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의 달콤한 반란
### 1장. 굶주린 도시의 작은 불씨
볕 좋은 초여름 날, 제국의 수도 율리온의 뒷골목 시장은 언제나처럼 시끌벅적했다. 온갖 노점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과 냄새가 뒤섞여 희뿌연 안개처럼 피어올랐고, 흥정하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짐수레 바퀴 삐걱이는 소리가 하나의 거대한 합창처럼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활기 속에는 늘 메마른 긴장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언제든 들이닥칠지 모를 제국의 칼날 같은 징수대 때문에.
“자자! 아삭하고 고소한 보리전 드세요! 오늘 아침 갓 빻은 보릿가루로 지져낸, 황제 폐하도 울고 갈 그 맛!”
라온은 큼지막한 무쇠 프라이팬 위에서 지글거리는 보리전을 뒤집으며 능청스레 외쳤다. 기름에 튀겨지듯 익어가는 전에서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고, 금세 그녀의 노점 앞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투박하지만 찰진 손맛은 이 시장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그녀의 통통 튀는 입담은 덤이었다.
“아가씨, 오늘도 맛이 기가 막히겠구먼!”
“그럼요, 아저씨! 제 손맛이 어디 가겠어요? 드셔 보시고 기운 내서 오늘도 제국 놈들 등골 빼먹어야죠!”
라온은 활짝 웃으며 갓 구워낸 보리전 한 장을 노릇한 종이에 싸서 내밀었다. 그러다 문득, 시장 입구 쪽에서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왁자지껄하던 소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고, 사람들이 움찔하며 서로를 밀치듯 옆으로 비켜서기 시작했다. 라온의 등골을 차가운 무언가가 스쳤다.
올 것이 왔다.
“비켜라! 제국 징수대 행차다!”
육중한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쇠사슬처럼 길게 늘어서 시장 안으로 진입했다. 그들 앞에는 새빨간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위세를 떨치며 섰다. 그들의 허리춤에는 은장도가 번뜩였고, 거만한 얼굴에는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바로 제국의 피를 빠는 거머리, ‘징수관’들이었다.
“오늘부터 새로운 황제령이 내려졌다! 모든 물품의 징수율이 기존의 두 배로 인상된다! 불응 시, 제국법에 따라 엄벌에 처할 것이니라!”
징수관 중 하나가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낭독하자, 시장에는 절망적인 탄식과 작게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가 번졌다. 두 배라니. 이미 없는 살림에 세금과 징수품을 바치다 보면 끼니조차 잇기 힘든 판이었다.
“이봐, 노인장! 그 곡식 자루 내놓으시오!”
“이것마저 가져가면, 우리 아이들은 무얼 먹고 삽니까! 제발, 제발요…!”
한 늙은 농부가 겨우 지켜내고 있던 쌀자루를 빼앗으려는 징수관에게 매달리며 애원했다. 늙고 주름진 얼굴에는 눈물과 흙먼지가 뒤섞여 흐렸다. 그러나 징수관은 냉정했다. 쌀자루를 빼앗아 걷어차 버렸고, 바닥에 쏟아진 쌀알들은 흙탕물 위로 흩뿌려졌다.
라온의 주먹이 저절로 꽉 쥐어졌다. 화르륵,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치솟았다. 저런 광경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이보시오, 징수관 양반!”
라온의 목소리에 주변이 싸늘해졌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저 병사들에게 대들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징수관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라온을 돌아봤다.
“네년이 감히 누구에게 말을 거는 것이냐?”
라온은 프라이팬을 내려놓고 앞으로 나섰다. 허리에 양손을 얹고 삐딱하게 서서 징수관을 노려봤다.
“말을 거는 게 아니라, 따지는 겁니다! 보시오, 저 어르신은 평생 뼈 빠지게 일해서 겨우 얻은 곡식입니다. 그걸 다 빼앗아가면 뭘 먹고 살라는 겁니까? 황제 폐하도 백성들이 굶어 죽는 꼴을 원하시진 않을 텐데요!”
징수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감히 일개 평민 계집이 자신에게 대든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이다.
“건방진 것! 황제 폐하의 뜻을 네년 따위가 어찌 안단 말이냐! 당장 끌어내라!”
병사들이 무례하게 라온을 향해 다가왔다. 라온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피식, 비웃음까지 흘렸다.
“황제 폐하께서 들으시면 노발대발하실 겁니다. 당신들 같은 자들이 폐하의 이름을 팔아 백성들의 피를 빠는 것을 보신다면 말이죠. 혹시 압니까? 폐하께서 당신들 목을 치라고 명하실지!”
그녀의 말에 징수관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이 망측한 계집이! 당장 끌고 가 처형대에 매달아라!”
두 명의 병사가 라온의 팔을 붙잡으려 달려들었다. 라온은 날렵하게 몸을 비틀어 그들을 피했다. 그리고는 휙, 손을 뻗어 자기 노점 옆에 놓여 있던 재료 바구니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바로, 방금까지 보리전을 부치던 기름투성이 프라이팬이었다.
“덤벼라, 이 못된 놈들아! 오늘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 한 번 보자!”
라온이 프라이팬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위협적인 기름 냄새와 그녀의 당돌한 기세에 병사들은 잠시 주춤했다. 그 순간, 시장통 저편에서 또 다른 소동이 벌어졌다.
“저놈을 잡아라!”
누군가 외치자, 보따리 하나를 든 젊은 사내가 병사들을 피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능숙하게 인파를 헤치고, 노점 사이를 곡예하듯 뛰어넘었다. 병사들이 그 뒤를 쫓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라온은 그 광경을 보며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했다.
“이보시오, 거기 도망치는 양반!”
