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 도시의 심장
어스름이 깔린 기계 도시, ‘톱니바퀴의 심장’이라 불리는 에테리움은 숨 쉬듯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저녁 여섯 시, 거대한 중앙 시계탑이 묵직한 종소리를 울리자, 미로 같은 골목마다 가스등이 톡, 톡, 소리를 내며 불을 밝혔다. 눅눅한 기름 냄새와 뜨거운 증기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낡은 황동색 건물들 사이로 삐걱이는 비행선이 느릿하게 떠올랐다. 그 아래, 수많은 톱니바퀴와 연결된 도르래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며 도시의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아나는 손에 든 소형 증기 해머를 내려놓았다. 손가락 끝에 묻은 기계유가 번들거렸다. 그녀의 작업실은 도시의 가장 낮은 지층, 매캐한 석탄 연기와 기계음이 끊이지 않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옆 건물 벽에 늘어선 복잡한 파이프와 쉴 새 없이 분출되는 증기뿐. 하지만 그녀는 이곳을 사랑했다. 낡은 작업대 위에는 갖가지 공구와 해체된 기계 부품, 그리고 오래된 황동 나침반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후우, 오늘도 실패군.”
이아나는 고글을 이마 위로 밀어 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앞에는 조립 중이던 소형 비행 부품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핵심 부품인 정밀 증기 분사기의 압력 조절에 계속 문제가 생겼다. 정해진 규격대로라면 완벽해야 했지만, 미묘하게 어긋나는 수치들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언제나 이랬다. 완벽주의자, 그리고 호기심 많고 약간은 외골수인 기계공. 에테리움의 자랑스러운 기술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그녀는 고리타분한 ‘정해진’ 기계공학보다 고대 문명의 유물이나 잊혀진 기술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모두가 증기기관과 톱니바퀴의 세상이 전부라고 믿을 때, 이아나의 눈은 늘 저 너머의 ‘과거’를 향해 있었다.
바로 그때, 작업실 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등 뒤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이아나가 고개를 돌렸다. 낡은 가죽 코트를 걸친 우편 배달부 로봇이 덩치 큰 철제 상자를 낑낑거리며 들고 서 있었다. 그의 렌즈 눈은 붉은빛으로 깜빡이며 그녀를 스캔했다.
“수취인 이아나. 발송인 불명. 특별 배송, 서명 요함.”
로봇의 기계음은 늘 그랬듯 감정 없이 딱딱했다. 이아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에게 물건을 보낼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특별 배송’이라니.
“나? 무슨 상자인데?”
그녀가 다가가 상자를 살펴보았다. 겉은 낡았고, 표면에는 희미하게 고대 문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현대 에테리움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마치 수천 년 전 유물에서나 볼 법한 형태였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로봇이 물었다.
“아니, 괜찮아. 여기 서명할게.”
이아나는 잉크 펜을 받아들고 서명했다. 로봇은 상자를 작업실 중앙에 내려놓고는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육중한 금속 발소리가 멀어지고, 다시 작업실은 기계의 미미한 웅웅거림과 증기 끓는 소리만 남았다.
그녀는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아 손으로 표면을 쓸어보았다. 나무와 금속이 혼합된 듯한 재질은 차가웠지만, 묘한 온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잠금장치는 현대의 자물쇠와는 달랐다. 복잡한 톱니와 맞물림쇠, 그리고 희미하게 빛나는 보석 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단순한 물리적 힘으로는 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건… 고대 문명의 봉인 방식인데?”
이아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상자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은 망설임 없이 복잡한 잠금장치의 구조를 분석했다. 작은 렌치를 꺼내 섬세한 나사못을 풀어내고, 미세한 압력으로 톱니바퀴들을 조작했다. 그녀의 눈은 번뜩였고, 집중한 얼굴에는 기계유 얼룩마저 예술처럼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지막 맞물림쇠가 ‘딸깍’ 하는 소리를 내며 풀리자, 상자의 뚜껑이 천천히 열렸다. 안에는 낡고 두툼한 가죽으로 엮인 책 한 권과, 정체불명의 금속 조각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를 덮고 있는, 손바닥만 한 천 조각.
이아나는 천 조각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마른 진흙과 알 수 없는 광물 가루가 묻어 있었다. 천을 걷어내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낡은 가죽 책이었다. 표지에는 고대 에테리움어로 보이는 문자가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녀가 해독할 수 있는 언어는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중요한 기록임을 직감했다.
그녀는 책을 옆으로 밀어두고 그 아래 있는 금속 조각들을 꺼냈다. 녹슨 황동 조각, 흑철, 그리고 알 수 없는 푸른빛을 띠는 광물.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정교하게 세공된 나침반이었다. 현대의 나침반처럼 바늘이 흔들리는 대신, 중앙에 박힌 수정 구슬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또다시 알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그냥 장식품이 아니야.”
나침반을 손에 쥐자, 수정 구슬의 빛이 더 선명해졌다. 그리고 나침반의 바늘이 천천히, 그러나 확고하게 한 방향을 가리켰다. 도시의 지하를 향하는 듯한 방향이었다. 이아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다시 가죽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렵게 몇몇 단어를 해독하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깊은 아가리… 잊혀진 뿌리 도시… 세계의 심장…”
책에 적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에테리움 지하 깊숙한 곳에, 현 문명보다 훨씬 오래된 고대 도시의 흔적이 잠들어 있다는 기록이었다. 수천 년 전, 지상에 거대한 재앙이 닥쳤을 때, 살아남은 자들이 지하 깊숙이 숨어들어 새로운 문명을 건설했다는 전설. 그러나 그 문명마저 시간 속으로 사라졌고, 지상으로 다시 나온 후손들은 그 존재를 잊었다는 이야기였다.
이아나의 손에 든 나침반이 미약하게 떨렸다. 수정 구슬의 빛은 이제 심장이 뛰는 것처럼 명멸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찾아달라고 외치는 듯했다.
“이건 단순한 전설이 아닐지도 몰라.”
그녀는 일어섰다. 작업실은 여전히 기계음으로 가득했지만, 그녀의 귀에는 먼 과거의 메아리가 들리는 듯했다. 잊혀진 고대 문명, 지하 깊숙이 잠들어 있는 비밀. 오랫동안 그녀를 사로잡았던 막연한 호기심이 이제는 뚜렷한 목표가 되어 그녀의 심장을 격렬하게 울렸다.
“뿌리 도시… 세계의 심장이라니.”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 그리고 책 속의 희미한 지도 조각. 이아나는 낡은 고글을 고쳐 쓰고, 작업대 위의 모든 기계 부품들을 뒤로했다. 그녀의 눈빛은 비행선이 떠오르는 저녁 하늘의 별처럼 빛났다.
“찾아가야겠어. 내가 직접.”
모험의 서막이, 에테리움의 깊은 지하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