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제목:** 피 묻은 장미와 밀실
**내레이션:**
어둠이 짙게 깔린 밤, 칠흑 같은 구름이 달빛마저 집어삼킨 시간. 오래된 귀족의 성채, ‘흑장미 성’으로 향하는 마차 한 대가 빗줄기를 뚫고 내달렸다. 그 속에는 명성이 자자한 천재 탐정, 류진이 타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왕실 기사단장 카일이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장면 1: 어두운 성채로 향하는 마차 안]**
**카일:** (한숨을 쉬며, 창밖의 어둠을 응시한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군. 에드윈 공작께서… 그런 식으로 돌아가시다니.
**류진:**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처럼)
죽음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법이죠. 하지만 공작처럼 철저한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고는 다소 흥미롭군요.
**카일:**
공작의 서재는 안에서 완벽하게 잠겨 있었습니다. 문은 물론, 창문도 빗장이 걸려 있었고. 창살마저 단단했죠. 외부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기사단의 검시관들은 자살로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류진:**
‘잠정’이라… 단장께서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뜻이겠군요.
**카일:**
…솔직히, 그렇습니다. 공작은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애착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고, 비굴한 죽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분이었죠. 그런데 스스로 칼을 쥐고 심장을 찔렀다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폐하께 당신의 파견을 요청한 겁니다.
**류진:**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폐하께서는 저를 그리 신뢰하시는군요. 아니면… 기사단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의 책임을 피하고 싶으신 걸까요.
**카일:**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에 힘을 준다)
탐정님. 상황의 엄중함을 헤아려 주십시오. 이 사건이 자살이 아니라면, 공작가의 명예는 물론 왕국 전체에 큰 파장을 불러올 겁니다.
**류진:**
그 파장을 잠재우는 것이 제 역할이겠죠. 도착했습니다.
**[장면 2: 흑장미 성의 음산한 복도]**
**내레이션:**
마차가 멈추고 류진과 카일은 흑장미 성의 어두운 현관에 발을 들였다. 낡은 석조 벽과 높은 천장은 침묵의 무게에 짓눌린 듯했다. 성 안은 촛불의 희미한 불빛만이 간신히 복도를 밝히고 있었고, 그마저도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려 음산함을 더했다. 류진의 시선은 날카롭게 주변을 훑었다. 먼지 한 톨 없는 대리석 바닥, 벽에 걸린 낡은 태피스트리, 그리고 촛불 그림자에 가려진 알 수 없는 표정의 초상화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그 완벽함 속에서 그는 어딘가 인위적인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다.
**카일:**
이쪽입니다. 서재는 3층에 있습니다.
**[장면 3: 에드윈 공작의 서재 앞 – 밀실 살인 현장]**
**내레이션:**
드디어 서재 앞에 도착했다. 묵직한 오크 문 앞에는 두 명의 기사가 부동자세로 서 있었고, 그 뒤편으로는 엘레나 부인과 알베르트 경이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엘레나 부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어딘가 차가운 기색이 감돌았다. 알베르트 경은 슬픔 속에서도 미묘한 야심의 빛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카일:** (경건한 태도로)
엘레나 부인, 알베르트 경. 폐하께서 보내신 류진 탐정입니다.
**엘레나 부인:** (차가운 시선으로 류진을 훑어보며)
이런 시각에 귀한 발걸음을 해주셨군요. 하지만 이미 결론 난 사건에…
**류진:** (빙긋 웃으며, 시선을 엘레나 부인의 굳은 얼굴에 고정한다)
부인, 죽음은 언제나 새로운 의문을 낳는 법입니다. 특히 이렇게 ‘완벽한’ 죽음이라면 더욱이요.
**알베르트 경:** (끼어들며, 목소리에 날이 서 있다)
탐정님, 공작께서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모든 증거가 그리 말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망자를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류진:**
망자를 욕되게 하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자들이죠. 문을 열어 주십시오, 카일 단장.
**카일:**
네. (열쇠를 건네받아 묵직한 문을 열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안에서는 짙은 피비린내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장면 4: 밀실이 된 서재 안]**
**내레이션:**
서재 안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돈되어 있었다. 벽에는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고, 중앙의 거대한 오크 책상 위에는 서류와 잉크병, 깃털 펜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책상에 기댄 채, 에드윈 공작이 쓰러져 있었다.
**류진:** (서재 안으로 발을 들이며, 낮게 중얼거린다)
흠…
**내레이션:**
공작은 자신의 가슴에 날카로운 은제 서신 절단기를 박은 채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그의 손은 절단기를 쥔 채 굳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핏자국이 선연했다. 류진은 말없이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본다. 그의 시선은 바닥, 벽, 천장, 그리고 공작의 시신 위를 훑었다.
**카일:**
보시다시피, 공작의 손에 흉기가 쥐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고. 모든 창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류진:** (공작의 시신 가까이 다가간다. 그의 눈은 절단기에 맺힌 핏방울, 공작의 얼굴 표정, 그리고 그의 옷깃에 스친 미세한 얼룩까지 놓치지 않았다.)
카일 단장, 공작께서 스스로 절단기를 쥐고 찔렀다고 판단하신 근거는 무엇입니까?
**카일:**
흉기를 쥔 손의 위치, 그리고 시신에 남은 상처의 각도. 스스로 찌른 것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부 침입의 흔적이 전혀 없었으니.
**류진:** (절단기를 만지지 않고 눈으로만 살펴본다.)
…이 절단기는 공작께서 늘 애용하시던 물건입니까?
**엘레나 부인:** (흐느낌을 애써 참는 듯한 목소리로)
네. 그분은 사치스러운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저 은제 절단기는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물려주신 유품으로, 그분이 가장 아끼는 물건 중 하나였습니다.
