렀다. 빛바랜 서양식 고택은 굳게 닫힌 창문과 철제 대문 뒤에 숨어, 늘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으스스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유이는 어린 시절부터 그 집에서 풍겨 나오는 희미한 향과 가끔 들리는 알 수 없는 소리에 매혹되곤 했다. 전해지는 소문으로는, 그 노인이 온갖 기묘한 수집품을 모으며 은둔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그리고 오늘, 그 한 노인이 사라졌다. 아니, ‘발견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경찰차의 붉고 푸른 불빛이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을 오색찬란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 대신,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와 경찰들의 무전 소리가 고요를 깨트렸다.

“심장마비라고 하는데… 왠지 찜찜하다니까.”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건장했던 양반이 갑자기….”
“그 집에서 기이한 일이 한두 번이었나.”

경찰 라인이 쳐진 고택 앞에 모인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바람을 타고 유이의 귀에 닿았다. 유이는 무심코 펜을 내려놓고 창문에 바싹 다가섰다. 그림자처럼 살던 한 노인의 죽음은 분명 비극이었지만, 동시에 그녀의 얼어붙었던 영감의 샘을 자극하는 불꽃이기도 했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추리 미스터리 소설의 도입부가 그녀의 머릿속에 번뜩였다.

“음, 이런 사건이라면…”

유이는 충동적으로 밖으로 나섰다. 낡은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이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그녀의 뺨을 스쳤다. 고택 앞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경찰들은 조심스럽게 집 안을 수색하고 있었고, 몇몇 주민들은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골목 끝, 오래된 가스등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모두가 고택을 향해 시선을 던질 때, 그는 홀로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유이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이, 움직임 하나하나가 이 모든 혼란을 읽어내고 있음을.

그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여름이 채 가지 않은 밤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에게는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창백하리만치 흰 피부는 가스등 불빛 아래 더욱 도드라졌고,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눈은 마치 밤하늘의 깊이를 담고 있는 듯했다. 윤곽이 뚜렷한 콧날과 단단하게 닫힌 입술은 조각상처럼 완벽했지만, 어딘가 차갑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돌려졌다. 정확히, 유이에게로 향했다.
그 순간, 유이의 심장이 발작하듯 크게 울렸다.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그의 눈동자는 밤의 어둠보다 깊고, 핏빛 장미보다 붉은색을 띠는 듯했다. 그것은 단순한 눈빛이 아니었다. 마치 수천 년의 시간을 품고 있는 듯한, 원시적이고 압도적인 시선이었다.

입술 한쪽이 아주 미세하게,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위로 올라갔다. 피식, 비웃는 듯한 미소였을까. 아니면… 유이를 향한 어떤 경고였을까.
유이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그 짧은 순간, 그는 바람에 스러지는 그림자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등골을 타고 오싹한 한기가 스쳤다.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하지만 그녀의 귓가에는 아직도 그의 눈빛이 남긴 섬뜩한 잔상이 울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유이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 노인의 죽음보다, 방금 그 남자에게서 받은 인상이 더 강렬하게 그녀를 사로잡았다. 대체 누구였을까. 그는 왜 그곳에 있었을까. 그리고 그 눈빛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다음 날 아침, 동네는 어제의 소란이 거짓말인 양 다시 고요해졌다. 하지만 유이의 마음속은 여전히 폭풍의 전야였다. 한 노인의 죽음에 대한 몇 가지 소문이 더 흘러나왔다.
“글쎄, 집은 깨끗했는데, 침대맡에 이상한 게 놓여 있었다지 뭐야.”
“응? 뭔데?”
“말도 안 되게 새빨간 장미 한 송이. 겨울도 아닌데 그렇게 선명할 수가 없다고들 하던데….”

장미? 그것도 ‘말도 안 되게 새빨간’ 장미. 유이의 뇌리에는 어젯밤 그 남자의 핏빛 눈동자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우연일까? 아니면…

밤이 되자, 유이는 자신도 모르게 고택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찰 통제선은 아직 걷히지 않았지만, 한밤중의 골목은 인적이 끊겨 스산하기만 했다. 낡은 고택의 철제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듯, 고택의 담장을 따라 걸었다. 오래된 돌담은 이끼로 뒤덮여 축축했다. 발걸음마다 바스락거리는 마른 나뭇잎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때, 담장 밑에 무언가 빛나는 것이 유이의 눈에 들어왔다.

작고 낡은 은제 로켓이었다. 고풍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그것은 분명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한 노인이 늘 목에 걸고 다녔다는 그 로켓과 흡사했다. 유이가 로켓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을 때,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끝을 스쳤다.

“그걸 주워서는 안 돼.”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낮은 목소리에 유이는 화들짝 놀라 로켓을 떨어뜨릴 뻔했다.
어젯밤 그 남자였다. 그는 그림자처럼 유이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달빛이 그의 얼굴을 희미하게 비췄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듯한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핏빛을 띠고 있었다. 섬뜩한 아름다움.

“너… 누구야?” 유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이번에는 비웃음이 아니었다. 슬픔이 깃든 듯한, 씁쓸한 미소였다.
“네가 알 필요 없는 존재.”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묘하게 울림이 있었다. 깊은 동굴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같기도 했다.
그가 천천히 유이에게 다가섰다. 유이는 뒷걸음질 치려 했지만, 마치 뿌리라도 박힌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손이 뻗어져 유이가 든 로켓을 가리켰다.

“그 로켓은… 위험해. 너는 여기에 얽히지 않는 게 좋아.”
그의 손가락 끝이 로켓에 닿았다. 순간, 차가운 금속이 섬광처럼 빛을 냈다. 유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로켓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에서 핏빛이 더욱 선명하게 타올랐다.
“이곳은… 네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야, 유이.”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유이는 그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로켓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의 검은 코트 자락이 밤바람에 펄럭이는 순간, 그의 몸이 희미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마치 어둠 속으로 스며들려는 듯.

“조심해… 붉은 심장을 따르는 자들을.”

그의 마지막 말이 밤공기를 갈랐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유이는 홀로 남겨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그녀의 손바닥에는, 로켓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있는 듯한 차가운 감촉과 함께, 잊히지 않는 그의 핏빛 눈동자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발치에는, 방금 그가 서 있던 곳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한 장의 핏빛 장미 꽃잎이 뒹굴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