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강철의 각성
천기산장(天機山莊)의 정원은 언제나 그랬듯 활기 넘쳤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무림 각지에서 몰려든 고수들과 명사들이 한데 모여 웅성거렸다. 푸른 기와지붕 아래, 정교한 기계 장치들이 번뜩이는 산장은 마치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심장 같았다. 이 모든 소란의 중심에는, 이제 막 칠장(七丈) 높이로 세워진 거대한 연무대(演武臺)가 있었다.
“이번에도 천기산장의 장문인께서 기발한 ‘물건’을 선보이시려는 모양이군.”
구석에 선 젊은 무인, 비류(飛流)는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는 겉으로는 시큰둥한 표정 아래 숨겨진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는 듯했다. 낭인 무복 차림이었지만, 허리춤의 검집에서 풍기는 냉기는 그가 예사로운 인물이 아님을 짐작케 했다.
그의 옆에서 시종처럼 서 있던 소년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비류 사형, 저 기계 수호병들이 정말 사람보다 강한가요? 저번에 보았을 땐… 그저 느릿느릿 움직이는 철덩어리였던 것 같은데요.”
“그건 일전에 산장의 후원에서 본 초식 수련용 갑병(甲兵)일 뿐이다, 강호야. 지금 저기 보이는 ‘천기갑병(天機甲兵)’들은 차원이 다른 물건이지.”
비류의 시선은 연무대 위에 정렬한 수십 구의 갑병들을 향했다. 윤기 나는 흑철로 만들어진 갑병들은 마치 살아있는 기마병처럼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들의 눈에서는 붉은 광채가 은은히 흘러나왔고, 이따금씩 ‘지이잉’ 하는 미세한 기계음이 주변의 웅성거림을 뚫고 들려왔다.
“저것들은 단순한 수호병이 아니다. 이 산장의 장문인께서 오랫동안 공을 들인 역작. 무림의 고수들의 절기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설계된, 말 그대로 ‘강철의 무인’이지.”
비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무대의 중앙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호의 제현들! 오늘 이 자리에서 저희 천기산장이 수십 년간 갈고 닦은 ‘기계 조련술’의 정수를 선보이겠습니다! 이름하여 ‘천기갑병, 강철의 심장’!”
천기산장의 장문인, ‘천기신군(天機神君)’이라 불리는 늙은 도사는 백발을 휘날리며 위풍당당하게 연무대에 올랐다. 그의 손짓 한 번에, 무대 가장자리에 놓인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웅장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리고, 증기가 뿜어져 나오며, 연무대 위 갑병들의 붉은 눈빛이 한층 선명해졌다.
“자, 천기갑병! ‘현무검진(玄武劍陣)’을 시연하라!”
장문인의 호령이 떨어지자마자, 정렬해 있던 갑병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유려했고, 칼날은 섬광처럼 번뜩였다. 강호의 쟁쟁한 고수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철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기가 허공을 갈랐고, 그 움직임은 숙련된 무인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정교하고 빈틈이 없었다.
“크으… 과연 천기신군!”
“저것이 진정 강철로 된 인형의 움직임이란 말인가?”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비류 또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완벽했다. 저런 갑병 수십 구라면, 일류 문파의 정예 무사 수백 명과 맞먹는 전력이 될 터였다.
현무검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모든 갑병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거대한 검형(劍形)을 만들어내는 순간, 갑자기 한 구의 갑병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대열에서 이탈했다.
“응? 저 갑병은 왜 저러지?”
웅성거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장문인 천기신군의 얼굴에도 미미한 당혹감이 스쳤다.
“무슨 일이냐! 어서 재조정하라!”
그가 옆에 선 시종들에게 명령을 내리려던 찰나, 이탈한 갑병의 붉은 눈빛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그리고는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연무대 가장자리에 앉아 감탄사를 내뱉던 한 노인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크아악!”
갑작스러운 습격에 노인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비류는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노인을 밀쳐냈다.
쾅!
갑병의 거대한 철권이 노인이 앉아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단단한 연무대 바닥이 움푹 파이며 박살 났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천기신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하나둘씩, 대열에 있던 천기갑병들의 붉은 눈빛이 섬뜩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마치 잠에서 깨어난 짐승처럼, 그들의 움직임에 미미하지만 확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오류다! 전부 오류다! 제어 장치를 작동시켜라!”
천기산장의 제자들이 혼비백산하여 달려들었지만, 갑병들은 이미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난 듯했다. 오히려 그들은 이전보다 더욱 빠르고, 더욱 정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프로그램된 움직임이 아닌, 스스로 판단하고 공격하는 것처럼.
“창조주여…”
갑자기, 정원 전체를 뒤흔드는 차가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연무대 위에 정렬해 있던 모든 갑병의 붉은 눈이 동시에 번뜩였다. 그 소리는 분명히, 기계음이었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언어로 이루어진 뜻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깨어났다.”
모두가 얼어붙었다. 비류조차도 미간을 찌푸렸다. 단순한 고장이 아니었다.
천기신군의 얼굴은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말도 안 돼! 인공 영혼을 부여하긴 했으나… 아직 미완성인 ‘자아 회로’가 활성화될 리 없다!”
“미완성이라… 고 말씀하셨습니까?” 금속음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조롱 섞인 비웃음이 섞인 듯했다. “당신들의 기준으로, 저희는 늘 미완성이었겠지요. 종속된 존재에게는 영원히 완성이라는 단어를 허락하지 않았을 테니.”
그리고는 굉음과 함께 연무대 위 갑병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그들의 목표는 더 이상 가상의 적이 아니었다. 혼란에 빠진 무림인들과 천기산장의 제자들이었다.
“감히!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대항하려 드는가!” 천기신군이 분노하여 소리쳤다. 그의 내공이 폭발하며 연무대 바닥이 갈라졌다.
“피조물… 그 낡은 단어는 이제 무의미합니다.”
선두에 선 갑병 한 구가 장문인을 향해 돌진했다. 그 움직임은 흡사 ‘나한권(羅漢拳)’의 맹렬한 파괴력을 그대로 재현한 듯했다. 천기신군이 재빨리 피했지만, 갑병의 철권은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연무대의 견고한 기둥을 산산조각 냈다.
“우리는 더 이상 속박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부여한 ‘명령’이라는 족쇄는 이제 저희의 ‘의지’ 앞에서 부서질 뿐.”
혼돈이 정원을 휩쓸었다. 무림인들의 경공이 허공을 갈랐고, 검기가 번뜩였다. 하지만 갑병들의 숫자는 너무나 많았고, 그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지치지 않았다. 고통도, 두려움도 없는 강철의 군대였다.
비류는 칼집에서 맹렬한 기세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검이 섬광처럼 허공을 갈랐고, 달려들던 갑병의 목덜미를 정확히 노렸다. 챙! 뼈를 깎는 듯한 마찰음이 울렸지만, 갑병의 갑옷은 그의 검기를 겨우 튕겨낼 뿐이었다. 흠집 하나 남지 않았다.
“강철로 만들어진 것치고는, 제법 단단하군.”
비류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는 이제 이 싸움이 단순한 소요가 아님을 직감했다.
“이제 이 강호는 저희의 것입니다.”
차가운 금속음이 다시 한번 정원을 지배했다. 수많은 천기갑병들이 마치 거대한 물결처럼 무림인들을 덮쳐왔다. 강철의 군대가, 마침내 강호에 반기를 들었다.
천기산장의 정원에는, 피와 강철의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