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우주의 심연을 가르며 나아가던 초호화 유람선, ‘여명성 호’의 심장은 밤새도록 차갑게 식어 있었다. 최상층 VIP 스위트룸 A-7에서 발생한 밀실 살인 사건은 배의 모든 승객과 승무원에게 얼음장 같은 침묵을 강요했다. 특히, 이 사건을 접한 이들은 하나같이 불가능을 외쳤다.
“카이젠, 이건…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시스템 기록, 센서 로그, 모든 것이 완벽해요. 그 누구도 출입하지 않았습니다. 마스터 벤하임은 안에 혼자였습니다.”
여명성 호의 함장, 엘리자 카렌의 목소리는 평소의 강단 있는 톤을 잃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은하 연맹 최정예 특수부대 출신인 그녀가 이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녀의 앞에 선 남자, 은하계에서 ‘불가능한 사건 해결사’로 명성을 떨치는 탐정 카이젠은 짙은 감색 제복 차림으로 손목의 정보 패드를 가볍게 터치하며 엘리자의 보고를 들었다.
카이젠의 눈동자는 별처럼 깊고,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숨겨진 진실이 발가벗겨지는 듯했다. 그는 엘리자의 말에는 대꾸 없이, A-7 스위트룸의 홀로그램 도면을 띄워 올렸다.
“안에서 죽은 시신. 완벽히 봉쇄된 공간. 살해 도구는 발견되지 않음. 이것이 함장님의 요약인가요?” 카이젠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낮았지만, 그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엘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마스터 벤하임은 은하 상업 연합의 거물이었습니다. 어젯밤, 그는 개인 업무를 위해 스위트룸에 머물렀고, 아침이 되도록 나오지 않아 제가 직접 보안팀과 함께 문을 열었습니다. 모든 보안 프로토콜을 우회해서 말이죠. 안에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심장에… 아주 미세한, 플라즈마 니들로 인한 관통상이 확인되었습니다.”
카이젠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플라즈마 니들이요? 그 정도 무기라면 최소한의 에너지 잔류 흔적이라도 남을 텐데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잔류 에너지가 거의 없습니다. 마치… 유령처럼 나타나 살해하고 사라진 것처럼요. 모든 출입 기록, 내부 압력 센서, 생체 반응 감지기, 레이저 그리드, 심지어 극미세 입자 감지기까지, 어떤 이상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환기 시스템도 벤하임이 사망하기 직전까지 정상 작동했습니다.”
카이젠은 홀로그램 도면 위에 자신의 손가락을 띄우고, 스위트룸 A-7의 내부를 가상으로 훑었다. 최고급 플로어링, 스마트 글라스로 만들어진 창문, 최신형 개인 워크스테이션, 그리고 중앙에 놓인, 이제는 싸늘한 시체가 누워있던 최고급 침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마치 죽음이 이 공간을 비켜가지 않고, 그저 스쳐 지나간 것처럼.
“안내해 주시죠, 함장님. 불가능은 언제나 흥미롭거든요.”
***
A-7 스위트룸 내부는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카이젠은 현장 보존을 위해 투명한 필름으로 덮인 바닥 위를 조심스럽게 걸었다. 심장이 관통당한 채 편안한 자세로 침대에 누워있는 마스터 벤하임의 모습은 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세한 경련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카이젠은 침대에 가까이 다가가 시신을 면밀히 살폈다. 그의 눈은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미세한 것들을 포착해냈다. 벤하임의 심장에 난 상처는 지름 1밀리미터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구멍이었다. 이는 초고성능 ‘나노-플라즈마 니들’이 아니면 불가능한 상처였다.
“이런 상처라면,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즉사했을 겁니다. 저항의 흔적이 없는 이유가 납득이 가네요.” 카이젠이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시신을 떠나 침대 헤드보드, 그리고 그 뒤편의 벽면으로 향했다. 스위트룸의 벽면은 특수 합금으로 제작되어 완벽한 방음과 방탄 기능을 자랑했다.
“함장님, 이 방의 모든 벽면은 외부 충격에 대비한 이중 구조로 알고 있습니다만.”
“맞습니다. 두꺼운 합금층 사이에 에너지 흡수층이 존재하죠. 벤하임 정도의 인물이라면 개인 방어막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살해당했다는 것은… 상대가 방어막을 뚫을 방법을 알았거나, 혹은 아주 가까이서 기습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카이젠은 말을 않고 방 안을 맴돌았다. 그는 공기 중의 미세한 흐름, 벽면의 재질, 심지어 천장의 조명 패널까지 탐색했다. 그의 시선은 침대 바로 위, 천장에 부착된 소형 환기구에 잠시 머물렀다. 여명성 호의 환기 시스템은 최첨단이었고, 공기 순환과 온도 조절이 자동으로 이루어졌다.
“이 환기 시스템은… 함장님, 이 방의 공기 흐름은 일방향인가요, 아니면 양방향인가요?” 카이젠이 물었다.
