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고요한 미소

**1화. 스며드는 빛, 스러지는 그림자**

햇살이 창문 가득 쏟아져 들어오던 시간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거리의 평범한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낡은 벽돌 건물들 사이로 피어나는 이름 모를 들꽃들, 느릿하게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 그리고 작은 철제 간판에 새겨진 ‘고요한 미소’라는 글자. 이곳은 지우의 세상이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공간. 갓 구운 빵 냄새와 은은한 커피 향이 공기 중에 뒤섞여 기분 좋은 안락함을 선사했다. 지우는 앞치마를 단정하게 여미고 주방 안으로 들어섰다. 새벽부터 시작된 작업은 이미 능숙한 손놀림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오늘의 첫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그녀에게 이 작업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꿈이었고, 전부였으며, 어쩌면 삶의 유일한 이유였다.

오븐에서 노릇하게 구워져 나온 에그타르트를 식힘망에 옮기며, 지우는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바삭한 파이지, 촉촉하고 달콤한 속. 한 입 베어 물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감이 밀려오는, 그런 디저트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작은 소망이었다. 모든 디저트에는 그녀의 진심과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손님들이 한 조각의 디저트로 잠시나마 일상의 피로를 잊고 ‘고요한 미소’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 그래서 가게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

“지우야, 벌써 이렇게 만들었어? 대단하다, 정말!”

경쾌한 목소리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서아였다. 어릴 적부터 단짝이었고, 누구보다 지우를 잘 아는 유일한 친구. 밝고 활기찬 성격에 늘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서아는 익숙하게 카운터 안으로 들어와 지우가 만든 에그타르트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휴, 아침부터 무슨 식탐이야.”

지우는 투덜거리면서도 서아를 향해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서아는 한입 베어 물고는 눈을 감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 맛이지! 진짜,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싶다니까. 이러니 내가 네 옆에 딱 붙어 있을 수밖에 없지.”

“빈말도 참. 너 오늘도 일찍 나왔네? 늦잠 잔다고 그렇게 구박하더니.”

“너 걱정돼서 나왔지. 요즘 워낙 바쁘잖아. 어제 밤샘 작업했다며?”

서아는 지우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콕 찌르며 말했다. 지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요즘 좀 무리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최근 작은 동네 잡지에서 ‘고요한 미소’가 소개된 이후로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 기분 좋은 변화였지만, 혼자 모든 걸 감당하기엔 버거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걱정 마. 괜찮아. 오히려 손님들이 많아져서 기쁜 걸.”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마. 그러다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너 쓰러지면 이 고요한 미소는 누가 돌봐?”

서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지우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언제나 지우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서아는 언제나 지우를 응원했고, 지우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고요한 미소’를 열 때도,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용기를 주었던 건 서아였다. 레시피 개발부터 인테리어, 마케팅까지, 서아는 언제나 지우의 옆에서 자신의 일처럼 발 벗고 나서 주었다.

“맞다, 지우야. 나 할 말 있어.”

서아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지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데? 표정이 왜 그래?”

서아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손에 들고 있던 타르트를 내려놓고 지우의 두 손을 맞잡았다.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나, 네 덕분에 좋은 기회를 얻게 됐어.”

“내 덕분이라니? 무슨 소리야?”

“네가 만든 이 디저트들이, 네 진심이, 드디어 세상에 알려질 때가 왔어.”

서아는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녀가 가져온 소식은 놀라운 것이었다. 최근 새로 시작되는 TV 프로그램, <꿈을 굽는 사람들>이라는 전국 규모의 베이킹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우를 추천했고, 지우의 그동안의 이력과 ‘고요한 미소’의 특별한 사연, 그리고 지우의 시그니처 디저트인 ‘별빛 숲 케이크’의 레시피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뭐? 그걸 네 마음대로…?”

지우는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서아에게 레시피를 보여준 적은 있었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갈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자신은 그저 이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었을 뿐, 경쟁이나 유명세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우야, 화내지 마. 다 널 위한 거야. 너도 알잖아. 네 디저트가 얼마나 특별한지. 이대로 이 작은 동네에 묻히기엔 너무 아깝다고. 그리고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내가 제일 잘 알잖아. 넌 성공할 자격이 있어!”

서아는 지우의 두 손을 더욱 꽉 잡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확신과 열정이 가득했다. 서아의 말은 언제나 마법 같았다. 지우의 마음속 불안과 망설임을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하지만 난… 경쟁 같은 거 싫어.”

“그냥 네가 늘 하던 대로 하면 돼. 넌 최고니까. 생각해 봐, 지우야. 네가 우승하면 ‘고요한 미소’가 얼마나 커질지. 네 꿈이었잖아. 더 많은 사람에게 네 디저트를 맛보게 해주고 싶다던 거.”

서아의 설득은 거침없었다. 그녀는 ‘고요한 미소’가 확장되는 미래, 지우가 더 큰 무대에서 빛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보였다. 지우의 마음속에서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내 디저트가, 내 꿈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 프로그램, 내가 아는 피디님이 진행하는 거라 조금 유리한 점도 있어. 네가 제출한 ‘별빛 숲 케이크’ 레시피도 반응이 엄청 좋았대. 아마 넌 바로 본선 진출 확정일 거야.”

