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심연의 문을 열어젖히는 듯한 끔찍한 비명 소리가 태양의 요새 가장 깊숙한 곳, 아크마법사 카이젤 경의 봉인된 개인 서고에서 울려 퍼졌다. 새벽의 푸른빛이 희미하게 스며드는 요새의 회랑은 순식간에 혼돈에 휩싸였다. 정적의 장막으로 뒤덮여 외부의 모든 소리와 마법적 간섭을 막아내던 서고가, 그 정적을 찢어발기는 절규와 함께 지옥문처럼 열렸으니.

수습 마법사 엘리야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법약을 담은 유리병을 놓쳐 산산조각 냈다. 파르르 떨리는 그의 시선 끝에는, 고색창연한 서책과 고대의 유물들로 가득 찬 서고 안, 원형의 마법진 중앙에 놓인 커다란 참나무 책상에 기대어 앉아 있는 카이젤 경의 싸늘한 시신이 있었다. 경은 평소의 모습 그대로 깃펜을 쥔 채 앉아 있었으나, 가슴팍에는 작고 정교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주위로 붉은 피가 검은 서책 위로 스며들고 있었다. 하지만 피는 그 구멍을 중심으로 몇 방울 흘렀을 뿐, 마치 상처가 내부에서 봉인된 듯 넓게 번지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엘리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는 매일 아침 카이젤 경께 약을 전달하며 서고의 안부를 확인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매일 밤, 카이젤 경은 서고를 정적의 장막으로 봉인했고, 그 장막은 외부의 어떠한 마법적 침입도, 물리적 침입도 허용하지 않았다. 문은 안에서 잠겼고, 열쇠는 카이젤 경의 책상 위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요새의 마법사들과 병사들이 달려왔지만, 그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히르! 어떻게 된 건가! 정적의 장막은 멀쩡하지 않았나?”
아크마법사 평의회 의장인 엘리오스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경비대장 자히르는 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확실합니다, 의장님. 새벽녘까지 정적의 장막은 온전히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었고, 어떤 마법도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요새의 모든 감지 마법진이 증명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어떻게 이 방에 들어와 카이젤 경을 살해하고 사라졌다는 말인가!” 엘리오스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건 불가능해! 마법진을 부순 흔적도, 외부 침입의 흔적도 전혀 없지 않은가!”

그때였다. 소란스러운 입구를 비집고 들어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초조함이나 공포의 기색 없이, 마치 유유히 산책을 나온 듯한 걸음걸이. 그의 검은 장포는 태양의 요새의 웅장한 아치형 천장 아래에서 유독 고요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의 이름은 류세하. 세상 모든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풀어냈다는, 그러나 마법과는 동떨어진 방식으로 진실에 다가서는 기이한 탐정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이미 방 안의 모든 것을 훑어보고 있었다.

“류세하 씨, 오셨군요.” 엘리오스가 그를 발견하고 반색했다. “상황은 보셨겠지만… 정말 기이한 사건입니다. 완벽한 밀실 살인입니다.”

세하는 말없이 서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망설임 없이 시체에 다가갔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카이젤 경의 시신을 세하는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의 눈은 마치 마법진을 해독하는 것처럼, 시신의 자세, 깃펜의 위치, 책상의 얼룩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

“상처는 깨끗하군.” 세하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날카로운 칼날이나 마법으로 인한 상처라기엔… 너무나도 깔끔해. 마치 정확한 위치에 작은 구멍을 낸 것 같아.”

자히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칼날 같은 무기는 방 안에서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마법적인 흔적 또한 정적의 장막 때문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세하는 손을 뻗어 카이젤 경이 쥐고 있던 깃펜을 들어 올렸다. 펜촉은 말라 있었고, 펜을 쥔 손가락에도 잉크가 묻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책상 위에 펼쳐진 두루마리에는 미완성된 룬 문자가 쓰여 있었다.

“무언가를 쓰고 있었군.” 세하가 말했다. “정적의 장막이 활성화된 후부터 사망 직전까지.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뒤에야 깃펜을 놓은 것처럼 보이는군.”

그는 서고 전체를 다시 한번 훑어봤다. 겹겹이 쌓인 서책들, 먼지 쌓인 고대 유물들, 벽면을 빼곡히 채운 마법진들.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자리에 있었다. 심지어 카이젤 경이 매일 저녁 활성화하던 방어용 마법진의 불빛도 희미하게 살아 있었다.