그 사내가 라온의 노점 앞을 지나치려는 찰나, 라온이 프라이팬을 든 채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낚아챘다. 사내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고, 라온은 그를 자신의 방패 삼아 징수관들 앞을 가로막았다.
“이 자가 제국 징수대에게 감히 저항하는 자의 우두머리입니다! 제가 잡았습니다!” 라온은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병사들과 징수관들이 순간 멈칫했다. 그들이 당황한 사이, 라온은 붙잡은 사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가만히 있어, 이 멍청아! 안 그럼 너도 나도 저승길이야!”
사내는 라온의 돌발 행동에 어이없다는 듯 굳어 있었다. 그의 눈은 검고 깊었으며, 날카로운 턱선과 굳게 다문 입술은 왠지 모르게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허름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태도는 평범한 시장 상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징수관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그래봤자 네년의 계략인 것을 모를 줄 아느냐? 둘 다 잡아라!”
병사들이 다시 달려들자, 라온은 프라이팬을 높이 치켜들었다.
“덤벼라! 오늘 기름 범벅이 될 때까지 싸울 줄 알아라!”
그녀가 든 프라이팬이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병사들이 잠시 망설이는 사이, 라온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붙잡고 있던 사내의 팔을 휙 잡아당겨 자기 노점 뒤편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 이 비겁한 징수대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줍시다!”
라온은 사내를 끌고 골목길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사내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라온의 손아귀에 붙들려 저항도 제대로 못하고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의 시선은 자신을 끌고 달리는 작은 여인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녀의 얼굴에는 기묘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골목길은 미로처럼 얽혀 있었고, 라온은 그 길을 눈 감고도 다닐 듯이 능숙하게 헤쳐 나갔다. 좁고 어두운 길을 한참 달린 끝에, 그들은 겨우 병사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둘은 허름한 창고 벽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사내는 라온의 손에서 풀려나자마자 그녀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당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라온은 거친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아… 하아… 무슨 짓이라뇨! 당신을 구해준 겁니다, 이 은혜도 모르는 양반아! 징수대에게 잡혀가서 등짝에 매질이나 당할 뻔한 걸 내가 구해줬다고요!”
사내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날 구해줘? 당신 때문에 오히려 그들에게 더욱 눈에 띄었어. 그리고 그 보따리는…!” 그는 들고 있던 보따리를 내려다봤다. 끈이 풀려 내용물이 흐트러져 있었다. 중요한 서류 뭉치들이었다.
“아이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냥 옷가지나 식량 같은 거 아니었어요?” 라온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사내는 라온을 노려보았다.
“이건… 제국의 중대한 비밀이 담긴 서류야. 당신 같은 자는 절대로 알아서는 안 될.”
라온은 코웃음을 쳤다.
“흥! 제국의 비밀? 뻔하죠 뭐. 또 백성들 등골 빼먹을 계책이겠지. 안 봐도 비디오네요.”
사내는 그녀의 당돌함에 말문이 막힌 듯했다. 그는 이 작은 여인이 자신을 끌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임무까지 방해했다는 사실에 분노와 황당함을 동시에 느꼈다.
“이봐, 꼬맹이.” 그는 차갑게 말했다.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함부로 굴고 있어.”
라온은 양손으로 허리를 짚고 사내를 마주 보았다.
“꼬맹이? 나는 이 시장통에서 ‘골목길 여왕’으로 불리는 라온이야! 당신이야말로 촌뜨기처럼 굴지 마시지! 그나저나… 당신은 누군데 그리 잘난 척이야? 얼굴은 번지르르한데 옷은 허름한 걸 보니, 혹시 귀족 도련님께서 뒷골목 체험이라도 나오셨나?”
사내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닥쳐라.”
그때, 멀리서 희미하게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근처다! 놓치지 마라!”
라온의 눈이 커졌다.
“이런! 빌어먹을 끈질긴 놈들! 이리로 오면 안 되는데…!”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내는 흐트러진 서류를 다시 보따리에 쑤셔 넣으며 라온을 향해 말했다.
“이 모든 소동은 당신 때문이야. 당신은 이제 제국의 눈에 들었어. 평범한 시장 상인으로 살기는 글렀으니, 그 잘난 입으로 앞으로 어떤 짓을 할지 두고 보겠다.”
라온은 그 말에 순간 흠칫했지만, 이내 오기가 발동했다.
“두고 보라구요? 흥! 두고 보시죠! 내가 당신 같은 잘난 척쟁이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서 이 썩어빠진 제국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걸!”
그녀의 눈은 결연하게 빛났다. 사내는 그런 라온을 잠시 응시했다. 무모하고, 경솔하며, 지독하게 시끄러운 여자. 하지만 동시에, 어쩐지 시선을 뗄 수 없는 강렬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병사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라온은 사내의 팔을 낚아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자, 제국의 비밀을 아는 양반! 여기서 잡히면 내일 아침 뉴스 일면을 장식할 겁니다! 일단 나를 따라와요!”
사내는 또다시 라온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는 난생처음 겪는 이 황당한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제국 근위대장 ‘카이젠’. 사람들은 그를 ‘냉혈한 칼날’이라 불렀고, 황제 폐하마저 그 앞에서는 긴장했다. 그런 그가 지금, 시장통 꼬맹이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다니.
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작고 이상한 불씨 하나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거대한 제국의 심장을 뒤흔들 수 있는, 어쩌면 아주 중요한 불씨일지도 모르는.
골목을 질주하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굶주린 도시의 작은 불씨는, 그렇게 불온한 반란의 서막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씨 속에서, 차가운 심장을 가진 남자와 뜨거운 열정을 품은 여인의 달콤한 로맨스가 조금씩 싹트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