서아는 지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활짝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언제나처럼 지우를 안심시켰다. 믿을 수 있는 친구의 든든한 지원. 지우는 결국 서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서아는 언제나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었으니까. 이번에도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거야. 그렇게 지우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꿈을, 가장 믿었던 친구의 손에 맡겼다.

며칠 후, 프로그램 제작진으로부터 지우에게 연락이 왔다. 예비 오디션 없이 바로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서아의 말대로였다. 지우는 믿기지 않는 마음에 서아에게 전화를 걸었고, 서아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소리 질렀다.

“봐! 내 말이 맞았지? 너 정말 대단해! 이제 네 꿈을 펼칠 시간이야!”

지우는 설렘과 동시에 부담감을 느꼈다. 본선에 올라가려면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해야 했다. 기존의 ‘별빛 숲 케이크’는 오직 ‘고요한 미소’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함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래서 지우는 밤낮으로 레시피 연구에 매달렸다. 새로운 재료를 조합하고, 맛을 실험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서아는 늘 지우의 곁을 지켰다. 시식도 해주고, 조언도 해주고, 지친 지우에게 농담을 건네며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특히, 지우의 할머니가 물려주신 오래된 레시피 노트를 뒤적이다 발견한, 빛바랜 페이지 속에서 영감을 얻은 ‘은하수 티라미수’는 지우의 야심작이 되었다. 밤하늘의 별을 담은 듯한 비주얼과 깊고 부드러운 맛은 모두를 감탄하게 했다. 서아도 이 티라미수를 맛보았을 때, 눈을 반짝이며 극찬했다.

“지우야, 이건 진짜 대박이다! 네 역대급 작품이야! 이걸로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야!”

서아의 칭찬에 지우는 오랜만에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다. 그래, 서아와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녀는 내 가장 든든한 조력자니까.

대망의 본선 경연일. 지우는 떨리는 마음으로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서아가 마지막으로 물 한 잔을 건네며 지우의 어깨를 힘껏 두드려 주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 넌 최고니까. 그냥 네가 늘 하던 대로 하면 돼.”

“고마워, 서아야. 네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

지우는 진심으로 서아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서아는 따뜻하게 웃으며 지우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손길은 언제나처럼 따뜻하고 든든했다.

경연이 시작되고, 지우는 준비한 대로 ‘은하수 티라미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익숙한 손길로 재료를 섞고, 오븐을 조작하고, 섬세하게 데코레이션을 했다. 과정 하나하나에 그녀의 열정과 영혼이 담겼다.

심사위원들의 차례가 다가왔다. 지우는 숨을 죽이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녀의 작품이 심사위원들의 테이블에 놓이고, 그들이 포크를 들었다. 첫 한 입을 맛본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지우는 불안한 예감에 휩싸였다. 무슨 일일까?

마침내 심사위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지우 씨의 ‘은하수 티라미수’는 분명 뛰어난 작품입니다. 하지만…”

심사위원장의 시선이 지우의 뒤편, 다른 참가자를 향했다. 그곳에는 서아가 있었다. 그녀는 지우와 똑같은 앞치마를 입고, 지우와 똑같은 디저트를 들고 서 있었다. ‘은하수 티라미수’. 그것은 서아의 작품이라고 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이미 다른 참가자, 서아 씨가 먼저 제출한 ‘별빛 담은 티라미수’와 거의 흡사합니다. 아니, 사실상 같은 레시피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심사위원장의 말에 지우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서아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서아는 당황한 기색 없이,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소 속에는 지우가 평생 알지 못했던 차가운 이질감이 서려 있었다.

“서… 서아야…?”

지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아는 심사위원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지우 씨는 저의 레시피를 표절한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함께 레시피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서로 영감을 주고받았을 뿐입니다. 다만, 제 이름으로 먼저 제출되었을 뿐이죠.”

그녀의 목소리는 한없이 침착했고, 마치 준비된 대본이라도 읽는 듯 유려했다. 지우의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제야 지우는 모든 것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서아가 왜 그토록 이 프로그램에 자신을 밀어 넣었는지, 왜 ‘별빛 숲 케이크’ 레시피를 먼저 제출했다고 둘러댔는지, 그리고 왜 ‘은하수 티라미수’를 맛보았을 때 그리도 확신에 찬 표정으로 극찬했는지.

“제가 원래 이 ‘별빛 담은 티라미수’로 참가하려 했지만, 지우 씨가 워낙 간절히 나가고 싶어 해서 양보했습니다. 물론, 레시피는 제가 제공하는 조건이었죠.”

서아는 그렇게 말했다. 세상에 밝게 웃던 천진난만한 친구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비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우의 시야가 흐려졌다. 믿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던 ‘고요한 미소’는 사라지고, 차가운 그림자만이 그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건… 복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처절하게, 그리고 잔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