“정적의 장막은 외부에서 내부로의 마법적 간섭을 완벽히 차단하고, 내부에서 외부로의 마법적 간섭도 차단합니다. 물리적 침입 또한 불가능하고요.” 엘리오스가 설명했다. “심지어 순간이동 마법도 통하지 않습니다. 요새 전체를 관통하는 봉인 마법진과 연동되어 있거든요.”

세하는 엘리오스의 말을 들으면서 천천히 책상 주변을 돌았다. 그리고는 카이젤 경의 시신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가볍게 스쳤다. 열쇠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카이젤 경이 매일 활성화하던 봉인 마법진의 핵심은 ‘정적’이지.” 세하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 어떤 소란도, 그 어떤 마법의 파동도 허용치 않는 완전한 고립. 하지만… 정말 모든 것을 막았을까?”

그는 깃펜을 내려놓고, 카이젤 경의 손가락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손톱 아래에 박혀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너무나도 작고 투명해서 맨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세하는 조심스럽게 그 작은 조각을 집어 올렸다. 그것은 마치 얼음 조각처럼 투명했지만, 희미하게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다.

“이게 뭔가요?” 자히르가 궁금한 듯 물었다.

세하는 대답 대신, 그 조각을 눈앞에 들고 서고 안을 둘러봤다. 그의 시선은 책상 위에 놓인 미완성된 룬 문자에서 멈췄다. 그것은 ‘공명 증폭’을 위한 룬이었다. 그리고 그는 서고 한켠에 진열되어 있던, 카이젤 경이 직접 제작했다고 알려진 ‘공명 결정’들을 바라봤다. 그 결정들은 주변의 마법 에너지를 흡수하고 증폭시켜 특정 파동으로 방출하는 고대 기술의 정수였다.

세하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그의 머릿속에서 모든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밀실, 완벽한 봉인, 깨끗한 상처, 사라진 흉기. 그리고 이 작은, 투명한 조각.

“살인자는 이 방에 들어오지 않았어.” 세하가 나직이 말했다. “하지만 카이젤 경을 죽인 건, 이 방 안에 있던 것이었지.”

엘리오스와 자히르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류세하 씨? 방 안에는 카이젤 경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세하는 빙긋이 웃었다. 그 웃음은 차분하면서도 섬뜩했다.
“그게 함정입니다. 범인은 카이젤 경이 가장 신뢰하던 것 중 하나를 이용했어. 완벽한 밀실 살인이었지만, 사실 이 살인은… 카이젤 경 스스로의 손으로 이루어진 겁니다.”

그의 시선이 카이젤 경의 시신이 아닌, 책상 위, 미완성된 ‘공명 증폭’ 룬 문자 위에 멈췄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섬뜩한 진실의 서곡이 흘러나왔다.

“흉기는 사라진 게 아니야. 본래부터 그 형태가 없던 것이지. 살인자는… 카이젤 경의 손에 들려 있던 깃펜, 그 깃펜에 스며든 이 작은 ‘공명 결정’ 조각, 그리고 카이젤 경이 스스로 완성하려던 ‘공명 증폭’의 룬을 이용한 거야. 정적의 장막은 외부의 ‘침입’을 막았을 뿐, 내부에서 발생한 ‘공명’까지 막을 수는 없었거든.”

세하는 방 한가운데를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 아니었어. 오히려 살인자를 위한 완벽한 ‘덫’이었지. 살인자는 외부에서 은밀히 ‘진동 주파수’를 보냈고, 카이젤 경은 자신의 룬으로 그 주파수를 증폭시켰어. 그리고… 증폭된 에너지의 방향은, 정확히 그의 심장을 향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거야.”

모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불가능해 보이던 밀실 살인의 트릭이, 그들의 눈앞에서 꿰뚫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 남은 질문이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카이젤 경의 서고 안에 그 ‘공명 결정’ 조각을 심어놓았단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외부에서 그 정적의 장막을 뚫고 ‘진동 주파수’를 보낼 수 있었단 말인가?

세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남은 건, 그 진동 주파수를 보낸 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언제부터 이 살인을 계획했는지 알아내는 것뿐이군.”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