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정적은 언제나 균열 속에서 찾아왔다. 두꺼운 강철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저릿한 신음소리, 기계가 끊임없이 공기를 빨아들이는 둔탁한 소음, 그리고 이따금씩 고막을 찢을 듯 울리는 비명소리까지. 모든 소음이 흡수된 듯 고요한 결투장이었다. 잿빛 콘크리트 바닥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핀 조명처럼 떨어지고, 그 안에서 두 명의 인간이 마주 서 있었다. 그들의 등 뒤에는 무수한 시선이 꽂혀 있었다. 절망과 희망, 체념과 갈망이 뒤섞인 수천의 눈동자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하제일 무도대회, 4강전 제1경기!”

굵은 쉰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무대 좌측 상단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지만, 마치 이 좁은 공간 전체가 그 목소리를 울리는 듯했다.
“정파 명문, 화산파의 후예, ‘청운검(靑雲劍)’ 백시조!”
장내는 술렁였다. 백시조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은 세월의 풍파를 견딘 바위처럼 단단했지만, 눈빛만은 맑고 흔들림이 없었다. 허리에 찬 검은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그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주변 공기를 차갑게 얼리는 듯했다.
“대적할 상대는! 무림인이 아닌, 생존자 집단 ‘새벽의 검’의 리더, ‘광풍아(狂風牙)’ 서유나!”
환호보다는 긴장 어린 침묵이 흘렀다. 서유나는 백시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녀의 복장은 너덜너덜한 가죽과 금속 조각으로 기워 만든 간이 갑옷이었고, 손에는 날이 무디어진 단도를 거꾸로 쥐고 있었다. 얼굴에는 셀 수 없는 긁힌 상처들이 훈장처럼 박혀 있었고,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어두웠다. 정파의 고아한 기상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어떤 무인보다도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의지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이번 대회는 단순한 무술 대회가 아니다.’
백시조는 속으로 되뇌었다. ‘천하의 운명을 건 싸움. 구원자를 가려내는 자리. 어쩌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싸움.’
이곳, ‘철벽요새’는 인류가 생존을 위해 쌓아 올린 최후의 보루였다. 외부의 세계는 이미 ‘그것들’의 먹이가 된 지 오래. 붉게 물든 하늘과 썩어가는 시체 냄새로 가득한 지옥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인류가 마지막으로 기대는 것은 무림 고수들의 힘이었다. 전설처럼 전해지던 고대의 기술, 그리고 무인들의 순수한 의지.

“시작!” 심판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백시조는 정중하게 목례를 한 후 검을 뽑았다. 푸른 검광이 희미한 조명 아래 섬광처럼 번뜩였다. 그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고아했다. 화산파의 정통 검법, ‘청운신검(靑雲神劍)’은 백시조의 손끝에서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이 펼쳐졌다. 첫 공격은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벽력섬(霹靂閃)’. 날카로운 검기가 서유나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서유나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그녀는 검기를 피하는 대신 몸을 낮춰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거의 바닥에 붙는 듯한 자세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왼손에 든 단도를 휘두르며 백시조의 빈틈을 노렸다. 그녀의 움직임은 정교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야수처럼 거칠고 예측 불가능했다. 길거리에서 ‘그것들’을 수없이 상대하며 익힌, 오직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챙강!

백시조는 검을 옆으로 돌려 서유나의 단도를 막아냈다. 쇳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서유나의 공격에는 보통의 무공에서 볼 수 없는 맹렬한 기세가 담겨 있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백시조의 팔이 저릿할 정도였다.
“흥!” 서유나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녀의 눈빛은 백시조의 움직임을 쫓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백시조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예상대로군. 그녀의 무공은 정제되지 않았지만, 순수한 살기와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야생의 맹수를 상대하는 기분이야.’
그는 검을 가볍게 회전시키며 다음 수를 준비했다. 화산파의 검법은 변화무쌍하고 유연했다. 그는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하는 ‘낙화검무(落花劍舞)’를 펼쳤다. 검 끝이 꽃잎처럼 흩뿌려지며 서유나의 주변을 에워쌌다. 빈틈없이 펼쳐지는 검막에 서유나는 잠시 주춤했다.

“크으읍!”
서유나는 무언가에 갇힌 듯 몸을 비틀었다. 그녀는 이 정교한 검무 속에서 틈을 찾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리고 기어코, 백시조가 검을 살짝 멈칫한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몸을 검막 안으로 밀어 넣었다. 무모한 행동이었다. 스치는 검날에 그녀의 팔뚝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통증이 그녀를 더욱 광포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백시조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단도는 이미 던져버린 지 오래. 그녀의 손톱이, 발길질이, 심지어는 이빨까지 백시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은 무공이라기보다는 처절한 개싸움에 가까웠다.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저런 방식으로 정파의 고수를 상대하다니! 비웃음이 나올 법도 했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서유나의 몸짓 하나하나에 담긴 생존의 절박함이 그대로 전해져 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 거친 세상에서 무수한 ‘그것들’을 맨몸으로 상대하며 살아남았을 터였다.

백시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의 검은 우아했지만, 그녀의 공격은 우아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검을 내던질 수 없었다. 무림인의 명예가 걸린 문제이기도 했고, 그의 검은 단순히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근접전으로 파고들면 검의 이점이 사라진다.
그는 재빨리 검집을 뽑아 휘둘렀다. 텅 빈 검집이 서유나의 턱을 강타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서유나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비틀거리는 몸을 백시조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검을 재빨리 고쳐 쥐고 서유나의 목을 향해 검 끝을 겨눴다.

“항복!”
심판이 황급히 외쳤다. 백시조의 검 끝은 서유나의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붉은 피 한 줄기가 그녀의 목을 따라 흘러내렸다.
“칫…” 서유나는 억울하다는 듯 이를 갈았다. 그녀는 여전히 백시조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빨 사이로 피가 살짝 비쳤다. 검집에 맞아 입술이 터진 모양이었다.
백시조는 조용히 검을 거두었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숨은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방금 전 그녀의 광기 어린 공격은 그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장내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4강전 첫 경기. 정파의 고수가 간신히 승리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의 승리는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철벽요새의 외벽에서 둔탁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진동이 결투장 바닥을 흔들었다. 천장에 매달린 비상등이 흔들리며 깜빡거렸다.
“무슨 일인가!” 심판이 소리쳤다.
곧이어 요란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결투장의 한쪽 벽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가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켜졌다. 화면에는 외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수없이 많은 ‘그것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쳤다.
시체 썩는 악취와 함께 섬뜩한 비명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외벽 4구역이 붕괴! 그것들이 침입했다!”
누군가의 절규가 메아리쳤다.

환호와 실망, 그리고 경기의 흥분으로 가득했던 결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서렸다. 이 요새가 무너지면, 인류의 마지막 희망도 사라지는 것이었다.

백시조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그의 눈은 다시금 차가운 전장의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서유나는 피투성이가 된 입술을 닦아내며 모니터를 노려봤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실망 대신, 다시금 맹렬한 투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젠장…” 그녀가 낮게 읊조렸다. “또 시작이군.”

그 누구도 이 대회가 단순한 무술 실력을 겨루는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구원자를 찾는 시험이자, 동시에 인류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리고 그 시험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재앙 앞에서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밤은 깊어가고, 지옥은 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