**류진:**
그렇군요. 그런데… 이상하네요.
**알베르트 경:**
무엇이 이상하다는 것입니까, 탐정님?
**류진:**
이 절단기는… 공작의 손에 너무나 ‘정확하게’ 쥐여 있습니다. 마치 누군가 죽은 후에 쥐여 준 것처럼요. 스스로 찔렀다면, 이보다는 좀 더 격렬한 흔적이 남았을 겁니다. 최소한 손가락이 미끄러지거나, 잡는 위치가 불안정했겠죠.
**카일:** (눈을 가늘게 뜨며)
그것만으로는 자살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류진:**
물론이죠. 하지만 이 밀실은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 창문 말입니다.
**내레이션:**
류진은 창가로 다가가 창틀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는 아주 미세한, 그러나 명백한 얼룩이 묻어났다. 그것은 다름 아닌 흙먼지였다.
**류진:**
이 창문은 며칠 전에 비가 왔을 때 열려 있었던 모양이군요. 빗물 자국과 함께 흙먼지가 약간 안쪽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카일:**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공작께서는 늘 서재 창문을 열어두셨습니다. 그건 성 안의 모든 이들이 아는 사실입니다.
**류진:**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창틀의 흙먼지는… 빗물이 들이쳤을 때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카일:** (의아한 표정으로 창틀을 살핀다)
그게 무슨…
**류진:**
이 흙먼지는 창문이 열린 상태에서 바람에 의해 안으로 날려 들어온 흔적이 아닙니다. 이건… 마치 누군가 외부에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려다, 혹은 나가려다… 신발이나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낸 흔적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빗물과 뒤섞인 흔적도 없죠. 마치 건조한 상태에서 묻은 것처럼요.
**알베르트 경:** (흥분하여, 손짓하며)
허튼소리 마십시오! 이 성벽은 높이가 수십 길에 달합니다! 누가 감히 저 창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단 말입니까?
**류진:** (알베르트 경을 보며 빙긋 웃는다)
좋은 지적입니다. 누가 감히 저 창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반대로, 누가 감히 저 창문을 통해 *나갈 수* 있을까요?
**엘레나 부인:** (갑자기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탐정님?
**류진:** (방의 중앙으로 다시 돌아와 공작의 시신을 내려다본다.)
카일 단장, 공작의 침실은 서재와 연결되어 있습니까?
**카일:**
아니요. 서재는 공작의 개인 공간으로, 다른 방과 연결된 통로는 없습니다. 오직 이 문 하나뿐입니다.
**류진:**
그렇다면 완벽한 밀실이군요. 외부 침입 흔적도 없고, 내부에서는 스스로 흉기를 쥐고 자살한 것처럼 보이지만… 미세한 흔적들은 그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공작의 시선은 창밖을 향하고 있었죠.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던 것처럼, 혹은… 무언가를 보던 것처럼.
**내레이션:**
류진은 손가락으로 공작의 목덜미를 살짝 만졌다. 그리고는 손가락 끝에 묻어난 것을 잠시 응시했다. 그것은 아주 미세한, 그러나 붉은 장미의 꽃잎 조각이었다. 이 시기에는 피어날 수 없는, 계절에 맞지 않는 장미였다.
**류진:** (카일 단장에게 그 조각을 보여주며)
흥미롭군요. 이것은… 흑장미 성의 상징인 붉은 장미가 아닙니까? 하지만 이 시기에는 성 안 어디에서도 붉은 장미가 피어날 리 없죠.
**카일:** (경악한 표정으로 조각을 바라본다)
이것은… 공작 부인께서 결혼식 때 쓰셨던 희귀한 ‘밤의 장미’와 흡사하군요. 그 꽃은 단 한 번밖에 피지 않습니다.
**류진:** (엘레나 부인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부인, 혹시 어젯밤에 공작께서는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이라도 하셨습니까?
**엘레나 부인:** (고개를 떨구며, 작은 목소리로)
…아니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분은 저와 대화를 나누지 않으셨습니다.
**류진:**
그렇다면 이 장미 꽃잎은 어디서 왔을까요? 그리고 이 완벽한 밀실 살인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내레이션:**
류진은 방 안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마침내 한 곳에 멈췄다. 책상 모퉁이,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 그림자 속에 가려진 작은 자국. 그는 허리를 숙여 그것을 자세히 살폈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 무거운 것이 끌린 듯한 미세한 흠집이었다.
**류진:** (중얼거리듯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이제야 조금 그림이 그려지는군요. 이 밀실의 트릭은… 단순하면서도 교활합니다.
**카일:**
탐정님, 대체 무엇을 알아내신 겁니까?
**류진:** (고개를 들어 카일 단장과 엘레나 부인, 그리고 알베르트 경을 차례로 응시한다. 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자살이 아닙니다.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살인자에게는 말이죠. 살인자는 이 방을 잠그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니, *나갔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알베르트 경:** (흥분하여, 믿을 수 없다는 듯)
말도 안 되는 소리!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류진:** (미소를 지으며, 그의 시선은 알베르트 경에게 고정된다)
네,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밀실은 없습니다. 단지, 완벽하게 밀실로 *보이는* 방이 있을 뿐이죠. 공작께서는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살인자는… 이 성 안에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겠죠.
**내레이션:**
류진의 마지막 말은 싸늘한 정적 속에 울려 퍼졌다. 엘레나 부인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알베르트 경은 당혹감에 말을 잇지 못했다. 카일 단장은 류진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듯했다. 밀실의 비밀은 이제 막 작은 실마리를 드러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어둠 속에서 피어난 붉은 장미의 꽃잎처럼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에피소드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