“상시 순환 방식입니다. 외부의 깨끗한 공기를 유입하고 내부 공기를 정화해서 다시 순환시키는 구조죠. 공기압은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어떤 이물질도 외부에서 침투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카이젠은 손가락으로 환기구 주변의 벽면을 훑었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흠집을 발견했다. 그것은 금속 표면에 난 작은 긁힘이었지만, 일반적인 마모나 충격으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마치 정교한 도구가 스쳐 지나간 듯한 자국이었다.
“함장님, 이 벽면의 구조 도면과 유지보수 기록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특히 이 부분, 침대 바로 위 천장 모듈에 대한 것을요.”
엘리자는 의아했지만, 지체 없이 요청한 자료를 정보 패드에 띄워 카이젠에게 전송했다. 카이젠은 패드 화면을 응시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화면에는 복잡한 구조의 합금 벽면 도면과, 주기적인 점검 기록이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다.
“여명성 호의 특수 구조… 기억나는군요. 비상시 특정 구역의 내부 패널을 미세하게 분리하여 점검하는 ‘미세 구조 변형 프로토콜’이라는 게 있었죠. 특정 상황에서만 사용되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기능입니다. 위험할 수 있어서 보통은 사용하지 않고요.”
카이젠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바로 그거군요, 함장님. 미세 구조 변형 프로토콜. 아주 작은 빈틈을 만들어내고, 그 빈틈을 통해… 치명적인 것을 통과시키는 거죠.”
엘리자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프로토콜은 사람이 수동으로 조작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변형은 시각적으로도 거의 감지되지 않을 만큼 미세한데요. 게다가, 그 빈틈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뭘 어떻게 통과시켰다는 거죠?”
“나노-플라즈마 니들은 작고, 빠릅니다. 그리고 벤하임의 방어막은 작동했지만, 공격이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너무나 순식간에 들어왔다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카이젠은 환기구 주변의 긁힘을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쓸었다. “누군가, 이 방의 구조와 시스템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자가, 벤하임이 잠든 새벽에 그 프로토콜을 이용한 겁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벽면의 특정 이음새를 열고, 나노-플라즈마 니들을 이용해 정확히 벤하임의 심장을 노린 거죠.”
엘리자는 경악했다. “하지만 그건…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완벽한 타이밍과, 완벽한 조준이 필요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프로토콜은 중앙 통제실에서만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외부 인물이 접근하는 건 불가능해요.”
“외부 인물일까요? 아니면, 내부 인물일까요?” 카이젠은 엘리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미세 구조 변형 프로토콜은 ‘여명성 호’의 특정 기술자만이 그 존재를 알고, 실제로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 로그는 조작될 수 있지만, 물리적인 흔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죠. 이 아주 작은 긁힘은 나노-플라즈마 니들이 벽면을 통과할 때, 마찰로 인해 생긴 흔적입니다. 이 환기구 바로 위, 벽면의 접합부에서 말이죠.”
카이젠은 천장을 가리켰다. “살인자는 벤하임이 잠든 후, 중앙 통제실에서 은밀히 미세 구조 변형 프로토콜을 활성화시켰을 겁니다. 찰나의 순간, 벽면의 접합부가 아주 미세하게 벌어졌고, 그 틈으로 나노-플라즈마 니들을 발사한 거죠. 그리고 임무를 마친 니들은 회수되었을 겁니다. 완벽하게 밀봉된 밀실 안에서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밀실의 ‘틈’을 만들어 그 틈새를 이용한 겁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여명성 호의 기술팀에 소속된 누군가라는 말씀이십니까?” 엘리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니요.” 카이젠은 고개를 저었다. “기술팀 누군가는 프로토콜을 조작했겠죠. 하지만 벤하임에게 원한이 있거나, 그를 죽여야 할 동기가 있는 자는 따로 있을 겁니다. 기술자는 도구였을 뿐. 이 정교한 살인은 단 한 가지를 의미합니다. 범인은 이 배의 구조와 시스템에 대해 철저히 분석했고, 그 약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약점을 통해 ‘불가능한 살인’을 연출함으로써, 자신을 은폐하려 했습니다.”
카이젠은 정보 패드에 기록된 유지보수 로그와 중앙 통제실의 접근 기록을 재차 확인했다. “오늘 새벽, 미세 구조 변형 프로토콜에 대한 아주 짧은 접근 기록이 있습니다. 단 0.3초. 시스템은 오류로 기록했지만, 이건 완벽하게 의도된 조작입니다. 이 시간을 기준으로, 중앙 통제실에 접근할 수 있었던 모든 인원을 즉시 조사해야 합니다.”
카이젠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밀실 살인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밀실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그저 감쪽같이 꾸며진 환상일 뿐.”
여명성 호의 차가운 밤은 이제, 진범의 정체를 밝혀낼 또 다른 새벽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