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무너진 진열대 너머의 식량

잿빛 하늘 아래, 무너진 고층 건물들이 뼈대만 남긴 채 앙상하게 서 있었다. 녹슨 철골들이 비명을 지르듯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이, 죽은 도시의 유일한 자장가였다. 지호는 부서진 아스팔트 위를 조심스레 걸었다. 낡은 방진 마스크 아래로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어깨에 멘 낡은 배낭은 텅 비어 있었다. 벌써 사흘째, 제대로 된 식량을 찾지 못했다.

“젠장… 하다못해 썩은 통조림이라도.”

메마른 입술이 갈라지는 통증에 지호는 혀로 조심스레 축였다. 폐허가 된 도시를 떠돌며 구한 물 한 모금마저도 이제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오늘 안에는 반드시 뭔가 찾아야 했다. 지호의 눈은 먹잇감을 찾는 맹수처럼 주위의 모든 건물 잔해를 훑었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한때 번화했던 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을 거대한 상점의 뼈대였다. 간판은 떨어져 나가고 유리창은 모두 깨져 있었지만, 건물 자체는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 저기라면….”

지호는 굳게 결심하고 상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는 널브러진 콘크리트 조각과 휘어진 철근들로 막혀 있었지만, 틈새는 충분히 벌어져 있었다. 삐걱이는 틈 사이로 몸을 구겨 넣자, 익숙한 곰팡이와 먼지 냄새, 그리고 어렴풋이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내부는 온통 어둠이었다. 천장의 대부분이 무너져 내려 햇빛조차 제대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었다. 지호는 허리춤에 찬 낡은 손전등을 꺼내 들었다. 희미한 불빛이 춤추듯 사방을 비췄다.

진열대는 모두 쓰러져 있었고, 상품들은 썩거나 변색되어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변해 있었다. 바닥에는 깨진 유리 조각과 플라스틱 잔해가 발 디딜 틈 없이 널려 있었다. 지호는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내디뎠다. 혹시 모를 함정이나, 혹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생존자, 아니면… *그것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음… 식품 코너는 어디였더라.”

지호는 기억을 더듬었다. 대형 상점의 구조는 대개 비슷했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분명 식품 코너가 있을 터였다. 침을 꿀꺽 삼키며 썩은 종이 상자 더미를 헤치고 나아가던 그때였다.

*바스락…*

아주 미세한 소리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지호는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손전등 불빛을 껐다. 심장이 미친 듯이 pounding하기 시작했다. 그는 허리춤의 칼집에서 녹슨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손잡이는 닳고 닳아 투박했지만, 수없이 많은 위기를 넘기게 해준 그의 유일한 벗이었다.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정적만이 상점 내부를 지배하고 있었다. 아까 들렸던 소리는 착각이었을까? 아니, 이런 곳에서 착각은 죽음과 직결된다. 지호는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삭막한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공기의 흐름… 그리고 희미한 악취.

*크르륵…*

이번에는 분명했다. 인간의 목소리라고는 할 수 없는, 짐승 같은 울음소리.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지호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아귀’였다. 황폐화 이후 도시 곳곳을 배회하며 생존자들을 사냥하는 끔찍한 변이체. 한때 인간이었을지도 모르는 존재들이었다.

지호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무너진 진열대 뒤로 숨었다. 손전등 불빛 대신 스마트폰의 액정을 최소한의 밝기로 조절해 주변을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둠 속에 희미하게 실루엣을 드러낸 세 마리의 아귀였다. 녀석들은 기괴하게 비틀린 팔다리로 바닥을 기어 다니며, 코를 킁킁거렸다. 마치 먹잇감의 흔적을 쫓는 사냥개 같았다.

“젠장… 하필이면 여길.”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녀석들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상점 안쪽, 식품 코너였을 법한 곳이었다. 그곳에 분명 아직 남아있는 식량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호는 그곳에 걸린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귀들은 지호가 있는 쪽으로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녀석들은 폐허를 휘젓고 다니며 이빨을 드러내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분명 배가 고플 터였다. 지호는 순간적인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아귀들과 정면으로 맞붙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세 마리라면 더욱 그랬다.

심장이 발악하듯 뛰었다. 지호는 손도끼를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침착해, 침착해라. 지호.’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호흡을 고르고, 시야에 들어오는 아귀들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녀석들은 생각보다 느슨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먹잇감을 찾느라 경계심이 흐트러진 틈을 노릴 수 있다면…

“크르르르… 컥!”

그때였다. 한 마리의 아귀가 진열대 너머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듯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순간, 지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쓰러진 선반 아래, 먼지가 두껍게 앉은 통조림 캔 더미였다.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식량이었다.

다른 두 마리의 아귀들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녀석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지호는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음을 깨달았다. 저 통조림들은 무조건 확보해야만 했다. 그는 손도끼를 든 채 진열대 뒤에서 튀어나왔다.

“이 빌어먹을 짐승들아!”

지호의 고함에 아귀들은 순간 움찔했다. 녀석들의 텅 빈 눈동자가 지호를 향했다. 그들은 마치 거미처럼 기괴하게 허리를 꺾으며 순식간에 지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세 마리의 아귀들이 동시에 포효하며 달려오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악취가 훅 끼쳐왔다.

지호는 망설이지 않았다. 가장 선두에 선 아귀를 향해 손도끼를 휘둘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귀의 어깨에 도끼날이 박혔다.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렸다. 그러나 쓰러지지 않았다. 변이된 육체는 고통에 무뎠다. 아귀는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러 지호의 얼굴을 노렸다.

지호는 간발의 차이로 몸을 숙여 공격을 피했다. 서늘한 바람이 그의 뺨을 스쳤다. 뒤이어 달려드는 또 다른 아귀가 그의 다리를 물려고 달려들었다. 지호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발로 녀석의 머리를 걷어찼다. ‘쿵!’ 아귀는 그로테스크한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하지만 세 번째 아귀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호의 옆구리를 향해 쇄도했다. ‘크아악!’ 지호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옆구리에 강한 충격을 느꼈다. 찢어진 옷 사이로 살이 긁히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는 순간 휘청거렸지만,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 씨발…!”

고통 속에서도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옆구리를 붙잡고 한 팔로 손도끼를 휘둘렀다. 녀석의 안면을 향해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콰직!’ 뼈 부러지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아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제야 지호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나는 해치웠다. 이제 둘.

쓰러진 아귀를 향해 손도끼를 박아 넣은 채, 지호는 남아있는 두 마리를 노려봤다. 아까 어깨에 도끼날이 박혔던 아귀는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었고, 발에 차였던 녀석은 다시 기어오고 있었다. 이대로는 불리했다. 지호는 주위를 살폈다. 눈에 들어온 것은 무너진 선반과 그 뒤에 엉망으로 널브러진 철제 쇼핑카트들이었다.

지호는 재빨리 쓰러진 아귀에게서 손도끼를 빼내어 다시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는 첫 번째 아귀를 향해 달려들었다. 녀석의 어깨에 박혔던 상처가 깊었던 탓에 움직임이 둔했다. 지호는 녀석의 다리를 향해 손도끼를 휘둘렀다. ‘푹!’ 아귀의 무릎이 꺾이며 녀석은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 순간, 지호는 녀석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쿵!’ 끔찍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다 이내 멈췄다.

두 마리. 이제 한 마리 남았다.

뒤늦게 달려오던 마지막 아귀는 동료들의 죽음을 본 듯 잠시 주춤했다. 녀석의 눈빛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지호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제 지호의 눈에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닌, 죽음의 결기가 서려 있었다.

지호는 아귀가 쇼핑카트 더미 근처로 오기를 기다렸다. 녀석이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는 있는 힘껏 가장 위에 얹혀 있던 철제 카트를 발로 차 밀어냈다. ‘크와앙!’ 굉음과 함께 카트가 아귀를 덮쳤다. 녀석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카트 더미에 깔려 버둥거렸다.

지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손도끼를 높이 치켜들고 달려가, 카트 사이에 끼여 허우적거리는 아귀의 머리를 향해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파직!’ 녀석의 몸이 축 늘어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지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옆구리의 상처에서는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는 아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주변은 정적에 휩싸였다. 쓰러진 아귀들의 시체와 뒤엉킨 카트, 그리고 그 너머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통조림 캔 더미만이 지호를 맞이했다.

“하아… 하아… 살았군.”

지호는 겨우 그 말을 내뱉고 주저앉았다. 손도끼를 쥔 손은 덜덜 떨렸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의 눈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마침내 찾은 식량에 대한 희열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통조림 캔 더미로 향했다. 먼지를 털어내자 빛바랜 라벨이 드러났다. 콩 통조림, 참치 통조림… 그리고 옥수수 통조림. 지호는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배낭에 담았다. 적어도 며칠은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배낭을 메고 폐허가 된 상점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은 아까보다 훨씬 가벼웠다. 옆구리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살아남았다. 오늘도, 그는 이 끔찍한 세상에서 기어코 살아남았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잿빛 도시 위로, 지호의 작은 그림자가 홀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의 등 뒤로, 죽은 도시의 낡은 철골들이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며 미약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지호는 알고 있었다. 이 작은 승리는, 내일 다시 시작될 처절한 생존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